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11-24 10:59:05 ]
좀 더 일찍 예수를 만나지 못한 후회 밀려와
우리 청년들이 얼마나 행운아인지 깨닫기를
대학 1학년 때 교양필수 과목이었던 ‘인간’ 시간에 받았던 충격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이름을 떨치던 어느 교수님의 노장(노자와 장자)사상 강의는 지방 고등학교에서 갓 올라온 신입생에게 소름 돋는 전율을 안겨 주었다.
이해하기는 어려워도 자연 만물과 인생의 이치를 설명하는 노장사상뿐만 아니라 동서양 철학과 역사를 넘나드는 교수님의 강의는 해박하다는 말로는 이루 다 설명할 수 없는 깊이가 있었다. 노장사상도 어려운데 칸트와 헤겔을 이야기하고 그러다 실학사상 등 우리나라 철학사상까지 유학자처럼 설명할 때는 현란하고 어지러웠다.
대학 강의는 차원이 다르고 세계적인 석학에게서 배우고 있다는 생각에 자부심이 절로 들었다. 교수님은 기독교에는 냉소적이었다. 교수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어머니가 매일 새벽기도 나가 자기를 위해 기도하신다면서 안타깝다고 했다.
한 학기 동안 노장사상 강의를 들으면서 기독교 신앙에 강한 회의가 들었다. 돌이켜 보니 동서양의 심오한 철학 앞에 기독교 신앙과 교리는 너무 단순하고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성경의 계명들은 나를 옥죄는 굴레이자 속박이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 말라는 말씀이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자유할 수 있다는 건지 알 수 없었으며 스스로 발전하고 성숙하기 위해서는 기독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아가 기독교는 이해를 돕는 자세한 설명도 없으면서 천국과 지옥이라는 이분법적인 선택을 강요해 사람을 힘들게 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입시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대학생활을 만끽하고 싶은 분위기와 맞물려 더 확고해졌다. 기독교 신앙은 고등학교 때까지라고 생각했다.
이때 받은 지적 충격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내 신앙과 사고에 영향을 미쳤다. 군대 가기 전, 또 졸업하고 사회 진출하기 전, 입사와 결혼 등 중대하고 어려운 고비가 닥칠 때마다 하나님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곧 의심과 회의가 뒤따랐고 세상과 교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방황했다.
평탄하게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성취하려면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았고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면 저주가 임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과 의무감으로 교회를 다녔다. 하지만 교회 밖에서는 교회 다닌다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애썼다. 특히 사람들 앞에서 식사기도는 절대 하지 않았다.
신은 나약한 인간이 의지하기 위해 만든 관념의 산물이라고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 앞에서 나약해 보이지 않기 위해 교회 다닌다는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겉은 교회 다니지만 속은 세상 법칙이 지배했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나에게 해를 끼치면 반드시 비슷한 정도로 되갚아 주려 했다. 겉은 예절 바르게 행동하는 듯했지만 속마음은 비장한 각오로 내 이익만은 철저히 확보하고 지키려고 애썼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신은 이기심과 경쟁의식으로 더욱 각박해져 갔고 몸은 피곤과 술, 담배로 망가져 가고 있었다. 가정도 미움과 다툼이 지배했고 가족관계는 위기에 처했다. 겉으로는 부러워 보이는 집이었지만 속은 만신창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때에 어느 목사님의 강력한 추천으로 다니던 교회를 옮겨 연세중앙교회를 나오게 됐다. 노량진성전 시절 마지막 해였다. 윤석전 목사님의 첫 설교를 듣고 이곳에서 내가 살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많은 성도가 듣는데 목사님이 내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은 설교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미 생각이 세속의 지배 아래 있던 터라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도 있었지만 성경대로 하시는 말씀이니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스스로 쌓아 온 나름의 논리와 사고체계를 벗어던지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생각으로 바꾸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다 크게 혼난 적도 있었다. 10여 년 전 하나님께서 술을 끊어 주셨는데 이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다시 술을 입에 댔다가 발목이 부러지는 일을 당했다. 60일간 병가를 내고 집에 들어앉아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내 생각을 근본부터 바꿔 놓으셨다. 아픈 몸으로 혼자 방 안에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생각 속에서 강력한 질문을 하셨다.
첫 질문은 “네가 그리스도인이냐?”였다.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대답하면 주일뿐 아니라 평일도 주일처럼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속적 그리스도인이 하고 있는 이중생활을 포기하라는 말씀이었다. 난감했다.
둘째 질문은 “네 삶의 기준이 나냐 사람이냐?”였다. 이 역시 어려운 질문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세상 기준이 아닌 하나님 기준으로 살면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비웃을까 걱정스러웠다. 기독교 환자 취급을 당하며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를 위하여 사람들한테 매 맞고 침 뱉음 당하고 십자가에 죽을 때까지 극한의 고통과 수치를 당했는데 네가 체면 때문에 내 말대로 살 수 없다면 나는 너와 관계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결단하고 기도했다. “하나님 앞으로 술 안 마실테니 남은 인생 책임져 주세요.” 그리고 회사에 출근하면서 술 안마시겠다고 선포했다. 비난과 수치를 당할 각오를 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내 우려와 정반대로 좋은 일이 더 많았다.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하나님께서 항상 선으로 마무리해 주셨다.
하나님은 이런 과정을 통해 대학시절 내 생각 속에 강력히 침투해 들어온 세상 철학과 논리를 제거해 주셨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씀은 이제 떠올릴 때마다 전율을 느낀다. 이 말씀을 뼛속 깊이 믿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하늘나라는 말이나 논리가 아니라 나와 세상을 바꾸는 능력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이 나약하니 신을 의지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면 담대해지고 강해진다는 걸 깨달았다. 방황에서 돌아오는 데 20년이 걸렸고 또 그때가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고 연세중앙교회 성도들과 충성스러운 젊은이들을 바라보면 난 아직도 너무 세속적이다.
그러면서 나는 왜 젊은 시절에 이런 믿음을 갖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연세중앙교회 젊은이들을 보며 저 사람들은 얼마나 좋은 기회를 손에 쥐고 있나 생각하게 된다. 전 세계 젊은이들 가운데 이렇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꼽아 보면 선택받은 극소수가 아닐 수 없다.
이웅수 집사
KBS 보도국 기자
교회 신문 논설위원
위 글은 교회신문 <46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