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당시 지금의 그리스는 북쪽 지방은 마게도니아, 남쪽은 아가야 지방으로 이루어졌다. 빌립보는 마게도니아 지역의 중심도시였다. 에그나티아 도로가 빌립보 중앙을 관통하고 있었으며 금을 캐던 유명한 금광도시였다. 알렉산드리아 대왕의 아버지인 빌립 왕이 이곳을 빌립보라고 이름 지었다.
안식일에 강가에 나아가 복음을 전하던 바울이 루디아를 만나다
통상적으로 안식일에 하는 선교는 회당에서 이루어졌는데 회당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빌립보에는 회당이 없었던 것 같다. 특별히 회당이 없으므로 유대인들, 이방 개종자들, 공경하는 무리들은 옥외에서 집회를 했는데 가장 적절한 장소가 강가였다. 강가는 구약의 유대교가 정결의식을 하는 데 이용했으며 손을 씻거나 몸을 씻는 데 굉장히 적합한 장소였다. 바울은 그곳에서 루디아를 만났다.
사도행전 16장 14절에도 나와있는 두와디라성 자주장사 루디아는 이방인이면서도 완전 개종은 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공경하던 무리 중 한 사람이다. 요한계시록 2장 18~19절을 보면 두아디라 성이 나오는데 그 성의 주요 업이 염색업과 섬유업이다. 값비싼 자주염색을 하는 장사였는데 지금으로 말하자면 마게도니아의 대리점 경영주 정도인 그런 사람이었다. 보통 루디아가 최초의 여집사라고도 하는데 그 당시 교회제도는 지금과 달라서 최초로 예수님을 믿는 여자 교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 투옥된 이유
근본적인 이유는 바울이 귀신 들린 여자 종을 치료해 줌으로 일어난 사건이었다. 여종의 주인은 그 동안 점치는 그 여종을 통해서 이익을 많이 얻었는데 여종에게서 귀신이 떠나니까 점치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이유와 함께 다른 여러 가지 이유까지 합해져서 미풍양속을 헤쳐 소동하게 하는 사이비 종교라고 무리를 선동하는 바람에 바울이 붙잡히게 된 것이다. 그 주인은 그 당시 인종적 편견을 잘 활용해서 반유대적 정서와 인종적 자만이 어우러져 결국 바울을 투옥하게 된 것이다.
바울의 전도여행에서의 옥중 사건들
바울은 고난의 사도가 아닌가! 고린도전후서를 보면 ‘내가 옥중에도 매이고 매질을 당했다’라는 모습을 보게 된다. 옥중의 사건은 매임의 사건이었지만 빌립보 1장 12절에 의하면 복음 진보의 사건이었고 오늘 우리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영적 교훈을 주고 있다.
감옥에서 바울이 기도하고 참회할 때 지진이 일어나고 옥토가 흔들리고 묶였던 것이 풀리고 또 복음의 문이 열려서 간수가 예수를 믿게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앞뒤가 다 막혀있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빌립보서 4장 6-7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면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지켜주신다’하는 말씀이 태동된 중요한 사건이 아니었나 신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빌립보에서 받은 바울의 고난을 바라보며 우리는 나라와 국경, 그 어떤 열악한 조건에 상관 없이 멸망하는 영혼을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구령의 열정을 불태워야 할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9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