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늦은 시간이었는데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대학시절의 후배였는데 거의 10년만의 만남이니 너무 반가웠다. 이젠 유학을 다녀와서 한 아이의 엄마요, 활동하는 성악가였다. 나도 반가웠지만 그쪽은 너무 반가웠나 보다. 연신 “오빠 누가 그러는데 너무 변했다면서? 옛날의 박귀배가 아니라면서? 말도 은혜롭게 한다면서?” 등등 질문을 모아놓은 사람처럼 쉴 새 없이 그 궁금함을 내어놓는다.
예전의 사람을 접하면 그때의 시절이 화면처럼 돌아간다. 정말 후회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살았던 그 시절.. 그러나 돌아보면 “아! 그땐 내가 정말 철이 없이 살았었구나, 헛된 꿈을 꾸며 방황하였었구나. 그런 내가 이렇게 변했구나!” 글쎄 그랬겠지. 그도 변했고 나도 변했지. 10년인데 강산도 사회도 변했지 않은가.
그러나 이 세상엔 꼭 변해야 할 것과 꼭 변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는가 보다. 이제야 조금 그 기준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꼭 변해야 하는 것이 변하지 않으면 그것이 슬픔이요, 절대 변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변해 버린다면 그것 또한 큰 아픔일 것이다. 꽃이 피어나듯 언제나 아름답게 변화되는 사람도 있고 나이나 외모와는 상관없이 추해만 가는 사람도 있다.
이제 또 10년 후의 나의 모습은 어떨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변해버린 나의 모습이 내겐 슬픔일까 아니면 기쁨일까. 아니면 우리 안에 갇힌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루 종일 열심히 뛰었지만 변화되지 못하고 늘 제자리일까.
애벌레가 멋진 나비가 되듯 어떻게 우린 계속적으로 아름다운 변화를 할 수 있을까.
이 질문들엔 난 주저하지 않고 예수님을 말하고 싶다. 그렇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진정한 변화의 시작이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될 수 있다. 성경엔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수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베드로도 변했고 바울도 변했고 십자가의 강도도 변화되었다. 앉은뱅이도 일어서고 소경도 눈을 뜨고 수많은 병자들도 새롭게 되었다. 온갖 마음의 병들이 치료받고 변화되며 기뻐한다. 누구라도 예수님을 만나면 새롭게 될 수 있다. 나도 변했고 나의 아내도 나의 친구들도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어김없이 변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위대한 인물들도 예수님을 만나고 다 변화되었다. 지옥이라도 녹여 변화시켜 버릴 듯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닿기만 하면 그 어느 누구도 변화되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경험한다.
자식이 부모의 심정을 아는 그 때부터 철이 들 듯, 인간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 때부터 비로소 철이 드는 것 같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수많은 나날들, 돌이킬 수 없는 안타까움으로 가득한 것이 우리의 인생인가 보다. 그러나 이젠 우리 주님께 기쁨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 애통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두려움이 변하여 기도가 되며 탄식이 변하여 찬송이 되는, 아 가슴 두근거리는 기대의 삶! 내가 져야할 저주의 십자가의 고통을 기꺼이 대신 지신 뜨거운 사랑의 주님과 소망이 가득한 변화의 새 삶을 시작해 보지 않으려는가.
위 글은 교회신문 <9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