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땅을 가다(54)] 이방 선지자들과 대결해 거둔 승리

등록날짜 [ 2011-02-15 15:54:51 ]

하나님만이 참된 신임을 입증한 갈멜 산 무흐라카 정상


<사진설명> 악고 지역은 해변 항구도시다(좌)  갈멜 산 엘리야 석상(우)

갈멜 산(Mt. Garmel)
이스라엘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불쑥 튀어나온 부분이 갈멜 산 지역이다. 높이는 보통 500m, 폭이 10km로 뻗은 산맥의 산악지대 전체를 갈멜 산 지역이라 부른다. 갈멜 산은 제일 높은 곳이 해발 546m, 엘리야 교회가 있는 무흐라카는 해발 486m로 샤론과 이스르엘 두 평원 사이에 높이 솟은 산이다. 수목이 우거졌고, 산 아래 기손 강이 흐르며, 지중해까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갈멜 산은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포도원’이라는 뜻이다.

구약 성경은 갈멜 산이 아름답고(아7:5;사35:2) 풍요한(렘50:19) 명산이라고 기록했다. 갈멜 산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와 12지파에게 땅을 분배할 때 아셀 지파에 속했으며, 여호수아가 이 산중에 있던 ‘욕느암’ 왕을 격멸했다(수12:22).

북 왕국 이스라엘 아합 왕은 시돈 왕(지금 레바논)의 공주인 이세벨과 왕실 결혼을 했다. 그녀는 바알 신을 섬기는 광신자로, 왕권을 이용하여 자기가 믿는 신을 이스라엘에 확산하여 종교적으로 큰 위기를 맞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예언자 엘리야가 혜성처럼 나타났다.

주전 860년 바알 신 중심지였던 갈멜 산에서 엘리야 선지자는 혼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참신과 거짓 신을 분별하는 대결에서 승리하는 동시에 기손 강에서 저들을 전멸하였다(왕상18:19~40). 그 후 엘리야가 일곱 차례 기도하여 손바닥만 한 구름이 지중해에서 떠올라 큰비가 내리기도 했다(왕상18:41~46).

엘리야가 이 산에 있을 때 아합 왕의 아들 아하시야가 엘리야를 잡으러 50부장과 50명을 두 번 보냈을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죽였다(왕하1:9~12). 엘리야가 승천한 후 엘리사가 잠시 이 산에서 머물렀으며, 수넴 여인을 만나 함께 그 집에 가서 죽은 아이를 다시 살리기도 했다(왕하2:25;4:25~35).

엘리야가 단신으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와 대결하여 승리한 곳은 갈멜 산 줄기 중 무흐라카(Muhraqa)라 부르는 산 정상이다. 무흐라카는 ‘불의 장소’ 또는 ‘불이 내려온 곳’이라는 뜻이다.

무흐라카 산에는 엘리야 석상이 서 있다. 석상 받침대 앞면에는 라틴, 아랍, 히브리 세 언어로 엘리야에 관한 구절이 기록되어 있다. 오른팔을 높이 들어 칼끝이 휘어진 칼자루를 잡고 서 있는 엘리야를 바라보노라면 그 선지자의 놀라운 믿음의 능력에 압도된다.

갈멜 산 줄기를 따라 지중해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전망 좋은 위치에 갈멜 수도원이 서 있다. 엘리야 동굴이라고 전해지는 동굴을 중심으로 세워진 수도원이다. 12세기 십자군 시대에 이 동굴을 중심으로 갈멜 수도회(Carmelite Order)가 생겼고 그 후 수도원 건물이 섰다.

오늘날 이 수도원은 전 세계 갈멜 수도회의 중심이다. 엘리야 동굴은 엘리야가 아합 왕을 피해 숨었던 곳이며, 아기 예수와 그 가족이 애굽에서 돌아올 때에 이 동굴에서 지내다가 나사렛으로 갔다고 전해진다.

악고(Akko)
이스라엘 북쪽 해변 항구도시로 예루살렘에서 약 181km, 하이파에서 약 23km, 티베리아에서 약 56km 거리에 있다. 악고 만에 접하나 옛 악고에는 아랍인들이 주로 살고 있고, 옛 악고 북쪽에 있는 현대 악고는 유대인들이 주로 살고 있다.

악고지역에는 십자군 시대 전성기에 건축한 성벽과 건축물 일부가 남아 있는데 지하 건물 일부분이 잘 보존돼 있다. 악고는 여호수아가 점령하지 못한 도시 중 한 지역이다(삿1:31). 본래 이 도시는 페니키아 도시로 두로(Tyre)와 시돈(Sidon)과 더불어 군사적, 상업적인 중심지였다.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두로를 떠나 돌레마이에 이르러 하루를 머물다가 가이사랴에 있는 빌립의 집으로 떠났다(행21:7). 주후 638년 모슬렘이 팔레스타인에 들어오면서 이 도시는 아랍의 매우 중요한 요새로 발전하였고, 주후 1104년 십자군 볼드윈(Baldwin) 장군이 점령하면서 십자군의 수도로서 성지 탈환의 꿈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후 1187년 아랍 사라딘 장군에게 전국이 점령당할 때에 악고도 점령당했으나 1191년에 십자군이 회복한 후 1291년에 다시 아랍국에게 완전히 멸망하였다. 터키 시대가 끝나자 주후 1917년부터 영국 통치하에 있다가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할 때 이스라엘 영토가 되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2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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