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12-20 17:07:07 ]
다난한 역사를 지닌 채 분단의 아픔을 지닌 지중해 섬
(사진설명) 터키 키프로스 남쪽 바보 항구에 있는 바울기념교회.
키프로스(Cyprus)는 터키 남쪽 약 65km, 시리아 서쪽 약 100km 동단부에 있다. 지중해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키프로스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세 대륙을 연결하는 해상교통 요충지다.
키프로스를 ‘사이프로스’라 부르기도 하는데 성경은 ‘구브로’라 기록하고 있다. 구브로는 헬라어로 구리(銅)라는 뜻이며, 섬 중앙에 있는 산에 구리 광산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키프로스 면적은 약 9250㎢(제주도의 5배)로 넓고 폭은 약 100km, 동서 길이는 약 225km나 된다. 키프로스 지도를 보면 섬 모양이 해상에 떠 있는 큰 가오리와 같은데, 키레니아 산맥이 동서로 100km 이상 뻗어 있다. 인구는 106만 명(2010년 통계)으로 그리스계와 터키계가 주종을 이루고, 아르메니아인, 아랍인 등도 극소수 분포하고 있다.
키프로스는 주전 40~30세기 신석기 문화에 이어 청동기 문화가 일어났고, 주전 15세기경부터 미케네 문명의 영향 아래 있었다. 그리고 주전 9세기경부터 그리스, 페니키아, 아시리아, 이집트, 페르시아가 차례로 키프로스 섬을 소유했고, 주전 58년에는 로마 지배하에 들어갔다. 그 후 비잔틴, 아랍, 십자군을 거쳐 1878년에 영국이 행정권을 빼앗고, 제1차 세계대전 개시부터 식민지화를 한 뒤 1925년 로잔조약으로 정식 직할 식민지로 삼았다.
그 뒤 1960년 8월 16일에야 키프로스 공화국은 니코시아(Nicosia)를 수도로 하여 정식으로 독립했다. 그러나 1974년 그리스와 터키 간 분쟁이 일어나 키프로스 북부 지역(국토 40%)을 터키가 제압했고, 북부 키프로스의 분리.독립을 선언하므로 키프로스는 오늘날까지 남북으로 분단된 상태다.
키프로스에는 1964년 이래 국제연합 평화유지군(P.K.O)이 주둔해 있고 영국이 두 군데에 공군 기지를 두고 있다. 키프로스의 네아파포스 해변은 아프로디테(Aphrodite) 탄생 전설이 얽힌 곳이다.
로마신화에서 나오는 사랑과 미(美) 그리고 풍요의 여신 비너스(Venus)를 아프로디테(Aphrodite)라고도 하는데, 신화 속 비너스가 태어났다는 키프로스의 자연경관과 푸른 바다는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답다.
사도 바울 일행의 전도 여행 중 첫 기착지는 구브로의 살라미 항구였다. 오늘날 살라미 항구는 북부 키프로스(터키 관할)에 있어서 남부 키프로스(그리스 관할)에서 분계선을 넘어야 하는데, 통행을 허용하지 않아 아쉽게도 순례할 수 없다.
키프로스 서쪽에는 바보(Pafos)라는 조그마한 항구가 있다. 로마시대에는 로마 총독이 주둔하던 키프로스의 주요 도시였고, 당시 로마 총독은 서기오 바울(Sergius Paulus)이었다. 성경에는 바나바와 바울이 바보에서 총독 서기오 바울을 전도한 상황을 상세히 기록했다.
“두 사람이(바나바와 바울)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 여러 회당에서 전할쌔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더라 온 섬 가운데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를 만나니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이 박수 엘루마(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는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바울이라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행13:4~9).
총독 서기오 바울은 바나바와 바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으나 박수 엘루마는 바울의 활동을 방해했다. 그때에 바울이 이적을 보여주었다.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박수)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침을 기이히 여기니라”(행13:11~12).
바로 키프로스의 최고 통치자인 로마 총독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그가 기독교인이 된 것이다. 이처럼 바울의 전도여행 중 시작점이었던 바보에서는 주후 300년대에 지은 바울기념교회 유적이 발굴됐다. 바울이 묶여 채찍을 맞았다는 돌기둥이 어느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많은 종류의 크고 작은 주춧돌과 돌기둥이 말없이 서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7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