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1)] 예수 그리스도 당시, 시대적 배경과 환경에 대하여

등록날짜 [ 2015-07-07 10:34:24 ]

성경 속 장면을 보듯 생생하고 현장감 넘치는 해설 통해
하나님의 섭리와 복음적 역사를 바로 아는 계기 될 것


CBS 기독교방송 윤석전 목사의 탐사 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2005년 7월 8일(금) 오후 2시 첫 방영 돼 장장 6년간 매주 1회씩 총 253회에 걸쳐 은혜롭게 방송됐다. 시청자들이 방영 시간을 늘려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고, 공중파를 포함한 동시간대 모든 채널 중 시청률 4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특히 목회자들이 많이 시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성지의 생생한 모습과 함께 윤석전 목사와 전문학자들이 대담 형식으로 풀어내는 성지.성서 좌담 프로그램 ‘성서의 땅을 가다’는 윤석전 목사가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 로마, 스페인, 터키, 독일을 비롯한 30여 개국을 직접 방문해 촬영한 성지 영상을 보여 준 후, 전문 교수진이 그 지역에 대한 성서 지리적인 설명과 성서에서 하나님이 쓰신 사람들의 사역을 신학적으로 해설하고, 다시 윤석전 목사가 영적인 해설과 복음적 메시지를 전달해 탄탄한 구성을 갖췄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성서의 땅을 가다’는 하나님이 역사하신 지역과 사람들을 성지 현장에서 만남으로써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그 뜻대로 사는 축복이 무엇인지를 생생히 전해 준, 하나님이 역사하신 다큐멘터리다. 교회신문 ‘영혼의 때를 위하여’는 이번 호부터 당시 절찬리에 방영돼 목회자와 성도들의 높은 관심을 끈 내용을 요약·정리해 연재한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성지순례 대장정을 지면으로 소개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아울러 성도들에게도 큰 은혜의 시간이 되리라 기대한다. <편집자>


출연자 명단-진행 윤석전 목사, 홍순화(한국성서지리연구원장), 권혁승(서울신대), 김판임(이화여대), 박성민(한국대학생선교회), 오택현(영남신학대), 유윤종(평택대), 왕대일(감신대), 이형원(침신대), 조병철(감신대), 차준희(한세대), 천사무엘(한신대), 조광호(서울장신대), 유병우(한영신대), 정중호(계명대), 우택주(침신대), 김은호(한국성서대), 이형원(침신대), 김선배(침신대), 박영철(침신대), 김호경(장신대), 김광수(전주대), 김순권(경천교회), 김윤희(횃불트리니티), 이원희 목사.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수십 차례에 걸쳐 성지를 직접 방문해 그 땅에 얽힌 하나님의 섭리적 역사, 복음적 역사를 바라보고 영상에 담으면서 많은 감동을 했습니다. 이런 모든 역사를 저 혼자 가지고 있기는 너무 아까워서 ‘성서의 땅을 가다’ 프로그램을 통해서 성지순례 영상자료를 공개해 많은 분과 함께 주님이 역사하신 아름다운 성서 속 성지를 가 보려고 합니다. 먼저, 2000년 전에 다양한 회당이 있었습니다. 그 회당의 의미는 무엇이며, 모양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홍순화 원장(한국성서지리연구원): 회당의 모습은 세 가지로 나뉩니다. 바실리카 양식(초기 회당 양식), 가정집 양식, 동쪽이 반월형인 양식입니다.
가버나움의 회당은 초기 회당이며, 이른바 바실리카 양식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4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예수님 이후 가장 잘 보존된 회당으로서 그 의미가 큽니다.

윤석전 목사: 그 당시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회당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생활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유병우 교수(한영신학대학교 신약학): 회당이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쉬나고게’라고 하는데, ‘한데 모인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바벨론 포로기에 성전이 없어 성전을 그리면서 한데 모여 기도하고 예배하던 장소가 회당이었습니다. 이처럼 회당은 예루살렘 성전과 더불어 유대교를 지탱하는 두 개의 축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성전이 제사와 순례의 장소였다면, 회당은 성서를 읽고 해석하고 집회하고 연구하던 장소였습니다. 이런 회당이 지역마다 있었습니다.
유대교에는 여러 종파가 있었는데, 그중 지역적 기반을 가진 ‘바리새파’가 있었습니다. 이 바리새파가 회당을 중심으로 활동했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바리새파는 히브리어로 ‘파롸시’라고 하여 ‘분리하고 구분을 짓는다’라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바리새파가 예수님의 적대자라고 묘사되어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지만, 본래는 포로생활에서 해방된 이후 변질된 유대교 신앙의 본질을 보존하려고 민족적, 신앙적으로 노력하던 무리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성전이 건재했기에 회당의 중요성이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아직 중앙에 정치 세력을 갖지 못했지만, 바리새파는 율법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갖췄고(성경에는 ‘율법학자’ ‘서기관’으로 묘사됨), 종교적인 열정이 워낙 대단했기에 대중에게 큰 존경을 받은 그룹이었습니다.


<사진설명> 유대교 회당.


윤석전 목사: 바리새인은 페르시아 고레스 왕 때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유대로 귀환하자 ‘왜 우리가 이렇게 70년간 포로생활을 하며 고통당하느냐’를 연구한 끝에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죄를 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하나님 말씀대로 의롭고 거룩하게 살아서 하나님께 축복받자’ 하며 바리새파 운동을 벌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대대적으로 바리새파 운동을 벌였지만,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율법대로 다 살겠습니까. 세월이 흐르다 보니까 율법을 범하면 바리새인에서 탈락하고, 또 탈락해서 예수님 당시에는 6000명 정도가 남아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바리새인들을 보니 겉으로는 율법을 잘 지킨 것 같은데 속으로는 남을 미워하고 음란한 죄가 들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남을 보고 미워해도 살인한 자요,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어도 간음한 자요”라고 말씀하면서 “너희는 바리새인으로서 겉으로는 거룩하게 살려고 했지만 너희 속에는 죄가 있지 않느냐”라고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 예수께서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들아” 하고 외치셨습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보내신 이유는 율법을 보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깨닫게 하여 죄를 사해 줄 예수를 찾아가게 하려는 것인데, 이를 오해한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지켜 자기 의를 드려내려다 보니 그렇게 외식하게 된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이런 삶에서 보면 바리새인으로 살아가기에 얼마나 많이 고달프고 힘들었겠습니까?

유병우 교수: 사실 예수님도 유대인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당시 예수님과 그 시대를 이해하려면 유대교를 아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유대교에는 여러 종파가 있는데 사실상 바리새파가 예수님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을 바리새파의 선생이 아니겠느냐고 추측할 정도로 예수님과 바리새파는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예수님과 바리새파를 구분 지을 수 있는 점은 ‘정결사상’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더러운 것, 죄된 것으로부터 깨끗하게 하는 행위를 소극적이고, 방어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수많은 죄인을 양산해 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더럽고 죄된 것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공격적이고 적극적으로 껴안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정결사상이 당시 사회적으로는 상당히 문제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병(病)을 얘기해 봅시다. 사실 병든 것도 서럽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파 사람들은 병도 죄의 결과라고 여겨서 병든 자들을 죄인으로 매도했습니다. 가난한 것도 서러운데 병을 죄의 결과라고 얘기하고 그 병자들을 무시하다 보니까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정결사상은 사회적으로 무수히 많은 죄인을 양산하는, 사회적인 역기능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거기서 올라가서 엔게디 요새에 거하니라”(삼상23:29).


<사진설명> 엔게디.


윤석전 목사 : 이스라엘 성지가 대부분 사막에 있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랍게도 사막 한가운데 있는 엔게디 지역에는 폭포가 있고 주변에는 풀이 파릇파릇 나 있고 산양까지 뛰어노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디서 쏟아지는 폭포인지 크게 감동되더군요. 어떻게 사막 지역에서 그런 일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엔게디 지역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홍순화 원장: ‘엔게디’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다윗입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길 때 엔게디에 가서 피신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곳에 가 보기 전에 ‘아니, 그 사막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았고, 어디에 피해 있었을까?’ 의아했습니다. 그런데 엔게디 계곡을 쭉 올라가 보니 다윗이 그곳에 피신한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첫째, 물이 있습니다. 엔게디에는 폭포까지 흐를 정도로 물이 많습니다. 물은 생명과 직결됩니다. 엔게디는 사해 서쪽 중앙부에 있으며 위아래로는 물이 전혀 없습니다. 앞에는 사막 지대, 뒤에는 유대광야입니다. 그런 척박한 곳에 풍부한 물이 있으니까 대단한 일이죠. 학자들의 얘기에 의하면 최근 이곳에서 동굴들이 발견됐는데 사람이 숨을 공간이 많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동굴의 일부분만 발굴됐는데, ‘저기 그중 어딘가에 다윗이 피신했겠구나’ 생각하고 성경 속 그 시대를 그리게 됩니다.

윤석전 목사: 다윗의 무덤이 시온산에 있습니다. 시온산에 다윗의 무덤을 만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홍순화 원장: ‘시온산’이라고 하면 원래 ‘언덕’을 가리키기보다는 ‘예루살렘 전체’를 가리키는 상징적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대부터인지 다윗의 무덤이 시온산에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는데, 그 후 사람들이 시온산을 다윗의 무덤이라고 믿게 됐고 시온산을 성지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예루살렘 성 밖 언덕을 ‘시온산’이라고 지칭하게 되었죠.


<사진설명> 시온산 지형.


윤석전 목사: 다윗은 통일왕국을 세우고 경제적, 정치적으로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 시대가 이스라엘의 가장 흥왕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당시 로마 식민지 통치를 받는 고통 속에서 과거 다윗 왕 시대를 그리며 다윗 왕과 같은 정치적 메시아를 더욱 간절히 사모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유병우 교수: 신학적으로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메시아의 희망, 유대 민족적 희망의 절정, 그 끝은 어디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1차적으로 신약성경에는 다윗의 뿌리에서 메시아가 나타날 것이라고 하는 데 큰 이견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볼 때에는 예수님은 절대 거기에 부합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다윗과 같이 위대한 나라를 재건할 사람이면 갈릴리 호숫가에서 가난하고 무식한 어부들이나 모아가지고는 거사가 성사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역사가 여러 가지 시련과 포로 기간을 거치면서 민족적인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는, 바닥까지 떨어지는 제로 상태를 거치면서 유대인들은 정치적인 메시아 이상의 어떤 우주적인 메시아를 기대하게 된 것입니다. 메시아의 지배가 이제 단순히 다윗 왕국의 재건이나 이 땅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라, 우주적인 지배자로서 메시아로 변형하는 과정에서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하는 무리가 나타났는데, 이들을 바로 기독교인이라고 부릅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은 유대인으로 남아 있는 현실이지요.

윤석전 목사: 네, 지금도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37절에 보면 두 제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이런 말을 한 것을 보면 그 시대 예수의 제자들도 역시 유대인과 같은 정치적인 메시아에 집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성지의 현장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느꼈습니다. 두 교수님을 통해 현장감 넘치는 다큐와 같은 해설을 들으면서 제 가슴속에서 예수님의 생애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역사가 재현되는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44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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