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4-29 16:08:01 ]
기드온과 300용사에게는 승리를, 사울에게는 죽음을 안긴 곳
길보아 산은 이스르엘 평야 서쪽에 있는 산으로 산맥을 이루고 있다. 길이는 32km, 가장 넓은 폭은 14km, 최고봉 높이는 해발 546m에 이른다.
요단 강 동쪽에서 벧산을 거쳐 이스르엘 계곡을 따라 므깃도에 연결되는 통로는 수리아에서 애굽을 왕래하는 주요 도로며, 대상 왕래와 군사 이동에 중요한 통로였다.
이 골짜기 통로를 경계로 남쪽으로 길보아 산과 북쪽으로 모레 산이 마주 보고 있다. 그리고 길보아 산 북서쪽 하롯 계곡에서 하롯 샘이 흘러나와 벧산을 거쳐 요단 강으로 흐른다.
<사진 설명> 군사상 중요한 자리였던 길보아 산. 로마시대 유적이 있다.
기드온은 수많은 백성을 데리고 길보아 산기슭에 있는 하롯 샘(Harod Spring)으로 가서 진을 쳤다.
미디안 군사는 기드온 군사의 진을 마주 보고 하롯 샘 북쪽 모레 산(Moreh Hill) 앞 골짜기에 진을 쳤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모인 병사 수가 너무 많으니 용기 없는 자는 떠나게 하라고 하셨다. 처음에 모인 인원은 3만 2000명이었다. 돌아간 자가 2만 2000명, 남은 자가 1만 명이었는데 하롯 샘가에서 물을 먹도록 하여 개처럼 혀로 물을 핥는 자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로 구별하였다. 적을 경계하며 물을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은 자 300명만을 선택하였다(삿7:1~8).
미디안 동맹군 13만 5000명은 골짜기에 누워 있어 그 수가 메뚜기만큼 많았으며, 약대(낙타)는 해변의 모래같이 많았다. 기드온은 이스라엘 진중에 돌아와서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며 자신 있게 외쳤다(삿7:14).
기드온의 전법은 특이했다. 300명을 100명씩 세 부대로 나누고 각각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게 하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준비했다. 그런 후 미디안 진영에 이르러서 기드온과 그를 좇는 군사 100명이 나팔을 불면 모두 진 사면에서 나팔을 불고 “여호와를 위하여”, “기드온을 위하여”를 외치도록 명령하였다.
드디어 기드온 군사 100명이 밤 10시경에 미디안 진에 이르자 일시에 나팔을 불며 손에 든 항아리를 부수었다. 하나님이 준비시킨 횃불은 성령의 상징이요, 나팔은 복음의 나팔이며 항아리를 깨뜨림은 인간적 자아를 깨뜨림을 의미한다.
캄캄한 밤에 모두 잠든 진영에서 갑자기 나팔소리가 요란하고 항아리 깨지는 소리가 크게 들리며 횃불이 사면에서 왔다 갔다 하고 큰 소리로 외쳐대니 미디안 군사들은 혼비백산하여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 적으로 오인하여 저희끼리 서로 칼부림하였다.
기드온 300명 용사는 추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요단 동편 숙곳(Succoth)에 이르렀다. 미디안 군사는 무려 12만 명이 죽고 남은 1만 5000명은 미디안의 두 왕과 함께 갈골(Karkor)에 숨어 있었다.
기드온이 기습 공격하여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그 군대를 진멸했다. 그리고 브누엘에 가서 망대를 헐고 두 왕을 죽였다(삿8:4~17). 길보아 산 전투에서 승리한 기드온 군사 300명은 소수 정예병으로 오늘날 이스라엘 군대의 표상이 되고 있다.
길보아 산에서 기드온은 승리했지만, 사울은 치욕적으로 패전했다.
블레셋 사람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을 치자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을 쳤다(삼상28:4). 길보아 산에서 사울은 수많은 블레셋 군대를 보고 불안에 못 이겨 변장한 후에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다. 신접한 여인은 엔돌에 살고 있었다.
모레 산의 기슭인 수넴에 블레셋이 진을 치고 있는데도 모레 산 너머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 엔돌을 찾아갔다. 사무엘이 죽은 후 사울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울은 초기에 신접한 자와 박수를 모두 쫓아냈다. 그러나 몸소 신접한 여인을 찾을 만큼 심령이 타락하고 불안하였다.
신접한 여인에게 죽은 사무엘을 불러올리기를 원했을 때 홀연히 사무엘이 나타나서 왕위는 다윗에게 넘어가고 전쟁에 패하여 세 아들과 함께 죽으리라고 말하자 사울은 졸도하여 넘어지고 말았다(삼상28:19). 사무엘의 예언대로 길보아 전투에서 세 아들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가 죽고 말았다. 또 사울은 크게 패하여 도망하다가 중상을 입었다.
그때에 자신의 병사에게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고 했으나 병사는 심히 두려워서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뽑아 그 위에 엎드러져 죽었다(삼상31:4). 자살을 택한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의 비참한 말로였다.
위 글은 교회신문 <239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