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예화] 한국평생전도회 창립 배경

등록날짜 [ 2012-05-29 10:35:07 ]

1920년 1월 4일, 만주의 용정에서 15만 원 탈취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삼일운동이 실패로 끝난 다음 뜻있는 젊은이들 사이에 이제 일본에 맞서기 위해서는 우리도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이 암암리에 퍼졌습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우리도 돈을 모아 사관학교를 세워서 장교들을 배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돈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젊은이들에게 일본인들이 회령에서 현금 15만 원을 요정 출장소로 이송한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은행 측이 이 거액을 안전하게 수송하기 위하여 돈 보따리를 우편물로 위장한다는 비교적 상세한 정보가 들어온 것입니다. 그때 돈으로 10원이면 장총 한 자루를 살 수 있었다고 하니 15만 원이면 1개 사단병력이 무장할 수 있는 막대한 돈이었습니다.

윤준희, 임국정, 최봉설, 한상호, 박세웅 이렇게 다섯 청년은 길목을 지키고 잠복해 있다가 돈을 이송하는 무리을 급습하여 15만 원 탈취에 성공합니다. 이들은 블라디보스토크의 어느 마을에 숨어서 일본 돈을 러시아 돈으로 바꾸어가면서 무기를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세 명은 잡혀서 결국 사형을 당했습니다. 그중 한 명인 임국정이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그 어머니는 임뵈뵈로 알려진 분입니다. 본래 성은 박 씨였는데 예수 믿고 남편의 성을 따서 임뵈뵈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그녀는 원래 함흥 신창리교회 집사이자 전도사였는데, 당시에 그곳에 와 있던 캐나다 여 선교사들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5만 원 탈취 사건이 일어났고 아들은 주모자가 되어 사형을 당한 것입니다. 그때 임뵈뵈의 나이가 66세였습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아들의 죽음을 지켜본 임뵈뵈는 날마다 실의에 차 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무슨 말로 그녀를 위로할지 몰랐습니다. 아들이 죽은 지 7~8년이 지난 후에 임뵈뵈는 이제 폭삭 늙은 힘없는 할머니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캐나다 교회에서 파송된 여선교사들이 선물을 들고 뵈뵈를 찾아왔습니다. 이들이 내민 선물은 뜻밖에도 캐나다 교회 평생회원권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25불 정도의 선교비를 내면 평생회원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살림에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니고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이 평생회원권을 받아들고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왜 캐나다 교회의 평생회원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 한국 여성들은 왜 이런 일을 못하는가? 나도 아들을 잃었다고 낙심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용기를 내어 전도하자!’

결국 임뵈뵈에 의해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한국평생전도회’가 창설되었습니다. 먼저 뵈뵈는 자기가 평생 모아두었던 5원을 내놓았습니다. 또 70세가 훨씬 넘은 몸으로 전도회의 총무로 일했지만, 월급을 받지 않고 자비로 일했습니다.

만주 전역의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평생회원을 모집했습니다. 가다가 노자가 떨어지면 아무 집에나 들어가 빨래도 해주고 허드렛일을 해주면서 일을 했습니다. 뵈뵈는 서울에까지 와서 회원을 모집했습니다. 어찌나 열심히 모집했는지 해방 전까지 무려 2000명이나 되는 회원을 모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해방 후 서울로 온 뵈뵈는 남은 생애를 전도하다가 93세에 소천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91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