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신’과 기독교

등록날짜 [ 2005-04-02 13:10:22 ]

신라말 동아시아 해상의 무역왕, 장보고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 ‘해신’이 요즘 시청율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드라마를 보며 또 다른 역사적 추론을 할 수 있어서 더욱 즐겁습니다. 그것은 장보고가 당에서 활동했을 805년 전후로 당에서는 초기 기독교인 경교가 부흥했었다는 사실과 관련 있지요.
터키 안디옥에서 시작된 초기 기독교의 이방 전도는 동쪽으로 뻗어 나가 중국 땅에 입성합니다. 그 시기가 635년 당 태종 때이지요. 그 후 국교로 인정되고 경교로 불려지며 덕종 때까지 150년 간 부흥기를 맞다, 845년 무종의 금지령으로 그 막을 내립니다. 비록 당대의 기존 종교였던 도교, 불교와 융합, 기독교의 특성을 상실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1400년 전 동방의 강력한 토착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의 구원과 부활 사상을 나타내며 200년 넘게 존속했다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하리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이 200년 동안 재당 통일신라 승들이나 상인들이 자연스레 이 초기 기독교와 접했다는 것이지요. 또한 당시 신라는 중국과 비잔틴을 비롯한 서역 여러 나라와 교역하였고 경주는 그 중심의 국제 도시였습니다. 그러므로 외국인들의 왕래가 빈번하였지요. 그 사실은 삼국의 역사서 ‘삼국사기’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서역인들과 그 문화가 당과 서역 땅에서 경주로 들어올 때 선진 외국 종교인 초기기독교도 여러 형태로 함께 입국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1956년 경주 불국사에서 돌 십자가와 철재 십자문 장식, 성모 소상(聖母小像) 등의 통일 신라시대 초기 기독교 유물들이 발견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또한 삼국의 야사들을 기록한 삼국유사 기이 제1권에 구약성경 출애굽기의 모세이적과 유사한 개구리 소동, 그리고 우물이 핏빛으로 변한 사건 등이 기록되어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1300년 전 이 땅에 들어왔을 초기 기독교, 그것이 과연 신앙으로, 또는 신앙을 뺀 문화만으로 존재하였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습니다. 만약 문화였다 할지라도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며 정서에 큰 영향을 주는 문화의 특성을 생각해 볼 때, 초기 기독교 문화는 신라인들의 심성 속에 적어도 기독교적 감성의 씨앗은 뿌려 놓았으리라고 추정해봅니다. 이 결과 세계 선교국가 한국의 기독교 역사 150년을 1300년으로 확장시키는 역사적 가설을 세워 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1300년 전 세계 복음화의 주역으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한반도 인들, 그 위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 제가 있다는 것이 황홀합니다. 당과 신라의 무역항로를 장악했을 장보고 선단의 행군이 저에게 남달리 가슴 벅차 오르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위 글은 교회신문 <7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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