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땅을 가다(23)] 유대인의 거룩한 기도 장소

등록날짜 [ 2010-06-21 23:11:13 ]

주후 70년 성전 파괴 후 남아 있는 서쪽 성벽
이스라엘 민족의 꿈을 상징하는 ‘성소’로 남아


성전산 서쪽 벽은 총 길이가 약 485m이었는데 약 60m만 지금까지 남아서 당시 이스라엘 멸망에 대한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는 이 성벽은 고대 유대인들이 대단히 거룩하게 여긴 곳으로 주후 70년 로마 사람들에 의해 파괴된 예루살렘 제2성전 가운데 현존하는 유일한 유적지다.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서쪽 성벽 일부이기 때문에 서쪽 벽(The Western Wall)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서쪽 벽은 헤롯왕 때 쌓은 성벽 중에서 남은 일부분이다.

당시 예루살렘 성벽은 60여 년에 걸쳐 축성하였는데, 400톤이나 되는 돌을 비롯해 평균 1~3톤짜리 돌을 쌓은 길이 50m, 높이 18m인 웅장한 성벽이었다.

예루살렘성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24:2)고 예수께서 예언하신 대로 주후 70년 로마 장군 티토에 의해 파괴될 때 지렛대로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게 무너뜨려졌다.

그러나 성전산 서쪽 벽은 총 길이가 약 485m이었는데 약 60m만 지금까지 남아서 당시 이스라엘 멸망에 대한 역사를 대변한다.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에 유대인들에게 성전출입을 금지하였으나 일 년에 단 한 번 성전을 파괴한 날인 아브월(양력, 7~8월) 9일만은 하루 동안 예루살렘에 출입하게 해주었기에 많은 유대인이 이 서쪽 벽 가까운 곳에 모여 성전이 파괴된 것을 슬퍼하며 울었다. ‘통곡의 벽’이라는 이름은 유럽 여행자들이 거룩한 성전 유적지 앞에서 밤을 새워 슬프게 우는 경건한 유대인들을 보고 붙인 이름이다.

주후 7세기경 이슬람교 오마르 왕이 이곳에서 유대인들이 기도하도록 허락해주었다. 그때부터 이 서쪽 벽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거룩한 기도 장소가 되었다. 유대인들은 성전산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통곡의 벽에 가서 여호와께 그들의 소원을 빌고, 또 기도의 제목을 종이쪽지에 써서 벽 틈에 끼워두기도 한다.

통곡의 벽을 반으로 나누어 남쪽은 여자들이 기도하고 북쪽은 남자들이 기도하도록 구분하였다. 성지 답사자들도 기도처에 들어갈 수 있으나 남자는 반드시 머리에 키퍼(둥근 작은 모자)를 쓰고 들어가야 하며 여자는 어깨와 무릎이 드러나지 않는 옷을 입고 들어가야 한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성과 이 통곡의 벽을 되찾은 것은 1967년에 일어난 6일 전쟁에서 승리한 후이다.

이스라엘 정예 공수부대는 완강한 저항을 받으며 구 예루살렘성 사자문을 6월 7일 10시경 통과했다. 2000여 년 동안 잃었던 예루살렘성을 그날 정오에 완전 점령한 후, 이스라엘 병사들은 통곡의 벽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통곡의 벽은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 땅을 되찾겠다는 꿈을 상징하는 성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이곳에서 유대인들의 민족 집회가 열리고 군인들이 선서식도 한다. 또 오늘날 유대인이 만 13세에 달했을 때 행하는 발 미쯔바(Bar Mitzvah)라는 성년의식도 이곳에서 성대하게 거행한다. 성년식은 결혼식과 함께 일생 중 가장 성대하고 중요한 행사로 여긴다.
                           

위 글은 교회신문 <19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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