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따라가는 성지순례 ⑩

등록날짜 [ 2007-01-10 11:09:34 ]


고린도전서 13장! 일명 사랑장이다. 이 속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적인 사랑을 실천해 나갈 때 모든 것은 통일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바울이 이 사랑장을 기록해 보냈던 고린도를 향해서 가보자.

고린도는 로마의 4대 도시들 중 하나로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교회가 있었던 수리아 안디옥, 그 다음 고린도를 꼽을 정도로 중요한 곳이었다. 그 당시 인구는 40~50만 정도로 보고 있으며, 특별히 바울이 고린도를 선교지로 택한 이유는 많은 유대인들이 살았기 때문이었다.

고린도에 1년 6개월을 머문 이유
사도행전 18장에 보면 바울은 고린도에 1년 6개월이나 머물렀다고 한다. 전도자로서 1년 6개월이라면 굉장히 오래 머무른 것이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에서 어느 정도 복음의 열매를 예상했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머무른 것이 아닌가 신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죄악이 가득 했고 우상이 많았던 고린도! 그 때문에 바울 심령 속의 구령의 열정은 더욱 솟구쳤으리라. 이 외에도 고린도는 유대인 회당이 많아서 유대인들에게 전도하기 좋았고 교통의 요지였기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거점도시로 삼을 만 했으리라.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떠나서 겐그레아로 가게 된다. 이곳은 레카이온 항구와 함께 고린도의 두 개 항구 중 하나이다. 레카이온 항구는 로마 쪽으로 가는 항구였고 겐그레아는 에개 해를 통해서 아시아, 아테네, 이스탄불까지 동편으로 가던 중요한 항구였다. 겐그레아는 고린도 남동쪽 11km 정도에 있는데 대 지진이 일어나서 지금은 ‘여기가 항구였나’ 할 정도로 한적한 해수욕장이 되어 있다. 또한 이곳엔 사도바울 당시의 회당 터로 보이는 곳도 여러 곳이 있다.

음란과 방탕이 난무한 고린도
성경시대에 고린도 사람은 방탕하고 음란한 사람의 상징이 될 정도로 고린도는 방탕한 도시였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종교를 통한 음란 행위였다. 그 당시 사람들은 신들을 섬겼는데 각 지역마다 섬기는 신이 달랐다. 고린도에서는 ‘아프로디테’라고 하는 사랑의 여신을 섬겼다. 아크로 고린도 요새 신전의 3천 명 정도의 여자 사제들은 저녁이 되면 동네에 내려와서 남자들을 데리고 올라가 음란한 종교행사를 행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지역적인 이유다. 이곳은 펠레포네소스 반도 제일 위쪽에 있었는데 이 폭이 6km 정도밖에 안 된다. 그래서 그 반도를 배들이 돌며 움직였는데, 외부에서 들어와 머물던 선원들이 음란성을 더욱 부추겼던 것이다.


고린도 전서에 담긴 교훈
바울은 멀리 떨어져서 고린도교회 안에 있었던 많은 문제를 접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처방으로 고린도전서 13장인 사랑장을 서신으로 보내게 된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신령한 은사를 자기 자랑, 교만, 방탕과 무질서라는 악한 도구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공익을 위해 덕을 세우는 선한 도구로 사용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13장을 읽어보면 흥미롭게도 사랑이 아닌 것이라고 표현된 모습은 고린도교회의 행위와 너무 비슷하다. 시기, 분쟁, 미움, 자만, 교만 등이 그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랑장은 고린도교회의 잘못되고 미성숙한 영성에 대한 아주 중요한 처방이었다.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에도 들어와 있는 세상 풍속,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교회 안에서 끝없이 역사하고 있는 마귀의 역사들, 이것들에 농락당하지 않도록 모든 성도들은 고린도 교회의 모습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겠다.

위 글은 교회신문 <10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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