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2-24 10:48:58 ]
유대 총독 빌라도가 예수를 재판한 곳… 십자군 시대 완전히 파괴
<사진설명> 가이사랴 지방의 야외 원형극장 유적(왼쪽), 가이사랴에 있는 빌라도 기념비(오른쪽)
가이사랴(Caesarea)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인 하이파에서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약 37km 지점 해안 지역이 가이사랴다. 현재는 사람이 거주하는 도시가 형성되어 있지 않고 오직 옛 유적만 남아 있다. 가이사랴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다른 항구들과 달리 항구로서 좋은 조건을 갖추지 못한 곳이다.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Augustus Caesar 주전 27~주후 14년)가 헤롯 왕에게 가이사랴 지역을 하사했다. 헤롯 왕은 건축 광인(狂人)으로, 로마 황제 가이사에 대한 감사 표시로 항구와 도시를 건설하고 이 항구도시의 이름을 가이사랴(Caesarea)라고 불렀다.
헤롯 왕은 가이사랴에 시장터 아고라(Agora)와 경기장, 야외 원형극장, 로마식 공중목욕탕 등을 건축하여 당대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는 대도시로 만들었다. 로마제국은 가이사랴를 유대 지방 행정수도로 하여 정치중심지로 삼았다. 로마에서 파송한 총독 관저와 행정본부가 이 도시에 있었다.
가이사랴가 로마 시대와 비잔틴 시대에 아주 큰 도시를 형성했다는 사실은 그 유적을 보아 알 수 있다. 비잔틴 시대에 10만 명이 거주했고 그 후 십자군시대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십자군 시대에 가이사랴에 건설된 거대한 요새의 유적은 지금도 남아 있다. 십자군 원정이 실패로 끝나자 1265년 마믈묵(이집트 왕)이 십자군 요새였던 가이사랴를 점령하면서 완전히 파괴하고 모래 속에 파묻었다. 그 후 600년이 지난 후 20세기에 접어들어 고고학자들이 발굴하였다.
가이사랴 성은 십자군 시대(주후 1291~1517)에 규모가 가장 작았고, 헬라 시대(주전 332년~166년)에는 십자군 시대보다 3배 컸으며, 헤롯 시대(주전 37~4년)에는 십자군 시대보다 8배나 규모가 컸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관객들이 바다를 바라보고 앉을 수 있는 야외 원형극장이다. 지금도 예술가들이 공연장으로 사용하며, 국제적 규모인 이스라엘 음악제도 열린다.
가이사랴 유적 가운데 로마식 수로(水路)는 갈멜 산 줄기 샘에서 물을 끌어들이는 대역사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또 관심을 끄는 유물로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라는 글씨가 새겨진 기념 돌비가 있다. 이 돌비는 예수를 재판한 로마 총독 빌라도가 가이사랴에 주재(駐在)했다는 증거다. 기념비 진품은 이스라엘 박물관에서 소장되어 있으며, 가이사랴에 있는 것은 모조품이다.
가이사랴에 주둔하던 로마 백부장 고넬료는 욥바 피장(皮匠) 시몬 집에 머무르던 베드로를 데려오게 하여 자신과 함께한 모든 사람이 침례를 받았다(행10장). 베드로가 유대인이 아닌 로마제국 장교 고넬료와 그 친지들에게 침례를 준 사건은, 유대인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인종과 국가를 초월하여 범세계적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한 역사적인 일이었다.
가이사랴는 사도 바울이 여러 번 전도 여행 중 들렀던 곳이며, 일곱 집사 중 하나인 빌립 집에 머물러 있기도 했다(행21:8). 마지막으로, 바울은 로마로 이송되기 전 2년간(주후 57~59년) 가이사랴 감옥에 갇혔다가 배를 타고 로마로 향했는데, 로마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사진설명> 이스라엘 최대 항구도시 하이파 지역
하이파 (Haifa)
이스라엘에서 북쪽 약 159km 지점 해변에 있는 이스라엘 3대 도시 중 하나며, 예루살렘, 텔아비브에 다음가는 큰 도시다. 하이파는 북부 이스라엘 중심도시로 지중해를 통한 통상교역과 해상수송 역할을 담당하는 이스라엘 가장 큰 항구도시며 최대 공업도시다.
하이파는 첨단기술이 집약해 있는 산업도시로서 공장이 많이 있으며 공업관계 박물관, 공업기술연구소가 있고 세계적인 테크니온 공과대학교와 하이파 대학교가 있다.
이 도시에는 대부분 유대인들이 살고 두르즈, 이슬람교, 기독교, 바하이교를 신봉하는 소수 종교인이 살고 있다. 특히 바하이(Bahai)교는 하이파를 중심지로 삼고 있다. 바하이교는 주후 1863년 페르시아 후세인 알리(Husayn Ali)가 전 인류 화합을 제창하여 창시한 종교다. 바하이교는 이슬람교 시아파계에서 파생했고 전 종교 진리의 통일과 세계 인류의 통합을 강조한다.
하이파가 정면으로 내려다보이는 갈멜 산 언덕에 황금색 둥근 지붕을 한 페르시아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이 바하이교 본부다. 전 세계에 바하이교 신도는 약 200만 명이 있다고 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23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