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12-27 13:41:09 ]
사도 요한이 기도한 흔적 남아 있어
4세기 이후 성지순례 중심지역으로
(사진설명) 밧모 섬(왼쪽) 사도 요한 계시동굴교회(오른쪽)
밧모 섬(Island of Patmos)은 지리적으로 터키와 가깝지만, 그리스 영토에 속한다. 터키 서해안 구사다시(Kusadasi) 항에서 약 60km,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약 250km 거리에 있다. 밧모 섬은 에게 해(海) 3000여 개 섬 중 하나로 넓이는 약 40㎢, 남북으로 뻗은 길이는 약 12.5km, 전 해안선 총 연장거리는 65km나 된다.
밧모 섬 전체를 한눈에 바라보면 활이 굽은 형상처럼 아름답고 아늑하다. 또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지만 총 3개 지역으로 섬을 구분할 수 있으며, 각 구역을 연결하는 두 곳 지형은 개미허리처럼 폭이 좁고 산맥으로 연결되어 있다.
밧모 섬 중앙에는 깊숙이 파인 항만(港灣)이 있어 수송물자나 사람이 오르내리기 쉽다. 이곳에 있는 스칼라(Skala) 항구는 대형 선박이 들어올 수 있으며, 밧모 섬의 관문 역할을 한다.
4~5세기경 밧모 섬에는 중심교회와 큰 수도원 그리고 작은 교회 등이 아름답게 많이 세워졌다. 그러나 7세기 이후에 모슬렘이 점령해 파괴하여 폐허가 된 이후, 많은 기둥과 기둥의 머릿돌만 남았다. 또 밧모 섬 근해에서는 모슬렘과 격렬한 해전이 있었다.
밧모 섬을 순례하려면 세 가지 방법이 있다. ①그리스 아테네에 가까운 피레에프스 항에서 정기 여객선이 왕래하고 있고, ②터키 쿠사다시 항에서 배편이 있으며. ③아테네에서 비행기를 탄 후 사모 섬에서 내려 배편이 있다. 성지순례 코스에 따라 편리한 방법을 택하면 된다.
침례 요한 계시 동굴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당시에는 나이가 어렸다. 그래서 이후 90세 가까이 장수하며 3차에 걸친 무서운 박해를 모두 체험했다. 첫째는 네로 황제(54~68년) 박해, 그다음은 도미시안 황제(81~96년) 박해, 마지막으로 트라이안 황제(98~117년) 박해다.
요한은 도미시안(Domitian) 황제의 박해 때에 에베소에서 밧모 섬으로 유배되어 18개월 동안 유배생활을 하다가 AD 96년에 에베소로 돌아갔다. (요한의 유배기간이 3년 또는 15년이라는 주장도 있다.)
요한이 요한계시록에 기록한 계시를 받은 곳은 밧모 섬의 백색 건물 안 아포칼립스(Apokalypse) 동굴이다. 이 동굴 아래에는 아포칼립스 수도원이 있고, 17세기에 세운 수도원은 밧모 섬 신학교로 사용됐다. 성스러운 요한 동굴 그 자체는 이미 오래전에 사도 요한을 기념하는 조그마한 교회로 바뀌었다.
사도 요한의 초상화를 보면 이마에 군살이 있는데, 항상 이마를 대고 엎드려 기도해서 생겼다고 한다. 교회 한쪽 구석에는 요한이 머리를 대고 기도했다는 바위가 있으며, 그 옆에는 잠들 때 누웠다는 돌 마룻바닥이 있다. 그리고 한쪽 벽 약 1m 높이 지점에는 요한이 기도하고 일어날 때 손을 짚었다는 자국이 있는데, 홈이 파진 곳 중심으로 테가 둘렸다. 그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성경을 기록하려고 양피지를 펼쳤다는 돌 책상이 있다.
또 동굴 천장에는 갈라진 틈이 세 개 있다. 이 틈 사이로 “하늘로부터 큰 나팔소리”(계1:10)를 들었을 것이라 전한다. 이곳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라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사도 요한의 간절한 소망과 기도의 현장이다. 그러므로 동굴을 찾은 순례자들은 사도 요한에게 계시한 말씀을 상고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간절히 소망한다.
사도 요한 수도원
주후 1088년 크리스토툴러스(Christodouls) 수도사는 이 섬을 찾아와 사도 요한을 기념하고자 요한 수도원을 세웠다. 또 이곳에 자주 출몰하는 해적의 공격을 막으려고 코라(Chora) 마을 중앙 언덕을 중심으로 성벽을 쌓아 수도원을 완성했다. 요한 수도원은 희랍여신 아데미(아르테미스, Artemis) 신전 옛 폐허 위에 세웠다.
현재 수도원은 희랍정교회 소속이며, 수도원 도서관은 진귀한 성경사본들과 보물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특히 주후 500년대에 기록한 마가복음은 매장 첫 글자를 순금으로 썼고 나머지는 은으로 썼다고 한다. 4세기 이후부터 밧모 섬은 성지순례의 중심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
위 글은 교회신문 <27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