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05-10 13:53:28 ]
바울과 실라가 전도여행 중 감옥에 갇힌 곳
찬양으로 옥문 열고 간수와 그 가족 구원해
바울과 실라가 갇혀있던 지하 감옥. 아직도 그 유적이 남아 있음은 지하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빌립보는 데살로니가에서 북동쪽으로 약 200km, 네압볼리 항에서 내륙으로 약 16km 지점에 위치한 요새도시였다. 빌립보는 주전 356년경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빌립 왕이 이 도시를 건설한 뒤 자기 이름을 따서 빌립비(Philippi)라 불렀다. 주전 168년에 로마의 속영이 되었다. 지금은 도시의 유적만 남아 있다.
사도 바울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섬)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였다(행16:11~12). 두아디라 성의 자주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는 한 여자가 있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고, 그녀와 그 집이 다 침례를 받았다(행16:14~15).
바울과 실라는 2차 전도 여행 시 이곳에 첫발을 디뎌 유럽 전도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그 첫 열매가 된 교인이 자주장사 루디아였다. 바울과 실라는 귀신들린 여자 점쟁이에게서 귀신을 내쫓아 고쳐 주었다. 주인이 자기의 수입이 없어진 것을 원통히 여겨 군중을 충동시켰다.
A.D 50~52년경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 중에 빌립보에 최초로 세워진 유럽교회. 현재는 몇 개의 기둥과 흔적만 남아 있다.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송사 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침례를 받은 후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기뻐하니라”(행16:22~34).
바울과 실라는 자결하려는 간수에게 전도하고, 온 가족에게 침례를 베풀었으며 복음을 심어준 후 감옥에서 나와 루디아 집에 들러 형제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떠나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경유하여 데살로니가로 향했다.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을 대단히 존경하였으며 바울에게 받은 신앙을 감사하여 바울이 마게도냐를 떠날 때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 여러 차례 도와주었다(빌4:15~16). 사도 바울은 빌립보 초대교회를 마음속으로 깊이 사랑하였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빌립보교회에 권고와 감사의 편지를 했다.
빌립보에서 발굴된 유적 중 가장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빌립보 감옥이다. 그리고 루디아 기념교회를 비롯하여 야외 원형극장, 아고라(Agora), 신전들, 넓은 공회 광장, 팔각형교회, 체육관, 목욕탕 등의 유적이 있으며 박물관에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 네압볼리(Neapolis) 항은 바울이 유럽 땅에 배에서 처음 내린 항구이기 때문에 바울 도착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 현재의 이름은 카발라(Kavala)라고 부른다.
위 글은 교회신문 <19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