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2-02 15:52:48 ]
고대부터 내려온 곡창지대, 악고.이스르엘.샤론.블레셋 평야
<사진설명>카르멜 산 수도원에서 바라본 이스르엘 평야
이스라엘은 지중해에 접한 해안선 약 270km를 차지하고 있다. 해안 평야는 해안선에 접하여 그 폭이 북은 10km 미만이며 남으로 내려오면서 점차 넓어져서 32km가 되는 지역도 있다. 이 평야는 토사가 퇴적해 형성한 평야로, 극히 단조로운 전체 해안선에 걸쳐 사구((沙丘)가 발달한 것이 특징이다.
이곳은 지중해 영향으로 강우량이 비교적 풍부하고 잘 발달한 해안 도로를 따라 고대로부터 큰 도시들이 건설되어 이스라엘 전체 인구 절반가량이 해안 지역에 살고 있다. 해안 평야 지역은 모래와 사암이 대부분이어서 농작물 재배가 잘 되고, 특히 포도, 사과, 오렌지 등 과일 재배에 적합하다. 이곳에는 키부츠(국영농장)와 모샤브(개인농장)가 많이 들어서 있다. 해안에 인접한 평원은 북쪽으로부터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악고 평야, 이스르엘 평야, 샤론 평야, 블레셋 평야로 이어져 있고 고대로부터 매우 기름진 곡창지대다.
① 악고 평야는 이스라엘 최대 항구도시며 공업도시로 발전한 하이파에서 북으로 뻗어 있다. 평야의 폭이 북단은 3km이나 남하할수록 점점 넓어져 남단은 13km 정도 되는 비교적 협소한 평야다. 기손 강과 기타 소하천에서 흘러내린 토사로 퇴적한 충적평야이기 때문에 토질이 매우 비옥하다.
② 이스르엘 평야는 갈멜 산을 끼고 남동쪽으로 평원이 펼쳐져 있어 기손 강과 하롯 샘이 연결되며 지중해와 요르단 계곡을 연결하는 큰 계곡 평원으로 동서 간을 잇는 유일한 횡단로를 제공하고 있는 교통상 요지다. 또 이스르엘 평야에 이어지는 계곡은 이스라엘 중앙 고지를 가로지르는 회랑(回廊) 지대다. 이곳은 애굽에서 해안 지방으로 올라가 수리아와 갈릴리 방면에 이르는 해변 길, 악고와 베니게로 통하는 길, 헤브론과 예루살렘 방면에서 북상하는 길 등 3대 간선도로가 교차하는 교통상 최대 요지로 팔레스타인의 지배권을 장악하는 데 전략적 가치가 대단히 컸다.
③ 샤론 평야는 갈멜 산 남쪽으로부터 욥바에 이르는 약 50km, 동서 폭이 3~5km에 이르는 평원이다. 샤론(Sharon)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의미로 ‘평평한 지방’이라는 뜻이다. 성경에, 갈멜과 샤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라(사35:2),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아2:1) 등 주님을 샤론에 피는 들꽃에 비유하여 참사랑의 향기와 겸손을 상징했다. 이 평원의 소택(沼澤)과 습지는 양 떼와 소 떼가 풀을 뜯는 안전한 방목지로 이용하였다. 샤론은 양 떼 우리가 되었고(사65:10), 샤론 사람 시드래는 샤론에서 먹이는 소 떼를 맡았고, 우들래 아들 사밧은 골짜기에 있는 소 떼를 맡았다(대상27:29)는 사실로 보아 샤론은 좋은 목축지였음을 알 수 있다.
고대 때는 상수리나무 숲이 많았고 얄곤 강을 비롯한 5개 소하천에서 흘러들어와 사구를 형성하여 욥바에서 가이사랴 사이에는 늪지대가 많았다. 상수리나무는 제1차 세계대전 때 터키가 철도용으로 베어 사용했다. 그 후 오래 내버려두던 샤론 평원은 현재 크게 변모하였다. 소택과 늪지는 배수 시설을 잘하여 좋은 농토로 전환했고, 고대에 농사에 적합지 않던 붉은 모래밭은 오렌지 재배 적지로 변해 ‘황금 오렌지 지대’로 바뀌었다. 오렌지는 이스라엘 중요 수출품으로 ‘욥바 오렌지(Jaffa Orange)’라는 상호를 붙여 수출하고 있다.
④ 블레셋 평야는 욥바로부터 가자(가사)까지 최남부 해안 지대인데 블레셋 사람의 땅이라고 한다. 블레셋 평야의 동쪽은 유다 산지에 연속한 쉐펠라 구릉지대에 접해 있으며, 남쪽 길이 70km, 동서 폭은 북단 21km 남단이 32km나 된다. 블레셋 평야가 북쪽 샤론 평야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점은 해안에 있는 사구 발달이다. 이 평야는 아스글론에서 라기스에 이르는 선을 경계로 땅이 낮은 북부와 땅이 높은 남부 두 지구로 구분된다. 북부는 밀, 남부는 보리가 잘 재배된다. 남부는 사막의 영향을 받고 있으나 적당한 강우량으로 옛날에는 산림이 우거졌고 목축이 활발하여 양 떼들이 많았다.
위 글은 교회신문 <22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