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11-29 13:47:19 ]
한 때는 기독교가 왕성했던 도시
지금은 이슬람교가 완전히 장악
<사진설명>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소피아 성당
이스탄불(Istanbul)은 오늘날 터키 최대 도시다. 그리스 시대에는 비잔티움(Byzantium), 로마시대에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오스만 튀르크 시대에는 이스탄불 등으로 불렀다. 역사 변천에 따라 이름은 달라졌지만, 당대 수도의 역할은 천 년이 넘게 지속했다. 그러다가 터키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수도를 이스탄불에서 앙카라(Ankara)로 옮겼다.
현재 터키 국토 면적은 78만 580㎢(남한 8배)며 국토 면적 97%는 아시아에, 3%는 유럽에 속해 있다. 인구는 6457만 명이다.
이스탄불은 마르마라 해(Marmara Sea)와 흑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루스 해협(길이 30km, 너비 550~3,000m, 수심 60~125m) 남쪽 입구에 있고,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있다. 1973년에 영국과 독일 합작기술로 준공한 해협 횡단 유라시아 대교(Bosporus Bridge, 보스포루스교)는 세계 제4위인 최장인 현수교(1.1km)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고 있다.
이스탄불은 주전 7세기 중엽 그리스에 정복된 후 비잔티움이라 불렀고, 당시 시가(市街)는 현재 이스탄불 동쪽 모퉁이 성벽에 싸인 돌출부에 있는 지역이다. 주전 512년에 페르시아 다리우스 1세에게 점령되었다가 그 후 로마 지배에 들어갔다.
콘스탄틴 1세(ConstantinusⅠ, 주후 306~337년)는 아버지가 죽자 황제에 추대되었다가 312년에 정식 황제에 올랐다. 콘스탄틴 황제는 313년 밀라노에서 밀라노 칙령을 공포하고 기독교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여 이때부터 기독교에 대한 핍박과 순교가 끝나고 새로운 기독교 시대를 개막했다.
그리고 325년 니케아에 종교회의를 개최하는 등 교회 분쟁, 교리 논쟁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그는 비잔티움 성벽을 확장하고 새로운 도시로 건설, 테베레 강을 낀 로마를 본떠서 로마 시가지와 마찬가지로 언덕 7개와 시구(市區) 14개로 구분하고, 건물 대부분은 로마를 모방하여 건축했다.
콘스탄틴 황제는 이곳 비잔티움을 수도로 정하고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명명했다(330년). 동로마의 비잔틴 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열한 후(395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자(476년) 동방정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지가 됐다. 또 비잔틴 문화 중심지로 번영하였고, 동서 문화의 교류에 큰 역할을 하였다. 주후 1204년에 십자군이 점령해 약 반세기 동안 지배했으나 1264년에 미카엘 8세가 탈환했다. 그러나 비잔틴 시대는 이미 기울고 있었다.
주후 1453년에 오스만튀르크 술탄 메메트 2세(Mehmet Ⅱ)가 동로마 비잔틴제국을 함락함으로써 주후 339년부터 1123년 동안 번영을 누린 비잔틴 시대는 끝이 났다. 이때부터 기독교의 여러 교회를 이슬람 사원으로 개축하고 기독교 중심인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 국가 중심 수도로 변하여 이스탄불이라 불렀다.
이스탄불이란 ‘이슬람교도가 많은 도시’를 뜻한다고 하나 분명치 않다. 이곳이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로 변하자 동로마 학자와 문인이 이탈리아로 피해 가서 서유럽 르네상스의 꽃을 피우게 하는 원인이 됐다.
소피아 사원
비잔틴 시대 건축 예술의 백미(白眉)라고 할 소피아 대성당(Sancta Sophia)은 주후 537년 유스티니안 황제가 세웠다. 건축 왕이라 불린 당시 황제는 베들레헴에 예수님 탄생교회, 시내 산에 케더린 수도원도 세웠다. 유스티니안 황제는 대성당을 완공했을 때 그 황홀한 아름다움에 도취해 탄성을 질렀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 황제 메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자 소피아 대성당에 이르러 웅장한 아름다움에 압도됐다고 한다. 그래서 성당을 파괴하지 않고 보존하여 이슬람 모스크로 바꿔 대성당 지붕 꼭대기에 달린 십자가를 이슬람교 표시인 초승달로 바꾸고, 성당 안에서는 메카를 향하여 기도하도록 했으며 벽면에 그려놓은 기독교 성화는 회칠해서 덮어 버렸다. 그러나 성화를 제거하지 않았기에 성화 복원작업이 60년 이상 진행되어 일부 성화를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소피아 성당은 본당 지름이 약 30m, 높이가 약 55m에 달하며 지붕이 돔이고, 성당 내부 벽면에 있는 모자이크 성화는 세계 걸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누구든 웅장하고 섬세함에 압도된다.
1999년 8월 17일 터키에 대지진이 일어나 5만여 명이 인명 피해를 당하고 많은 건물이 폭삭 주저앉은 대참사가 있었다. 그러나 1400년 된 소피아 대성당은 전혀 피해가 없었다. 금세기까지 108차례나 강진을 겪었으나 까딱없는 완벽한 내진(耐震) 설계에 의한 건축공법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6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