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6-29 09:58:43 ]
19세기에 활동한 유명한 전도자 무디 목사가 탄광촌을 방문했습니다. 탄광촌 책임자에게 구원에 대해 오랫동안 설명했으나 그 책임자는 계속 시큰둥한 반응이었습니다. 한참 동안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던 그 책임자는 믿어지지 않는 듯 말했습니다.
“구원이라는 것, 너무 값싼 것이 아닌가요? 사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저 믿기만 하면 된다니, 그게 뭐가 그렇게 소중하고 좋은 것이란 말입니까? 뭔가 값이 좀 들어야 나도 귀한 걸 가졌다는 만족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무디는 잔잔히 미소를 지으며 그 탄광촌 책임자에게 대답했습니다.
“당신, 오늘 갱에 들어갔습니까?”
“네, 그럼요.”
“얼마나 깊이 내려갔습니까?”
“수백 피트나 되지요.”
“어떻게 내려갔습니까?”
“그건 간단하지요. 버튼만 누르면 승강기가 올라오고 내려가니까. 그걸 타고 내려갔지요.”
“그것밖에 하신 일이 없단 말씀입니까?”
“그럼요, 석탄 회사가 이미 많은 돈을 들여 승강기를 설치해 놓았으니 저는 그저 승강기를 타고 버튼만 누르면 되는 걸요. 그 깊은 곳까지 승강기가 다 알아서 데려다 주니까요.”
“바로 그것입니다. 선생이 승강기를 타고 버튼만 누르면 되듯이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석탄 회사가 많은 돈을 들여 승강기를 설치해 놓은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그저 그 공로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이미 십자가라는 승강기를 놓으셨으니 당신도 주님의 보혈을 믿는 믿음의 버튼만 누르면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 치르신 놀라운 은혜는 결코 싼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인간을 위해 감당할 수도 없는 가장 고귀하고 값비싼 희생을 치르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놀라운 은혜에 대해 그 어떠한 것으로도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그저 믿고 순종하며 사는 길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구원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는 큰 교만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시고자 2000년 전에 이루어놓은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 자는 영원한 행복을 얻은 것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4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