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새벽을 사랑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난 새벽을 사랑하게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루 종일 피곤할 때도 많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가끔 너무나 쉬울 때가 있다. 해가 떠오르기 전 새벽 공기는 마음 깊숙한 곳까지 상쾌하게 하는 힘이 있다. 어느날엔 별이 나를 보고 웃고 있었고 길가의 가로수들도 춤을 추듯이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을 비비고 봐도 그런 것 같이 보였다. 저 별너머에는 우리 주님이 나를 환하게 보고 계신 것도 같았다. 새벽에 주님을 찬양하러 가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눈물이 나도록 감사한 일이 있다면 새벽에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주님을 만나러 가는 일이다. 신앙생활이 어렵고 힘들 때도 있지만 힘든 만큼 우리 주님의 위로도 넘치지 않는가.
가을은 풍성한 결실의 계절이다. 풍성한 결실 뒤에는 농부의 기쁨이 있다. 땀과 수고의 대가를 거두는 때인 가을, 우리 모두는 결실의 기쁨을 위해 뛰고 달린다. 돈도 기쁨과 행복을 위해 벌고, 스포츠와 오락도 기쁨을 위해, 결혼도 자식을 낳는 것도 심지어 술을 마시고 친구들을 사귀는 일도, TV도 영화도 컴퓨터 게임도 모두 다 그들만의 재미가 있다고들 말한다.
그러면서 “신앙 생활은 무엇이 재미 있기에?” 라고 묻는 이들이 많다. 예수를 만난 자의 기쁨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생활 가운데 함께 하시는 자상한 아버지와도 같은 하나님의 평안함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꼭 기쁨을 선물로 주신다. 말로 다 못 할 큰 기쁨이 있기에 깊고 큰 아픔과 슬픔들도 모두 작아보이는 행복이 있다. 슬퍼도 기쁠 수 있고, 아파도 기쁠 수 있고, 괴롭고 힘들어도 기쁠 수 있으며,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기쁠 수 있는 제목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주님 날 위해 죽으셔서 온 천하를 다 준대도 바꿀 수 없는 영생을 선물로 받은 기쁨이다.
“너를 사랑한다” 고 하시는 간절한 성령의 음성을 들을 때,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기쁨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언제나 주님은 우리 기도에 귀를 기울이신다.
새벽의 성전을 떠나 또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네
세상을 향해 돌아서는 발걸음 못내 아쉬워
돌아보며 돌아보며 되새김하는 말
“우리 주님 오늘도 날 찾아오시어 내 손 잡고 이끌어주세요
혹 사망의 골짜기에서도 메마른 광야 같은 곳에서도
주님 오늘도 나의 목자가 되어 주세요.”
새벽의 성전을 떠나 세상으로 돌아서는 길엔
울먹이는 기도 소리 뒤로 하고
뿌리치며 돌아서는 길엔
멀리서 들려오는 주님의 사랑 소리
“두려워 말라, 내가 함께하리라”
세상을 향해 내딛는 연약한 나의 발걸음을
성령께서 붙잡아 주시네.
새벽길에 가로수들은 벌써 낙옆지려하고 있다. 계절의 끝이 오면 또 추운 겨울이 올 것이다.
풍성한 결실을 두 손에 들고 우리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다면.......
위 글은 교회신문 <9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