19세기 말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스웨덴의 아레이우스는 지구온난화를 최초로 언급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한창 진행되던 산업혁명이 이산화탄소를 대기에 축적시킬 것이라고 그는 예견 했지요. 그 후 20세기 중엽 일본계 미국 과학자 마나베가 역시 이산화탄소 증가로 인한 지구온난화를 주장했습니다. 그들의 예견은 적중했고 지구촌은 현재 그 여파인 태풍, 해수면의 상승으로 인한 해일, 지진의 잦은 발생 등으로 인해 두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란 대기오염 탓에 이산화탄소나 프레온 등 온실기체가 필요 이상으로 증가, 지구 내 복사평형이 깨어짐으로 지구 온도가 높아지는 것을 말하지요. 그러고 보면 지난 25일 동남아시아의 화려한 관광지를 순식간에 생지옥으로 만들고 현재까지 15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쓰나미 참사, 그 원인 중 하나도 지구 ‘온난화 탓에 높아진 해수면’이라니, 결국 인재라 하겠지요.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앞으로도 지구온난화는 해일과 태풍 등 또 다른 재앙을 계속 가져 올 것이라고. 그런데 이런 현상들은 2000년 전 마지막 때를 언급하시며 예수께서 이미 말씀하셨지요.
“큰 지진이 일어나 곳곳에서 기근과 전염병이 번지고”(눅 21:11) “땅에서는 으르렁대는 바다와 파도 때문에 불안해할 것이다”(눅 21:25)
그래서 신학자들은 지금 시대를 ‘종말 중 종말의 때’라고 합니다. 그 말이 아니더라도 요즘 주변의 현상들 속에서 믿는 자라면 ‘종말 중 종말’의 증거들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엄마 나, 벌써 죽기 싫은데...” 남아시아 참상 기사를 함께 보며 마지막 때에 관해 이야기 나누던 중학생 딸아이가 불안한 표정으로 제게 하던 말입니다. 지난 25일 그 끔찍한 참사를 처음 접했을 때 저 또한 딸아이와 같은 생각으로 모골이 송연했으니 애나 어른이나 종말 대비에 무지하기는 매일반 이었지요. 하지만 성경은 이런 우리들에게 아주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종말 대비책’을 제안합니다.
“세상 종말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진지하게 깊이 생각하고 기도 하십시오”(벧전 4:7)
우리 생각을 빼앗길 수 있는 세상의 일들로부터 벗어나 집중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접하고 그분의 능력을 덧 입을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닭의 해입니다. 닭은 울음소리로 새벽을 열고, 빛의 도래를 예고한다고 하지요. 종말의 창가에서 절망보다는 생명의 기회를 보며 감사드립니다.
이제 분주하다는 이유를 핑계 삼지 못하게 ‘종말 대비책’으로 힘차게 재무장해야겠습니다. 애끓는 새벽 외침이 이 땅에 신선한 생명의 빛으로 반사되기를 소망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