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의 일입니다. 밖에서 들어온 5학년 아들 녀석이 겉봉투에서 꺼낸 편지 한 장을 불쑥 내밀며 볼멘소리로 “엄마 남현이가 누구야? 엄마 연애해?” 녀석이 내민 편지지엔 세미나 참석차 대구에 있는 남편이 그곳 프로그램에 따라 써 보낸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의 애정 담긴 내용과 ‘보낸 이’ 난에 ‘남편이’라고 흘려 써 있었습니다. 아들의 마음을 불쾌하게 만든 ‘남현이’씨의 정체가 짐작이 갔지요.
“왜? 연애하면 안 돼? 남현이라는 사람이 엄마를 이렇게 사랑한다는데?” 불안한 표정의 아들 녀석! “그럼 엄마 아빠랑 이혼하는 거야?”
이쯤 해서 수습을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임마! 이게 ‘남현이’니? ‘남편이’지. 5학년이나 되서 흘려 쓴 글씨도 못 읽어?” 그제야 아들 녀석은 안심한 듯 멋쩍게 웃었습니다.
저희 집의 짧은 에피소드지만 이것은 어린 아이들 마음 속에도 이혼이 큰 불안거리로 자리 잡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국내 이혼 건수는 작년 한해 13만 5000건으로 2000년에 비해 1만 5000건 이상 증가, 그중 40대의 이혼율이 급증하는데 그 원인들 중에는 ‘남녀 차이에 대한 무지’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군요. ‘일과 성공’을 향해 20-30대를 도전적으로 보내던 남성은 40대가 넘으면 ‘성취 중심의 삶’에 대한 허무감에 빠집니다. 그래서 내면의 만남에 비중을 두는 ‘관계 중심’으로 변합니다. 반면 40대의 여성은, 그때까지 살아오던 ‘아이들과 남편 중심’의 삶에 대한 회한에 빠지고 사회활동에 눈길을 돌립니다. 즉 젊었을 때의 ‘관계 지향’이 중년이 되면 ‘업적 지향’으로 변화되는 거지요. 여기서 40대 부부의 불일치가 생겨 부부사이의 구조조정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 변화에 무지하게 대처하면 이혼이라는 불행한 결과를 맞게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남편과의 불화로 고민하던 한 친구가 제게 말했습니다. “늘 자기만 옳다고 기승을 부리던 남편이 요즘엔 금방 수그러들고 미안하다고 사과도 해. 그리고 나는 싹 무시한 채 모든 일을 자기 혼자서만 처리하던 그 싸가지가 이젠 내게 자주 물어봐. 그 사람도 정말 늙었나봐. 왠지 불쌍한 것 있지, 불쌍하게 보니깐 미운 마음도 좀 가라앉더라.” 그녀의 말 속에서 중년 이혼이라는 냉랭한 세계를 녹여줄 훈풍을 감지했습니다.
‘불쌍히 여김!’ 이것은 성경에서 ‘긍휼’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이것 덕분에 지옥 갈 인간은 ‘천국 백성’이라는 거룩한 신분증을 받았습니다. 긍휼은 그분의 자녀인 믿는 자들 속에 영적 유전자로 존재하며 허물을 덮는 신비한 에너지를 발산합니다. 성경은 말씀하시지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5:4)
불쌍히 여겨 허물을 덮어주는 부부! 그들에게 중년 부부의 구조조정기는 원숙한 사랑의 만남을 이루는 ‘복된 찬스’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11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