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땅을 가다(44)] 엘리야교회와 사울 왕의 고향 땅 기브아

등록날짜 [ 2010-12-01 10:32:09 ]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자와 떠난 자의 삶 대조


엘리야교회(좌)와 기브아 지역(우)

엘리야교회(The Church of St. Elijah)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는 중간지점 도로 왼편에 있는 교회가 엘리야 기념교회다. 이 교회는 처음 주후 6세기경에 세워졌으나 파괴되었고, 현재 교회는 주후 1160년에 재건한 것이다.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 산에서 기도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과 도랑물까지 모두 태우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러자 엘리야 선지자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기손 시내로 끌고 내려와 모두 죽였다.

그때 아합 왕과 왕비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 하자 엘리야 선지자가 브엘세바로 도망가다가 이곳에서 쉬었다고 하여 기념교회를 세웠다(왕상18:19~40).

탄투르(Tantur)
엘리야 기념교회에서 베들레헴 방향으로 약 500m 지점 도로 오른편 언덕에 있는 건물이 탄투르다. 이곳은 모든 교파 신학자가 모여 연구하는 아카데미기관이다. 매주 토요일에 예배드리고 성지순례도 한다.

주후 1963년 바티칸 공회에 참관인으로 동석한 오스카 쿨만 등 개신교 신학자들이 교황 바울 6세에게 개신교, 천주교, 정교회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화하며 연구하는 장소를 마련해줄 것을 건의했다. 이 건의가 받아들여져 예루살렘 탄투르가 문을 열었다.

그 후 1971년, 신학연구소(Ecumenical Institute for Advanced Theological Studies)를 발족하였다. 탄투르 도서관에는 신학에 관한 도서가 3만 권이나 소장되어 있어 많은 신학자가 도서관을 찾는다. 한국의 뜻있는 신학교수, 목사가 종종 들리는 곳이기도 하다.

기브아(Gibeah)
기브아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산’ 또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베냐민 지파 성읍으로 사울 왕의 고향이자 이스라엘의 첫 왕국 수도다(삼상11:4; 15:34). 동으로는 와디 파라, 서로는 소렉 골짜기가 위치하여 에브라임 산지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할 때 병목지역으로 전략적 요지다.

사울 왕은 블레셋 군대와 싸울 때 기브아에 요나단의 병력 1000명을 배치했다(삼상13:1~2). 사울 왕은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기브아로 불러 다윗과 공모하여 대적한다는 이유로 85명을 죽이고 그 가족을 다 죽였다(삼상22:18~19). 놉은 현재 히브리대학교가 있는 스코프스 산 지역 일대다.

기브아는 유다 왕 아비야 모친 미가야의 고향이기도 하다(대하13:1~2). 호세아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을 향하여 “저희는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패괴한지라 여호와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호9:9)”고 경고하며 기브아를 상기하였다.

성경 상의 기브아는 이스라엘 초대 왕인 사울의 고향이다(삼상10:26). 옛적에 성소가 있던 곳이므로 하나님의 기브아라 한다(삿19:6). 이곳은 종교적 암흑기요, 영적 혼란기인 사사 시대의 윤리적인 타락상을 보여준다.

그것은 레위인 첩 사건에서도 잘 나타난다. 에브라임 산지에 살던 한 레위인이 첩을 두었다. 그런데 그 첩이 다른 남자와 간음하고 도망을 갔다. 그러자 레위인은 도망간 첩이 있는 장인의 집에 가 그녀를 데리고 돌아오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기브아에서 한 노인의 집에 들려 하룻밤을 쉬어 가는데 그곳 불량배들이 몰려와 레위인과 동성애를 요구하였다. 막무가내인 그들에게 레위인은 결국 자기 첩을 내어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밤새도록 고통을 당한 레위인의 첩은 처참하게 죽고 말았다. 그러자 레위인은 죽은 자기 첩의 시체를 열두 덩이로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각지에 보냈다. 그는 기브아 사람들의 악행을 천하에 알리고자 한 것이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사사 시대의 타락상을 여실히 살펴볼 수 있다. 레위인이 첩을 둔 일, 그 첩의 간음행위, 만연한 동성애, 불량배들의 만행, 경악할 만한 사체 절단 행위 등등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자들의 삶의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삶은 결국 처참한 악행과 심각한 부도덕 가운데 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롬1:24~32).

기브아 정상에서 세겜 쪽으로 내려다보이는 큰 마을이 사무엘 고향인 라마(Rama)다(삼상1:19~20). 라마 가까운 북편에 경비행기를 이착륙할 수 있는 예루살렘 비행장이 있다. 이 비행장은 6일 전쟁 이전에 요르단 후세인 왕이 예루살렘 황금사원을 방문할 때 사용하였다.

비행장에서 북쪽으로 예루살렘에서 약 12km 지점에 사울을 왕으로 세운 ‘미스바’가 있다. 미스바는 온 이스라엘이 모여 국민대회를 열고 금식기도로 죄를 고백한 신령한 집회소였다(삼상7:3~11).

위 글은 교회신문 <21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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