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9-21 11:08:13 ]
야곱 가족이 이주한 후 출애굽 하기까지 430년 간 머문 곳
<사진설명> 이집트 스핑크스와 관련한 전설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연대 배경을 알 수 있다.
고대 애굽(이집트)의 역사는 그 시대를 구분할 때에 왕조 이전 시대와 왕조시대로 나눈다. 왕조 이전 시대는 주전 3200년 이전을 말한다. 그리고 왕조시대는 다시 세분하여 옛 왕조시대(주전 3200~2270년), 중간 왕조시대(주전 2270~1570년), 새 왕조시대(주전 1570~525년)로 구분한다. 이집트 기자(Giza)에 있는 피라미드(Pyramid)는 옛 왕조시대(제3왕~제6왕, 주전 2690년~2270년경)에 건축되었다.
야곱의 최초 70인 가족은 야곱 나이 130세에 애굽으로 이주하여 그 후손들이 430년간(주전 1876~1446년) 삼각주 지역 고센 땅에서 거주하였다.
애굽 나일 강은 상류 고원에서 발원하여 총 6671km 강물이 흘러 지중해로 유입한다. 카이로에는 하류 일대에 걸쳐 면적 약 2만 4000㎢인 대 삼각주 평야가 전개된다. 이 삼각주 평야는 이 하천에 운반된 퇴적 물질로 비옥한 충적평야를 형성하여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었다. 애굽의 바로(Pharaoh) 왕은 이 삼각주 들판 중에서 ‘고센’이라는 지역을 지정해주면서 그곳에서 야곱 가족을 살게 했다. 고센은 다른 이름으로 ‘라암셋’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야곱이 고센 땅(The land of Goshen)에서 17년간 생활하다가 147세에 세상을 떠나자 요셉은 그 아버지를 가나안 땅 헤브론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다(창50:12~14). 요셉도 110세에 죽으매 그의 유언(창50:25)을 따라 출애굽할 때 그의 뼈를 옮겨와 가나안 땅 세겜에 장사하였다(수24:32).
애굽 역사상 새 왕조시대(주전 1570~525년)는 제18왕조에서 제26왕조까지를 말한다. 제18왕조는 애굽 역사상 가장 국력이 강성한 시대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시기에 출애굽을 했다.
제18왕조 제1대 왕 아흐모세 1세(AhmoseⅠ)는 힉소스 족을 몰아내고 애굽을 통일한 바로(Pharaoh)다. 그 뒤를 이어 제2대 왕 아문호텝 1세(AmunhotepⅠ)가 20년간 통치하였다. 그 뒤를 이은 제3대 왕 투트모세 1세(TuthmosesⅠ)는 짧은 기간(주전 1525~1512년) 통치하였으나 많은 일을 하였다. 모세는 주전 1527년경에 애굽 헬리오폴리스에서 출생하였다.
출애굽기 1장 8절에 나오는 요셉을 알지 못하는 바로 왕은 제18왕조 제3대 왕 투트모세 1세였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애굽 제18왕조 제5대 여왕 하트셉수트(Hatshepsut, 주전 1503~1482년, 모세의 양어머니)는 투트모세 1세 장녀로 이복형제인 제4대 왕 투트모세 2세(1512~1504년)의 왕비다. 하트셉수트에게 아이가 없어서 투트모세 2세의 첩 소생인 투트모세 3세(주전 1504~1450년)가 제6대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나이가 어려서 여왕은 정통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면서 20년간 섭정하였다.
투트모세 3세는 모세와 같이 자랐으며, 역대 바로 중에 가장 포악하여 애굽에 살던 히브리인에게 심한 노동을 시키고 압박했다. 투트모세 3세(주전 1504~1450년)의 아들로서 왕위를 계승한 자는 제7대 왕 아문호텝 2세(AmunhotepⅡ, 주전 1450~1425년)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을 한 연대가 주전 1446년이라고 볼 때에 새 왕조시대 투트모세 3세와 투트모세 4세 중간기인 아문호텝 2세(Amunhotep Ⅱ, 주전 1450~1425년) 통치 기간에 출애굽한 것으로 추정한다. 더욱이 약 4600년 전에 세운 ‘스핑크스’(Sphinx)에 얽힌 전설에 따르면 아문호텝 2세 때에 출애굽한 연대 배경을 밝혀주고 있다. 거대한 스핑크스 양발 앞에 조그마한 비석 하나가 있다. 이른바 ‘꿈의 비석’(Dream Stela)인데 투트모세 4세(Tuthmoses Ⅲ)가 세운 것으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투트모세 4세가 왕이 되기 전 피라미드 근처에서 낮잠을 잤는데 꿈속에 천사가 나타나서 누워 있는 곳을 파라고 했다. 그러면 왕관을 씌워준다고 했다. 투트모세 4세가 급히 인부를 데리고 와서 누운 곳을 팠더니 오늘날 볼 수 있는 이 거대한 스핑크스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당시 투트모세 4세는 형이 한 명 있어서 도저히 왕이 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모세가 그의 아비 아문호텝 2세와 대결을 했을 때 마지막 재앙인 장자 죽음 사건으로 말미암아 형이 죽고 말았다. 그래서 투트모세 4세는 차남임에도 아버지인 아문호텝 2세 뒤를 이어 왕이 된 것이다. 카이로 박물관에 가면 아문호텝 2세와 장자 시체 두 구가 한 관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5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