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땅을 가다] 예루살렘성 8개 문의 의미와 역사적 고증

등록날짜 [ 2010-05-24 09:03:07 ]

△황금문 - 예수가 예루살렘 입성 시 사용했던 문
△스데반문 - 스데반이 이 문 근처에서 순교 당해


                                              황금문                                                        스데반문

예루살렘에는 현재 8개(황금문, 스데반문, 분문, 시온문, 욥바문, 새문, 다메섹문, 헤롯문)의 문이 있다. 본지는 2회에 걸쳐 이 8개 문에 대해 다룰 예정이며, 이번 호에서는 황금문과 스데반문에 대해 다룬다.

1. 황금문(Golden Gate)
이 성문은 예루살렘 성벽의 동쪽에 있는 문으로 6세기경에 만들어졌다고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 문은 쌍문으로 되어 있고 8개 성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인데 지금은 돌로 봉쇄되어 있다.

성전에서 이 성문을 바라보면 감람산이 정면으로 일직선에 놓인 상태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감람산에서 예루살렘 대성전으로 통하는 성문이다.

제2 성전시대(주전 445년경~주후 41년경)에는 이 자리에 수산문(Shushan  Gate)이 있었다고 한다. 바벨론 포로지인 수산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이 이 문을 통과해서 입성했다고 해서 수산문이라 불렀다. 비잔틴시대 사람들은 미문(美門)이 바로 수산문을 가리킨다고 생각했다(행3:2,10). 그래서 라틴어로 뽀르따 아우레아(Porta aurea, 금으로 된 문)라고 옮겨 불렀다. 바로 여기서 연유하여 영어로 골든 게이트(Golden Gate)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아랍인들은 ‘영원의 문’이라 불렀고 여기에 연유하여 ‘심판의 문’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이 성문이 쌍문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쌍둥이의 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쌍문의 한쪽은 ‘통회의 문’, 다른 한쪽은 ‘자비의 문’이라고 부르고 있다. 유대인들은 이 성문을 ‘자비의 문(Mercy Gate)’이라고 부른다.

십자군시대에는 봄에 있는 종려 주일과 가을에 있는 십자가의 날에 이 성문이 열렸다. 십자가의 날(The Holy Cross Day)은 629년 9월 중순, 비잔틴시대 왕인 헤라클리우스가 예수님이 달리셨던 것으로 믿어지는 십자가를 이 성문으로 예루살렘성에 들여왔던 날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 황금문이 봉쇄된 이유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는데 관심을 끄는 부분은 신학적 해석이다.

“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 동향한 바깥문에 돌아오시니 그 문이 닫히었더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문을 닫고 다시 열지 못할찌니 아무 사람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 왔음이라 그러므로 닫아 둘찌니라(겔 44:1~2).”

즉,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이 성문을 통과하셨기 때문에 이제 봉쇄돼야 하고 종말에 심판하러 오실 때 이 문은 다시 열리게 된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입성할 문이라고 믿고 있다. 황금문 바깥에는 유대인들의 무덤들이 있다. 그들은 메시아가 오실 때 성문이 열리게 되고 죽었던 영혼이 메시아를 따라 예루살렘성으로 입성할 것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2. 스데반문(St. Stephen's Gate)

이 성문은 성벽의 동쪽에 있는 문으로 이 문으로 나가면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 겟세마네 동산과 여리고로 가게 된다. 이 성문을 나가 우측으로 돌아가면 황금문으로 가고 좌측으로 돌아가면 헤롯문으로 가게 된다.

기독교인들은 이 성문을 스데반문(St. Stephen’s Gate)이라고 부른다. 기독교의 첫 순교자인 스데반이 이 성문 밖 가까운 곳에서 순교했기 때문이다. 이 스데반문에서 약 200m 남동쪽으로 희랍 정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스데반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다(행7:54~60, 8:1~2).

현재도 매년 종려 주일에 기독교인들이 종려가지를 들고 벳바게로부터 행진하여 감람산을 넘어 겟세마네 동산을 거쳐 이 성문으로 입성하고 있다. 1920년에 영국군은 자동차가 통행할 수 있도록 개조하였으며 1967년 6일 전쟁 시 이스라엘 군인들은 이 성문을 최초 점령하여 예루살렘성을 손쉽게 장악하였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194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