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9-05-20 15:07:10 ]
‘스토리 중심 리포트’로
읽는 재미를 줘야 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잘 전할 수 있을지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
상세히 기록하는 것이 미션
신문의 사회적 기능은 사실 보도와 권력 비판입니다. 특히 권력 비판은 미디어의 매우 중요한 기능입니다. 권력은 그 속성상 늘 이기적이고, 자기만족과 자기중심의 특성을 가지면서 예외 없이 잘못된 길을 가게 됩니다. 그래서 권력은 늘 비판 대상이 되어야 하고, 그 비판을 통해서 권력이 남용되지 않게 됩니다. 신문은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필수 불가결한 사회적 공기(公器)입니다.
그러나 교회 신문은 이와 전적으로 그 궤(軌)를 달리합니다. 교회 신문의 존재 가치는 비신자에게 복음을 듣게 하고, 성도들의 삶을 하나님께로 높이 끌어올리고, 교회를 보호하는 데 있다 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복음으로 살게 하고, 교회를 악한 자들에게서 방어하는 일, 이것이 곧 교회 신문의 역할입니다.
저는 이번에 발간 20주년을 맞이하는 연세중앙교회 신문(이하 연세신문)에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연세신문의 목표와 과제는 신문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어떻게 하면 잘 전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글자로 쓰인 문서는 글자 그 자체로 힘을 발휘합니다. 말은 공기 속으로 포말(泡沫)처럼 사라지고 말지만, 글자는 사람의 시선을 끌게 하고, 읽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그 글자 때문에 삶의 방향을 바꾸게도 합니다. 그만큼 글자의 힘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의 무의식에 작용해서 사람의 믿음과 결단을 이끌어 내기도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영문학자 C. S. 루이스는 유명한 어린이 동화 『나르니아 왕국』을 써서 많은 비그리스도인에게 복음의 의미를 일깨워 주었고, 영어권 내의 많은 지성인이 다 루이스의 글을 읽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고백할 정도로 그의 글은 강력한 내용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어린이 동화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동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의 핵심이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달콤한 설탕이 겉에 묻어 있어서 그 달콤한 맛에 홀려서 덥석 먹으면, 그곳에는 영혼의 폐부를 찌르고 갈라놓는 하나님 말씀의 날카로움이 숨겨져 있습니다. 달콤함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 말씀의 날카로움, 이것이 바로 연세신문의 역할이 되어야 합니다.
연세신문을 읽게 되면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계속 읽다가 읽는 재미에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또 다른 날카로움과 또 다른 영적인 재미에 홀리고 빠지게 됩니다. 비신자들을 재미있는 글로 이끌어서 하나님 말씀의 참된 영적 기쁨을 맛보게 하는 겁니다. 이는 신문뿐만 아니라 모든 매체가 갖춰야 할 테크닉이기도 합니다. 신문 기사와 글을 읽는 맛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을 맛보는 데까지 이르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문 기사와 글을 읽는 ‘재미’는 무엇에서 나옵니까? 그것은 따분한 논설 형식의 글이 아니라, ‘스토리 중심의 리포트’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가르침을 주는 교훈적인 논설에 금세 질리고 맙니다. 그러나 계속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사건 중심의 스토리 리포트에는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입니다. 성경 말씀도 거의 90% 이상이 바로 이 같은 스토리 리포트 형식에 가깝습니다.
로마서는 일반 성도들이 읽기에 쉽지 않은 논설 형식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설명과 강해를 들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은 그 내용의 흐름이 빠르고 신나게 기승전결로 나아갑니다.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읽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문의 많은 리포트와 기사는 될 수 있으면, 로마서 형식보다는 마가복음 형식이 돼야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적합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연세신문의 많은 지면에 성도들의 간증이 실려 있습니다. 간증은 바로 스토리 중심의 리포트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로마서의 설교를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삶에서 나는 이렇게 믿었고, 이렇게 변화됐다는 간증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재미와 매혹을 줍니다. 특별한 간증이 아니라 하더라도 좋은 스토리 구성과 좋은 문체로 간증 리포트를 구성한다면 많은 비신자가 연세신문을 읽고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복음을 접하고 받아들이리라 생각합니다.
둘째, 연세신문이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연세중앙교회의 현재를 가능케 하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를 되짚어 보고 상세히 기술하는 작업입니다. 우리의 현재는 과거의 총체적 현실입니다. 그러나 과거는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면서 다가오느냐 하는 것은 과거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현재 우리의 몫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셨습니다”라는 이 한마디가 지닌 많은 내용은 우리의 생각과 사고가 다 품을 수 없습니다.
하나의 중요한 시점에 이르게 되면 우리는 역사를 “하나님께서 행하셨다”는 신명기적 역사관 입장에서 기록하고 회고하고 감사하고 되돌아보는 것, 이것이 바로 성경 역사가 기록하는 방법과 내용입니다. 지금은 참으로 연세중앙교회가 바로 그 역사를 기록해야 하는 시점이라 믿고 싶습니다. 연세중앙교회의 출발과 공간 이동, 그에 따른 하나님의 은혜와 교회의 성장, 목회자의 리더십과 영성과 복음과 신학, 성도들의 변화된 삶의 내용 등이 바로 연세중앙교회의 역사적 기록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어떤 백서(白書)가 아니라 심층적인 신학적 분석과 교훈들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연세중앙교회 초기 성도들의 간증, 시작할 때의 담임목사님 목회 원동력과 그 변화, 시간이 갈수록 바뀌는 교회 공간과 성도들의 모습, 이런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의 열매라는 확신에 이르는 작업 말입니다. 연세중앙교회는 신비로 가득 찬 교회입니다. 다른 교회들과 뭔가 다른 탁월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일에 교회 복도를 걸어가기만 해도 알 수 있습니다. 교회의 룸에서 울려 나오는 기도 소리와 웃음소리는 연세중앙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늘 궁금해하는 것, 그것은 ‘무엇이, 어떻게 해서 성도들의 탁월함을 저토록 분명하게 드러내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충성과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리는 꽤 긴 시간의 기도, 교회를 향한 충성과 목사님을 향한 사랑, 이 모든 것은 이방인의 눈에 늘 신비하게 생각되고, 그 신비로움에 조금 더 다가가고 싶어집니다.
연세신문이 연세중앙교회 구석구석을 가장 잘 알고 계시는 담임목사님과 매번 인터뷰해서 교회의 현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하는 질문과 더불어 교회 역사를 한 줄씩 남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기록은 후대 교회 역사에서도 참으로 귀한 자료로 여겨질 것이며,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역사가 왜 연세중앙교회에서 그토록 두드러지게 나타났는지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기록이 될 것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2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