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따라가는 성지순례 ⑧

등록날짜 [ 2006-12-12 13:59:29 ]


또 하나의 복음의 결전의 장소, 복음을 위해 미친 듯이 달려갔던 데살로니가, 그리고 그 여정에서 잠시 거쳤던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가보자.

암비볼리는 마게도니아 지방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였다. 하지만 현재는 인구가 500여 명 정도의 아주 조그만 마을이 되어 있다. 바울이 암비볼리를 들렀던 이유는 전적으로 에그나티아 도로 때문이다. 그 도로는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로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데살로니가로 향하던 바울은 동 도로 상에 있던 암비볼리를 거치게 된 것이다. 그 덕분에 별 특징이 없는 암비볼리가 유명세를 타는 축복을 받았다.
일반 도시들의 경우와는 달리 성경 당시에도 큰 도시였고 지금도 큰 도시인 데살로니가!
이곳은 해변에 있는 항구도시였고 그 당시 에그나티아 도로를 비롯한 모든 육상도로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그 덕분에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니아 지역에서 제일 큰 도시로 번영할 수 있었다. 이 도시에는 특히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바로 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바울이 데살로니가로 갔으리라고 추정된다.

회당에서 강론한 바울
선교 여행을 하는 바울에겐 나름대로의 규례가 있었다.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사도행전 17장 2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첫 번째가 선교방법에 관한 규례다. 안식일을 중심으로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고 그 후에 길가, 강가 등 회당 밖 저자 거리로 나와 헬라인에게 전파하는 방법이었다. 두 번째는 강론의 방법이다. 회당에 들어가면 먼저는 두루마리 성경, 구약성경을 읽고 회당장의 요청이 있으면 강론을 해가는 것이다. 강론의 내용은 구약부터 시작해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한 것이었다.

데살로니가서 탄생의 배경
데살로니가에 도착한 사도바울은 짧은 기간 동안 회당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복음을 들은 사람들 중에는 받아들인 사람도 있었지만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 때문에 폭동이 일어나 법정 고소까지 번지고 급기야 바울은 야반도주하게 된다. 그 후 바울은 데살로니가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바울을 돈을 갈취하던 당시 순회 전도자들과 같은 엉터리 전도자로 생각했고, 바울은 명예와 자신이 전하던 복음의 내용에 굉장히 손상을 입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울로 하여금 데살로니가에 편지를 쓰게 한 동기다. 특별히 복음과 미래의 소망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고 있는데 데살로니가 서신은 바울의 서신들 중 최초의 것으로 1세기 교회의 문을 연 대단히 중요한 서신이다.


데살로니가 교회
사도행전 17장 1절과 9절을 보면 교회가 세워진 모습이 잘 나타나 있는데 바울이 함께 간 동역자 실라와 수석 선교자 디모데를 데리고 고난의 빌립보 사역을 마친 후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도착한 곳이 데살로니가였다. 그곳에서 3주간 회당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는데 유대인들과 많은 귀부인들과 경건한 무리들이 회당에 찾아오게 된다. 이 교회는 많은 어려움 속에 성령의 기쁨을 받아 세워지게 되었고 우상으로부터 돌아선 이방인들이 특히 많았다.
사도바울은 복음에 미친 사람이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에 불탔던 사람이다. 그 열정이 살아 숨 쉬는 곳이 바로 데살로니가다. 그 땅을 밟으며 순례자들은 바울이 주는 메시지를 감지한다. “어떠한 핍박과 고통이 있을지라도 복음 전도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며 축복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위 글은 교회신문 <10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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