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땅을 가다(98)]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순교한 곳, 버가모

등록날짜 [ 2012-01-26 15:48:14 ]

우상숭배와 행음이 극심하여 하나님께 책망받은 고대도시

버가모는 에게 해안에서 내륙으로 약 24km 지점, 카이쿠스(Caicus) 골짜기에 있는 두 시내가 합류하는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서머나에서 북쪽으로 약 99km, 두아디라에서 북서쪽으로 약 65km 지점에 있다. 신약시대는 버가모(Pergama, Pergamus)라 불렀는데 지금은 버가마(Bergama)라 부른다.

버가모는 주전 3~1세기 그리스 시대에 앗탈루스 왕조의 수도인 문화 도시로서 번영을 누렸다. 버가모에는 고대 로마와 비잔틴 시대 유적들이 많으나, 이곳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버가모교회다.


<사진설명> 버가모교회. 원래는 버가모 시내에 있는 세라피스 신전이었다. 건물이 붉은 벽돌로 지어져서 붉은 궁전(The Red Hall)이라고도 한다.

오늘날 현지인들이 교회 유적의 벽돌 색깔에 맞춰 ‘크즐아블루’라고 부르는데 ‘붉은 건물(Red Hall)’이라는 뜻이다. 이 붉은 벽돌 건물은 주후 2세기경에 세웠는데 본래 그리스와 이집트에서 숭배한 세라피스(Serapis, 지옥의 신) 신전이었다. 다른 신전은 높은 지대에 세웠지만 지옥 신인 세라피스 신전은 저지대인 세리노스(Selinos) 하천 위에 세운 것이 특이하다.

세라피스 신전은 로마 하드리안 황제(Hadrian, 주전 132~135) 때에 건축했으며 그 규모는 건물 내부 길이 60m, 폭 26m, 높이 20m인 웅장한 구조의 건축물이었다. 이 신전의 지하에는 신전 바닥의 대각선으로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시내가 흐르고 있어 지하층으로 내려가면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주후 300년 비잔틴시대에 접어들어 이 신전이 기독교인들의 교회로 사용되다가 비잔틴제국이 쇠퇴하자 13세기 이후 폐허가 되고 말았다.

요한계시록에 버가모는 사단의 위가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으므로 책망하여 회개를 촉구했다(계2:13~14). 사단의 위는 제우스 제전 등 우상숭배 중심지였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많은 유적이 입증해 준다.

버가모교회에서 북쪽으로 근접한 해발 300m가 넘는 산기슭 아크로 폴리스(Akro Polis)에는 상하 두 군데로 구분되어 북쪽에 성채를 쌓았고 제우스 제단, 아데나 신전, 데메테르 신전, 트라이안 신전, 헤라 신전(Hera), 왕궁, 아고라, 극장, 옥내 경기장, 도서관, 무기고 등 유적이 많이 있다.

버가모교회 남서쪽 산기슭에는 제우스-아스클레피이온 신전(Zeus-Asklepion), 텔레스포로스 신전(Telesphoros), 야외 원형 경기장, 로마식 극장, 박물관, 도서관 등 유적이 있다. 버가모는 이 같은 많은 유적으로 보아 우상숭배 총 본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제우스 제단은 넓이 30㎡, 높이 12m나 되는 거대한 것으로 사단의 위를 대표하고 있다.
 
또 황제를 신전에서 예배하게 하여 기독교인과 싸움이 초대교회 때부터 심했다. 터툴리안(Tertullian, 초대교회 교부, 평신도 신학자, 삼위일체라는 신학 용어를 사용한 사람)이 주후 3세기에 버가모에서 발견한 어느 조각에서 안디바의 이름(계2:13, 버가모교회 순교자 이름)을 찾아내 안디바가 실제로 버가모에서 순교했음을 입증해 주었다.
 
이곳 의료의 신 아스클레피이온(Asklepion) 신전은 기독교인이 사단으로 여기는 뱀 형상을 만들어 숭배하고 있었다. 뱀이 껍질을 벗고 새롭게 변하듯이 질병에서 벗어나 새 생명을 얻는다는 뜻에서 뱀이 의료의 신을 상징했다. 오늘날 병원이나 군대 의무병과(醫務兵科) 표지(標識, Mark)로 뱀을 심벌로 나타내는 유래가 된 것이다.

아스클레피이온은 오늘날 종합병원 성격을 띠는 고대의 최대 의료센터로 유명했는데 해부학 권위자 갈렌(Galen)을 배출하기도 했다. 아스클레피이온은 주전 4세기에 설립되었으나 현재 남아 있는 유적은 주후 2세기 하드리안 황제 때에 건축한 것이다.

버가모에는 도서관이 두 군데 있었다. 당시 유네스미 2세(주전 197~159)가 도서관을 창설하여 그 후에 생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다음갈 정도로 장서가 20만 권이나 되는 큰 도서관이었다. 알렉산드리아와 버가모 양대 도서관 사이에 경쟁이 극에 달했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이집트에서 생산하는 파피루스 종이를 버가모에 공급하지 못하게 해 도서출판을 방해했다. 이때에 버가모에서는 파피루스를 대체할 용지를 만들어 낸 것이 양피지(羊皮紙)였다. 결국 도서관 경쟁에서 버가모가 승리한 셈이다.

당시 양피지를 버가모 사람들은 버가멘(Pergamen)이라고 불렀는데 그 후에 이 말이 라틴어를 거쳐 영어의 파치먼트(Parchment, 양피지)가 되었다. 버가모가 양피지 최초 생산의 본 고장이 되어 성경 사본들이 양피지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해준다.

위 글은 교회신문 <27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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