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2-15 23:21:31 ]
복음에 충성스러운 교회와 칭찬없이 책망만 받은 교회
빌라델비아교회
빌라델비아는 소아시아 서부 지방에 세운 교통 요지이자 사데에서 약 50km, 라오디게아에서 약 135km 지점에 있는 산업도시다. 주전 138년경 버가모 앗탈루스 왕조 중 앗탈루스 2세(주전 159~138년)가 도시를 건설했고, 그의 형 유메네스에 대한 우애의 표시로 빌라델비아(Philadelpheia, 형제 사랑)라고 불렀다. 오늘날은 알레세히르(Alesehir)라고 부른다.
처음 도시를 세울 때부터 빌라델비아는 루디아와 부르기아에 헬라의 언어, 풍습 등 문화를 전파할 목적으로 건설했기에 도시 초창기부터 이미 선교지가 되었다. 이곳에 언제 교회가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요한계시록에 기록한 일곱 교회 중 하나였다(계3:7~13).
<사진설명> 빌라델비아교회 유적 터
로마 시대에는 우상숭배의 중심지여서 다른 아시아 지역보다는 기독교가 덜 번성했다. 교회가 있던 빌라델비아는 땅속에 파묻혀 있어 고고학자들의 발굴을 기대한다. 비잔틴 시대에 번창한 이 도시는 그 당시 성벽의 유적이 남아 있고, 도시 가운데 15m 높이의 육중한 기둥 두 개만이 남아 있어 당시에 교회 건물이 얼마나 웅장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요한계시록에 기록한 일곱 교회 중 서머나교회와 더불어 책망받지 않은 교회였다. 부유하지 못했지만, 복음에는 항상 충성스러웠고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았다. 인간의 눈에는 보잘것없었으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크고 훌륭한 교회였다.
라오디게아교회
라오디게아는 소아시아 부르기아 지역, 데니즐리와 파묵갈래 사이에 있고 골로새, 히에라폴리와 더불어 브루기아 지방의 유명한 삼각지역을 이루고 있다.
라오디게아는 에베소에서 시리아에 이르는 가도연변 통상도시(通商都市)로 융성했고, 금융업과 양모업(羊毛業)으로 유명했다. 주전 133년에는 로마 속주가 됐고, 일찍이 교회가 세워져 기독교 도시가 됐다. 네로 왕 때에 지진으로 크게 파괴됐으나 이 도시는 쉽게 복구됐고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 중 하나로 초기 기독교에 유명했다.
라오디게아에서 약 7km 지점 언덕 위에는 히에라폴리라는 도시가 있다. 히에라폴리(Hierapolis)는 ‘거룩한 도시’라는 뜻으로 버가모 왕이 세웠고, 일찍이 유대인의 큰 조직이 있어 쉽게 복음이 전파되어 비잔틴 시대에는 주교 관구가 됐다. 주후 80년경 빌립 집사가 이곳에서 순교했고, 비잔틴 시대에는 십자가형 구조인 기념교회를 히에라폴리 뒷산 중턱에 세웠다. 또 일대에는 로마 시대 야외 원형 경기장, 극장, 아고라 등 많은 유적이 있다.
<사진설명> 라오디게아교회 유적 터
파묵갈래(Pamukkale)는 천연 온천장으로 유명하다. 히에라폴리의 깊은 지하 동굴에서 솟아난 온천수는 높이 100m가 넘는 언덕 아래 경사면으로 폭포수처럼 흘러내린다. 이 온천수가 흘러내리는 언덕 일대를 파묵갈래(Pamukkale)라 부른다.
로마황제가 이용한 목욕장도 이곳에 있었다고 하며, 오늘날에도 온천수에 목욕하려고 찾아오는 관광객으로 붐빈다. 이곳 온천수는 석회질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온천수가 계속 흘러내리는 동안 석회질이 침전해 언덕 암벽에 접착(接着)한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백색 석회화(石灰花)가 장관을 이루는데, 멀리서 보면 목화송이들이 하얗게 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목화성(木花城)이라는 뜻의 파묵갈래라는 이름이 붙었다.
고대 라오디게아에서는 수로를 통해 히에라폴리의 온천수를 끌어들여 사용했다. 그런데 히에로폴리에서 7km 떨어진 라오디게아까지 흘러오는 동안 온천수가 식어서 미지근했다고 한다. 요한계시록에 “네가 이와 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계3:16) 책망했다.
당시 부요한 생활환경 속에서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신앙 열도(信仰熱度)를 식은 온천수의 미지근함에 비유한 것이다. 또 고대 라오디게아는 눈병 고치는 안약 산지(産地)로 유명했고 병원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는 영적으로 병든 눈을 “안약을 발라 뜨게 하라”는 비유의 말씀을 했다.
※‘성서의 땅을 가다’ 연재는 100회를 끝으로 마칩니다. 다음호부터는 ‘이스라엘 왕들의 이야기’(가칭)를 연재합니다.<편집자>
위 글은 교회신문 <27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