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가 전국 관객 1000만을 돌파하며 극장가를 달구고 있습니다. 수백억 제작비의 대형 영화들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43억원이라는 소액의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예상 외의 선전을 하고 있지요. 혹자는 말합니다. “‘왕의 남자’가 선전 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정서에 맞는 ‘이야기의 힘’이다.” 그리고 덧붙입니다. “기계화와 인터넷 등의 발달로 사람 사이의 간격이 너무 벌어져 있는 그만큼 사람들의 고독은 깊어졌고 그것을 감동의 이야기로 채우려 한다”고 말입니다. 영화는 이제 사람사이 간격 메우기의 중요매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내용은 다르지만 성서의 세계에도 간격 메우기가 있습니다. 성서가 말하지 않는 침묵의 내용들, 그것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사람들은 성서의 내용과 내용 사이의 빈 간격을 스스로 채워 나갔는데, 그 결과 전승과 전설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이 성서 세계 속의 간격 메우기 입니다. 터키, 이스라엘 등에 성서적 근거는 없으나 성서 속 인물들과 관련된 성지들이 많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터키에는 의인 욥이 고난 받을 때 거처했다는 고난동굴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욥의 아내에 대한 흥미로운 전설이 있지요. 고난에 빠진 남편을 향해 ‘하나님을 저주하며 죽으라’ 는 독설을 남기고 떠났던 욥의 아내, 그리고 욥의 말년에 새롭게 자식들을 낳아 함께 해로한 아내는 서로 다른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전처는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고 이미 노쇠해 버렸는데, 그녀가 고난에서 회복한 욥의 말년에 또 다시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고 욥과 140년을 함께 산다는 것은 정황상 맞지 않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무엇이 옳든 간에 이러한 전승들은 아마도 ‘알 수 없는 하나님’ 그래서 생긴 블랙 홀과 같은 의문의 간격을 ‘알 수 있는 하나님’으로 좁혀 보려는 인간들의 염원의 결과물이 아닐까 합니다. 하나님이 침묵 하시는 부분을 인간의 이해에 맞게 메우면 그나마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좀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이해를 뛰어 넘는 방법으로 완벽한 간격 메우기를 해놓으셨습니다. 외아들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영원한 간격을 빽빽하게 채우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 하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
사람들은 서로간에 벌어진 간격이 가져오는 외로움을 달래려고 영화를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과 멀어진 간격을 채우시기 위해 아들 예수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인식을 초월한 하나님의 사랑 방법입니다. 다가오는 봄엔 기도의 빨대를 하나님의 세계에 꽂아 그 분의 알 수 없는 사랑을 쭉쭉 빨아들이려고 합니다. 이것이 제가 터득한 하나님과 저 사이의 간격 메우기입니다. 그리고 찬란한 봄을 맞이하는 방법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8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