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4)] 예수 탄생의 의미와 섭리 속으로

등록날짜 [ 2015-07-28 15:09:04 ]


<사진설명> 예수탄생교회 전경.


예수의 탄생지인 베들레헴은 요르단 강 서안 지구에 있다. ‘떡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곳은 다윗 왕의 고향이기도 하다. 예수 탄생 당시에는 아주 작고 초라한 시골 동네였으나, 4세기 이후 예수탄생교회가 세워지자 기독교 순례지 중 가장 유명한 곳이 되었다.

예수탄생교회는 입구에서부터 강한 메시지를 준다. 높이 120㎝, 폭 100㎝인 겸손의 문을 통과하려면 누구나 머리를 숙여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든지 겸손해야 하고 그런 자만이 예수 탄생을 만날 자격이 있다. 인류의 죄를 사하려 대신 죽으사 우리에게 영생을 주러 오신 메시아 탄생의 날, 동방박사를 인도하던 밤하늘의 별이 멈춰서 빛을 비추었다는 예수 탄생 자리가 이 교회 지하에 있다.

메시아가 탄생한 지점에는 14각 별로 표시되어 있는데, 14각은 왕좌를 상징한다. 하지만 당시 메시아 탄생 현장에는 왕의 탄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미천한 자들만이 함께했다. 가난한 부모, 이방인인 동방박사 그리고 들판의 목동이 그들이다. 

 

<사진설명> 예수탄생교회 입구 겸손의 문.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예수탄생교회의 입구를 살펴보면, 문을 여러 번 고친 흔적이 있습니다. 제일 큰 문, 조금 작은 문, 그 아래 제일 작은 문인 겸손의 문이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장소를 침범당하지 않게 하려고 문을 점차 작게 만들었다고 생각됩니다. 예수탄생교회를 구체적으로 소개해 주세요.

홍순화 원장(한국성서지리연구원): 예수탄생교회에는 들어갈 때도 겸손해야 하지만 나올 때도 뻣뻣하면 못 나옵니다. 대개 들어갈 때는 돌에 부딪히지 않게 신경 쓰다가, 나올 때는 무심코 그냥 나오려 합니다. 그래서 겸손의 문 안에서 바깥을 향해 사진을 찍어 봤습니다. 들어갈 때도 겸손해야 하고 나올 때도 겸손해야 합니다.

유병우 교수(한영신학대학교 신약학): 예수탄생교회 바닥에 모자이크 장식이 있는데, 그것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1500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어떻게 손상 하나 없이 잘 보존이 됐는지 설명을 해 주세요.


<사진설명> 예수탄생교회 바닥에 있는 모자이크 장식.


홍순화 원장: 예수탄생교회 바닥의 모자이크는 4세기경 교회를 처음 지을 당시 것입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믿음이 좋은 여인이었습니다. 그가 이곳에 와 보니까 예수님이 탄생한 동굴 위에 신전을 세워 놓았더랍니다. 그래서 그것을 부수고 그 위에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 교회가 원인 모를 화재로 심각하게 손상하자 531년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다시 교회를 지었고, 12세기 때 십자군이 한 번 보수했다고 합니다. 현재 있는 바닥 모자이크는 최초의 교회 원형 그대로입니다. 그 위에 교회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돌로 되었으니 가능하겠지요.

윤석전 목사: 바닥 모자이크가 현존 건물보다 더 일찍 만들어졌네요.

홍순화 원장: 그렇지요. 최초의 교회 자리 위에다 지었으니까요. 예수탄생교회가 1500년 동안 한자리에 있었다고 생각하면 경외감이 느껴집니다. 여기에 특별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합니다. 614년 페르시아 군대가 베들레헴을 점령했을 때 다른 교회들은 다 파괴됐습니다. 이교도(異敎徒)이니까요. 그런데 이 교회는 입구에 있는 성화 하나를 보니 동방박사들이 그려져 있으니까 자기네 조상의 그림이라 파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개 동방박사를 페르시아 사람으로 보거든요. 그렇지 않았다면 614년에 이 교회가 폐허 됐을 텐데 그 위기를 잘 넘겨서 지금까지 그 건물이 계속되어 온 것이죠.

윤석전 목사: 마태복음을 보면, 예수께서 이 땅에 탄생하셨을 때 동방박사들이 귀한 예물을 예수께 드리며 경배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예물의 의미를 말씀해 주세요.

유병우 교수: 전승에 따르면, 동방박사 3인의 이름은 발타사르(Balthasar), 가스파르(Gaspar), 멜키오즈(Melchior)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경배할 때 드리려고 가져온 예물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입니다. 황금의 신학적 의미는 왕에게만 바치는 것으로, 황금을 바쳤다는 것은 예수님을 왕으로 경배했다는 의미입니다. 유향은 기도와 관련된 것으로 예수님을 제사장으로 경배했다는 뜻입니다. 몰약은 고대에 시체를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의 일종이었는데,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예비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성경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동방박사들은 별이 인도해 주지 않았다면 예수의 탄생하신 곳에 찾아올 수 없었을 텐데, 하나님의 섭리로 별이 그들을 인도하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왕이 어디에 나셨느냐고 묻는 동방박사의 말을 듣자 헤롯이 두려워하면서 베들레헴으로 동방박사를 보내면서 아기를 보거든 자기에게 말하라고 일렀습니다. 그때 헤롯은 ‘나 말고 유대인의 왕이 어디 또 있느냐. 그가 자라서 유대인의 왕이 되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이냐. 왕이 될 메시아를 미리 없애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동방박사가 말한 시점을 기준으로 베들레헴의 두 살 이하 아이를 모두 학살했습니다. 그 비극을 말해 주는 장소가 현재도 있다고 합니다.

예수탄생교회 안에는 헤롯의 유아 살해 전설이 담긴 동굴 무덤이 있다. 헤롯 왕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두 살부터 그 아래 사내아이를 다 살육했다. 새로운 왕의 탄생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왕의 명령이면 무엇이든 다 되는 어두움의 시대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의 위협 속에 있어야 했던 예수. 그것은 또한 죽음 골짜기의 고난을 견뎌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사진설명> 헤롯 왕이 죽인 아기들의 유골 동굴.


윤석전 목사: 역사적으로 볼 때 헤롯이 예수 탄생 시기에 두 살 이하 어린이들을 살육했다고 하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고, 성경에도 그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마2:16~18). 그 일이 어떻게 진행됐으며, 현재 예수탄생교회 안에 있는 유골 동굴이 바로 그곳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 어떻게 그 수많은 아이의 뼈를 한 곳에다 묻었을까, 각자 묻었겠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뼈를 모아둔 곳을 ‘예수 탄생 당시 죽은 두 살 이하 아이들의 뼈 묻은 동굴’이라고 할 때 의문이 가더라고요.

홍순화 원장: 그곳의 뼈를 조사한 이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 뼈가 전부 어린아이의 유골은 아니라고 합니다. 어린이들의 뼈가 그 안에 섞여 있는데, 헤롯 왕 때 죽은 어린이들의 뼈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 유아살육이 기록되어 있으니까, 그 사건이 사실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윤석전 목사: 아이들 유골이 있는 마당에서 옆을 보면 제롬(Jerome, 히에로니무스, 347~420)의 동상이 있습니다. 제롬이 성서를 처음으로 라틴어로 번역했다고 합니다.

홍순화 원장: 제롬은 교황이 되려는 희망을 품었다가 좌절됐습니다. 그 후 베들레헴에 와서 34년 동안 칩거하면서 세계 최초 라틴어 성경 불가타(Vulgate) 번역본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곳에 가면 제롬의 동상이 있고, 지하로 내려가면 제롬이 거처하던 동굴이 있습니다. 그 지역에는 마치 벌집처럼 동굴이 많습니다. 제롬은 그중의 한 동굴에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제롬은 없지만 그가 남긴 불가타 성경은 어느 교황보다도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지요. 제롬은 죽어서도 그 동굴에서 편안히 쉬기를 바랐다고 하는데 그의 시신은 로마로 운구했다고 합니다.


<사진설명> 신학자 제롬(히에로니무스)이 이 동굴에 머물며 성경을 번역했다.


윤석전 목사: 우리나라에 한글로 번역된 성경이 없었다면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겠지요. 그때 라틴어로 성경이 번역되었다는 것은 복음 전파에 큰 획을 그은 일 같습니다.


유병우 교수: 제롬이라고 부르는데 히에로니무스라고도 말합니다. 둘은 동일인물입니다. 기독교가 점차 확산하면서 신학적인 논쟁을 하고 예배의 의식이 다양화하자 공공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통일된 성서가 요구되었습니다. 당시에 교황이 제롬에게 바로 이런 통일된 성서 번역 일을 맡겼습니다. 제롬은 히브리어로 된 시편을 개정하고 번역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히브리어에서 직접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 아니고 기존 그리스어로 번역된 ‘칠십인역’을 바탕으로 라틴어 성경으로 번역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편을 개정하는 작업을 하다가 히브리어를 직접 번역하는 편이 낫겠다는 결론에 도달해서 390년부터 405년까지 히브리어 성경을 전부 라틴어로 번역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이런 역사를 보면, 사람들이 움직여 나가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복음을 증거하고 전파하게 하려는 큰 섭리의 줄기가 내려오는 것 같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역사를 눈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홍순화 원장: 한국어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구유’에서 태어나셨다고 표현해서 대개 ‘마구간’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우리가 현지에서 보기에는 양을 키우려고 우리로 사용하던 ‘동굴’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양 치는 방법이 두 가지 있습니다. 방목할 때는 며칠씩 먼 거리에 나갑니다. 그럴 때는 양 우리가 임시로 야외에 있습니다. 집 부근에서 키울 때는 집 안에서 마치 우리나라 가축을 키우듯 키웁니다. 그러니까 베들레헴의 양 우리는 집 안에 있는 양 우리로 작은 동굴입니다. 그곳은 늘 집 부근에서 양을 키우므로 저녁이 되면 그 우리인 동굴에 양을 재웁니다.

윤석전 목사: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해 두 교수님께서 잘 말씀해 주셨고 저도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시작부터 헤롯의 시기와 질투를 이용한 사단의 역사가 난무했습니다. 예수 생명이 있는 곳에는 언제든지 그 생명의 역사를 방해하려는 사단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사도 바울도, 제자들도, 초대교회 교인들도 다 그러했습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핍박과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역사를 이기고 승리하셨듯이 이 모든 것을 승리하기 바랍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4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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