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따라가는 성지순례 ⑥

등록날짜 [ 2006-11-14 10:35:43 ]


바울은 아시아를 빠져 나와서 유럽을 향해 계속 전진하며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1차 선교여행은 안디옥에서부터 구브로로, 비시디아 안디옥, 더베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서 안디옥으로 오는 굉장히 좁은 지역이었던 반면에 2차 선교여행부터는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광활한 영역으로 펼쳐진다.

예루살렘 사도회의
사도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떠나기 전에 예루살렘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바울은 안디옥에서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운 복음이라는 자신의 복음의 입장을 관철시키며 거기서 목회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이 와서 말하기를 “너희들은 할례도 받아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그러자 안디옥 교회에서 논란이 일어나게 되는데, 바울의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는 입장과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의 주장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교인들은 혼란에 빠졌고 바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나바와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 교회로 올라간다. 이것이 바로 예루살렘 사도회의다. 여기서 선교지 분할과 선교대상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는데, 베드로는 유대인에게,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다.


드로아 사모드라게 네압볼리
유럽의 전도지로 제일 처음 도착한 드로아를 시작으로, 바울은 사모드라게(섬), 네압볼리를 거쳐 마게도냐로 향하게 된다. 드로아는 소아시아 지방의 북서쪽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항구도시이며, 콘스탄틴 대제가 처음에 이곳을 터키의 수도로 정하려 했던 요충지였다. 또한 사모드라게 섬은 종교 중심지가 되었던 곳인데,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위치해서 사도바울이 유럽으로 갈 때 징검다리 역할을 했으나 우상숭배로도 유명한 곳이다. 네압볼리는 지금은 ‘카발라’라는 지명으로 인구 6만의 작은 항구도시다. 마게도냐는 그리스 본토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북쪽에 위치한 변방지역이다. 바울의 유럽 첫 기착지는 화려한 중심지가 아닌 변방지역이었고 척박했다. 하지만 바울은 적의 심장부를 향해서 한걸음 한걸음 돌진해가는 군사처럼 비장한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 본토 중심지를 향해 나아갔던 것이다.

세계선교의 획을 그은 유럽전도
바울의 유럽전도는 교회사, 세계선교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유럽에 복음의 씨를 뿌리고 많은 교회를 세우는데 빌립보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 아덴 교회, 고린도 교회 더 나아가 로마에까지 교회를 세운다. 그래서 서방 교회는 바울을 빼고 생각할 수가 없다. 교회를 크게 보면 예루살렘을 기반으로 한 유대중심적 교회와 바울이 주도했던 이방인 중심의 교회로 양분해볼 수가 있는데, AD 70년 로마 디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 유대적 색깔을 띤 예루살렘 교회는 급격히 쇠퇴하게 된다. 교회사의 주도가 바울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도한 이방인 중심의 교회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그 후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함으로써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가 된 것이었다. 한마디로 로마인들이 처형한 예수님의 복음이 250년 후에는 그들이 믿는 국교로 변한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9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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