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사그라지고 있는 요즘, 정부는 집회 배후세력을 검거하는 일로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국론분열로 정국을 파국으로 몰아넣고 세계 언론의 불안한 눈길을 모았던 촛불집회가 결국 특별한 목적을 노린 배후세력에 의해 조종당했다는 사실에 아연해집니다. 연유야 어찌 되었든 국민이, 정부를 조금만 신뢰했다면 이런 상태까지 오진 않았으리라는 큰 아쉬움이 남습니다. 바로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우리 사회의 딜레마'를 대하는 슬픔이지요.
죄수의 딜레마! 이것은 서로의 이익이 되는 최선의 결론이 있는데도 서로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다음의 상황을 전제로 합니다. ‘경찰이 증거가 없는 두 명의 도둑을 잡았는데, 자백을 받기 위해서 이들을 각각 다른 취조실로 데려간다. 이들에게는 3가지의 선택이 있다. 자백하기, 다른 용의자에게 전가하기, 침묵하기. 자백하면 죄를 인정하지만 감형을 받고, 침묵하면 증거가 없으므로 풀려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은 침묵하지만 다른 용의자가 자백하거나 자신에게 덮어씌울까봐 두 죄수는 자백을 한다. 그래서 최고의 이익을 놓치고 만다.' 이처럼 ‘죄수의 딜레마'는 상대를 믿지 못하는 불신 사회 속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상징합니다.
성경시대 사도 바울의 세상 또한 이런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는 소수 지배자들 중심의 불평등한 신분질서 속에 있었지요. 전체5% 밖에 안 되는 지배자들은 피지배자들을 보호해주었고 피지배자들은 충성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피지배자들의 현실은 늘 불안했지요. 지배자들의 선의에 의존해 연명하였기에 그들의 마음 여하에 따라 운명이 뒤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불안 탓에 피지배자는 자신에게 더 좋은 것을 늘 놓치고 마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만든 불신사회 로마는 하나님의 창조물인 모든 인간의 동등함을 선포했던 바울에겐 불의한 사회였습니다. 그 때문에 바울은 교회 안 갈등을 불의한 세상 법정에 고소하는 것을 비난합니다. 하나님 백성의 법은 세상 법과는 달라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고전6:7), 즉 교회 안엔 세상과 다른 사랑의 질서가 있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세계화 시대에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이 땅의 사람들도 서로를 불신하기에 최선의 이익을 얻지 못하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이 사회를 흔드는 대부분의 갈등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죄수는 자신을 묶은 딜레마를 벗어날 힘이 없습니다. 오직 죄에서 해방된 자들만이 ‘이기심’이라는 죄가 만든 ‘불신의 관계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거룩한 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기도의 힘으로 ‘사랑의 관계망’을 세울 자들, 믿는 자, 바로 당신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14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