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땅을 가다 (24)] 유대인의 거룩한 기도 장소

등록날짜 [ 2010-06-28 23:31:32 ]

병자를 고친 베데스다 연못… 현재 교각 일부만 남아
빌라도 법정인 안토니 요새… 아랍 초등학교 들어 서



베데스다 연못
베데스다 연못은 현재 성 안에 있으나 예수님 당시에는 성 밖 북쪽 벽에 가까운 곳으로, 성전으로 들어가는 양문(느3:1, 요5:2) 곁에 있었다. 베데스다는 히브리어로 ‘자비의 집(House of Mercy)’이라는 뜻이다.

성경에,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었다고 적혀 있다(요5:2). 베데스다 연못이 양문 곁에 있었다고 전하는데 양문(羊門)이라는 이름은 구약시대부터 이 근처에 양이나 염소 등을 사고파는 시장이 있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본래 주전 2세기에 시몬이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만든 못인데 길이가 100~110m, 너비가 60~80m, 깊이가 7~8m인 두 개의 쌍둥이 연못으로 성전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과 더불어 종교적, 의학적인 목적으로 건축하였다.

이 연못은 치료 효과가 있다고 해서 늘 많은 환자가 모인 장소였으며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성스러운 곳이기도 하다(요5:2~9).

이 연못은 그간 흙으로 덮여 있었으나 1888년에 발굴하여 그 길이가 105m, 폭이 60m, 깊이가 7.5m인 직사각형 형태로 회랑 네 개가 둘러싸고 있고, 그 측면에는 회랑 다섯 개가 있다. 이로써 요한복음에 행각 다섯 개라는 기록을 입증하고 있다. 이 연못 중 하나에서 성전에 희생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양을 잡아 깨끗이 씻어서 번제로 드렸다. 하나님께 드릴 번제물을 이 베데스다 못에서 깨끗이 씻었기 때문에 병자들도 자기들의 몸을 하나님께 드릴 제물처럼 이곳 물로 깨끗이 씻으며 병이 낫기를 소원했다는 것이다.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의 이적을 기념하기 위한 교회를 비잔틴 시대에 건축했다. 그러다가 그 교회는 614년 페르시아에게 파괴된 후 십자군시대에 다시 작은 교회를 세웠으나 역시 파괴되었다.

현재는 못 일부를 발굴해 놓은 모습과 비잔틴 시대 교회 교각 일부를 복원한 모습, 그리고 십자군시대 교회 흔적을 조금 볼 수 있다.

안토니 요새(빌라도 법정)
안토니 요새는 예루살렘 대성전 북서쪽 성벽 모퉁이에 있는 요새다. 원래는 하나넬 망대(렘31:38)가 있던 곳이다. 헤롯왕이 제2차 성전을 재건할 때 주전 31년, 성전의 북서쪽 성벽을 더욱더 넓고 크게 확장하면서 성전수비대를 위한 안토니 요새를 건축했다.

헤롯은 그의 친구 마가 안토니(Mark Antony)를 기념하기 위하여 안토니 요새라 하였으며 큰 수비탑 4개와 함께 견고한 사각형 형태로 지었다.

안토니 요새는 금요일 이른 아침에 산헤드린에 의해 고소당한 예수께서 가야바 집으로부터 이곳에 끌려와서 빌라도 총독에게 재판을 받은 장소다. 그래서 일명 빌라도 법정이라 한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끌고 나와서 박석이란 곳에서 재판석에 앉았다고 했는데, 예수님이 박석 위에서 재판을 받은 것이다(요19:13).

이 안토니 요새 안에서 예수님이 조롱을 당하고 사형선고에 처해 골고다를 향한 행진을 처음 시작한 곳이다.

또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체포되어 성전 밖으로 끌려가자 로마 병정들이 그를 결박하여 ‘영문 안으로’ 데려갔던 그곳이 바로 안토니 요새였다. 그곳 층계 위에 서서 바울은 백성을 향해 히브리 말로 연설을 한 다음, 병정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가이사랴에 있는 벨릭스 총독에게 호송됐다(행21:27, 23:35).

로마 티투스 장군은 예루살렘 북쪽으로부터 공격을 감행하여 주후 70년 7월 24일에 예루살렘 성을 완전히 점령할 때 이 요새는 무너졌고 로마군대가 이곳에 주둔하였다. 현재 이 요새 벽면을 남겨둔 채 아랍 오마리엘 초등학교(Al Omariyel Primary School)가 자리 잡고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19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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