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TV에서 ‘어린 코끼리 집단’에 관한 흥미로운 내용을 보았습니다. 어른은 없고 새끼들만 있던 이 코끼리 집단엔 많은 문제점이 있었는데, 그 중 심각한 것은 부근의 코뿔소를 50여 마리나 밟아 죽인 것이지요. 코끼리에게 코뿔소가 이렇게 떼로 살육당한 사건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어린 수컷은 타 집단의 코끼리에 비해 10년이나 빠르게 발정을 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동물학자들은 어른 수컷 코끼리를 이 집단 속에 합류시켰습니다. 그 결과 이상 행동은 사라지고 코끼리 집단은 안정을 찾았습니다. 어른 수컷 코끼리의 지도력이 집단을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이 방송은 ‘지도자의 권위’에 대해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지요.
짐승집단에조차 지도자의 지도력은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하는데 인간 사회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금세기 중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던 1960년대는 아이젠하워, 케네디, 드골, 박정희 등 뛰어난 지도자들이 무수히 등단한 때였습니다. 이들에겐 강력한 리더십으로 국가 경쟁력의 기초를 확고히 세웠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그리고 이 성공의 바탕에는 ‘지도자의 권위에 대한 국민의 존중’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롬13:1). 이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은 구약시대 노아 가정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어느 날 노아는 포도주를 마신 채 벌거벗고 자기 장막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의 세 아들 중 함이 이 모습을 보고 밖에 나와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야벳과 셈은 뒷걸음쳐 들어가 아비의 몸에 겉옷을 덮고 그 벗은 모습을 보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 결과로 함은 저주를, 야벳과 셈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인간적인 기준에는 잘못한 사람은 술 취해 잔 노아지 사실을 말한 함이 아닙니다. 그러나 미국 베스트셀러 ‘순종’의 작가 ‘존 비비어’목사는 “함은 하나님이 정하신 아비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았다. 지도자가 실수하고 좌절할 때 즐거워하는 사람들에겐 하나님의 마음이 없다.” 그러면서 그는 말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권위를 넘어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실 역사적으로도 지도자의 권위가 상실된 나라치고 건강한 발전을 이룬 곳은 없습니다. 권위상실은 질서 상실을 가져오고 그것은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게 되어 개개인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옵니다. 결국 ‘권위의 존중’은 인간 사회의 파국을 막기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해두신 사회구조 속의 지혜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가 지도자의 실수가 눈에 거슬리더라도 그것을 비판하고 폭로하는 함이 되기보다는 그 허물을 덮고 기도하는 셈과 야벳이 늘어나 이 땅의 혼란이 정돈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바로미터는 말씀에 순종하려 하는 ‘믿는 자들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13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