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10-22 10:35:45 ]
1960년대 초의 일이다. 그 당시 서울 고등법원 원장으로 재직했던 김홍섭 판사는 고결한 삶을 사신 분으로 유명하다.
집에 들어서면 그 가난한 모습이 역력했는데 방에는 군데군데 장판이 때워져 있고, 그 부인이 들고 나온 커피잔도 금이 가 있을 정도이며, 김 판사의 옷도 남루해 양복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이 짜깁기로 기워 입고 다녔다는 것이다.
고등법원장이라고 하면 수많은 정치적 사건 등 자유당 말기에 큰 세도를 부릴 수 있는 여건으로 김 판사는 소위 ‘김창룡 중장 암살사건’ 같은 큰 사건 등을 다룬 심판관이기도 하였다. 또한 당시 그의 월급이 그리 적지 않았는데 그는 문자 그대로 청백리였다고 한다. 월급을 타기가 무섭게 우선 신앙서적과 성경을 구입할 돈과 교회 헌금을 떼어놓고서야 집으로 월급을 가져왔으니 가난할 수밖에....
또 많은 불우한 사람들이 법정으로 범법자가 되어 오는 경우 꼭 도와야 할 사람은 경제적으로도 도와주었다고 한다. 게다가 그는 봉급날 떼어놓은 돈으로 각종 신앙서적을 구입하고서는 교도소의 죄수들을 찾아다니며 전도에 힘썼다고 한다.
김홍섭 판사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참으로 본받아야 할 삶을 사셨다. 그는 과연 법관으로서의 양심과 자비와 사랑과 정의감을 가지고 몸소 실천하면서 살아간 법조인의 귀감이자 신앙인의 모범이었다.
위 글은 교회신문 <35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