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5)] 선지자 침례 요한의 삶을 찾아서

등록날짜 [ 2015-08-04 10:10:42 ]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앞서 준비한 침례 요한의 주요 활동무대는 유대 광야였다. 예루살렘 동쪽에서 시작해 요르단 강에 이르는 유대 광야는 사막지대다. 해발 1000m에서 400m 사이 구릉지로,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당한 곳이며,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침례 요한이 바로 이곳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쳤다.

광야는 사람의 힘으로는 살 수 없는 곳이기에 하나님의 직접적인 공급과 인도의 손길을 접해야 하는 장소다. 그러므로 광야에서 부르짖은 요한의 외침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돌보심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라는 요청이었다.

침례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이곳 광야에서 살았다. 빈 들에 우뚝 서서 권력자들을 질타한 침례 요한의 준엄한 외침. 말라기 이후 400여 년간 선지자의 외침을 듣지 못하던 유대인들에게 그것은 큰 충격이었다. 곧 오실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유대인들을 빈 들로 불러내는, 하나님께 쓰임받는 목소리였다.



<사진설명> 유대 광야.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광야에 직접 가 보고, 광야에서 목이 말라서 견딜 수 없는 갈증도 느껴봤습니다. 광야는 사람이 버티고 살 만한 장소가 아닙니다. 그런 척박한 땅에서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고, 그런 곳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출애굽 후에 40년간이나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광야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으로만 살 수 있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이 어떠했는지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유병우 교수(한영신학대학교): ‘광야’라는 말은 성경에 270회 정도 나옵니다. 성서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시련과 고난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장소라는 의미가 큽니다. 침례 요한까지 진행되어 온 유대교 갱신운동과 예수님의 사역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유대민족이 유대교를 갱신해서 이루고자 한 목표는 이스라엘을 회복해 이방을 지배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이방 민족에게도 개방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또 유대교 갱신운동은 유대교 종교 규범을 강조했지만, 예수님은 정결법이나 안식법을 약화하시고 윤리적 규범은 상당히 강화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또 유대교 갱신운동은 일반 백성과 유리됐으나, 예수님은 일반 백성에게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유대교는 폭력도 불사했지만 예수님은 비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어쨌든 광야는 정치적인 면에서도 중요하지만, 서두에 언급했듯 인간적인 의지로는 해결할 수 없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곳입니다. 그래서 그곳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기도하는 곳으로서 영성이 풍부한 곳이기도 합니다. 
 
윤석전 목사: 옛날에는 유대 광야에서 많은 예언자가 배출되었습니다. 그 예언자들은 어떤 일을 담당했나요? 
유병우 교수: 예언자는 어떤 사건에 대한 ‘예고’가 아니라 ‘경고’와 ‘약속’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언자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고 하나님 구원의 약속을 전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예언의 실질적인 목적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회개하도록 유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침례 요한 이전에는 한동안 ‘이스라엘 예언의 불꽃이 꺼졌다, 하나님께서 더는 말씀하지 않고 침묵하신다’ 하며 상당히 오랜 기간 예언자들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침례 요한이 그 침묵을 깨고 광야에서 새로운 예언자로 등장했습니다. 예언자는 정치적으로는 다윗 왕조의 재건 가능성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던 시대에 활동했다고 보면 됩니다. 왕조가 멸망해서 그 가능성에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는 예언보다는 ‘묵시문학’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그 시대를 지배했습니다. 그런 시대에 마지막 예언자 침례 요한이 등장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말라기 이후 400년간을 예언의 암흑기라고 합니다. 그때 혜성같이 나타난 선지자 요한이 날카롭게 바른말을 하다가 헤롯에게 잔인하게 참수되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계시로 태어나서 계시로 살다가 계시로 죽은 큰 선지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러 온 선지자 요한이 그 사명을 다하고 최후에 참수로 순교한 곳을 보면서, ‘선지자는 요한으로 마지막’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사진설명> 사해.
 
사해는 지구에서 해수면이 가장 낮은 ‘갇힌 바다’다. 수면은 일반적인 바다보다 392m 아래 있으며 염분 농도가 5배에 이른다. 사해보다 더 낮은 지대가 없는 까닭에 물이 흘러나가지 못하고 고여 있고, 불볕더위로 물이 증발하여 염분만 남기에 생명체가 살지 못하는 죽은 바다가 되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바다에 떠서 책을 읽을 정도로 부력이 크고 몸에 좋은 각종 광물질이 많아 세계적인 자연건강 치료지로 인기가 높다. 
 
윤석전 목사: 사해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면서 생긴 바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곳을 역사적 지리적으로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홍순화 원장(한국성서지리원): 사해에서 홍해까지는 물길이 전혀 없습니다. 특이한 구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갈릴리 호수가 해저 약 220m, 사해는 해저 약 400m입니다. 그 사이를 흐르는 것이 요단강입니다. 사해는 성경 창세기 14장에 처음 등장하는데 염해(鹽海)라고 표현돼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사해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전부터 있던 셈이지요. 사람들이 소돔과 고모라가 있었던 자리가 어딘지 궁금해합니다. 많은 학자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소돔과 고모라는 상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해에 실존하던 도시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해에 대해서 좀 더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홍순화 원장:
사해가 유명한 이유는 소금기가 많아서입니다. 수영하지 못하는 사람도 바다 위에 둥둥 뜰 정도입니다. 안타까운 점은 요단 강이 그 지역에 물을 충분히 공급해 주어야 하는데 요즘은 그렇지 못합니다. 요단 강물은 사용량이 많은 데 비해 유입량이 적다 보니 사해의 물이 해마다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급기야 옛날 지도와 비교해 보면 지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하류에는 아예 물이 없어 수로를 만들어 상류에서 아래쪽으로 물을 내려 보내고 있습니다. 반면 상류에는 바닷물이 많아 고급 호텔들이 들어선 세계적인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사해 동쪽 지역에 롯이 피난했다고 추정하는 동굴이 있는데 그곳에 비잔틴 시대의 교회 건물 터가 있습니다. 소돔으로 추정하는 ‘밥 애드라’라는 곳에 유적지가 굉장히 큰 것이 있습니다. 요르단 관광청에서 안내판을 세워 놓았는데, 거기에 보면 ‘밥 애드라’가 기원전 3200년 전부터 기원전 1900년 사이 거주지였다고 쓰여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소돔이 그처럼 번화하고 문명이 발전된 도시였지만, 죄악에 빠져 저주의 도시, 멸망의 도시로 비참하게 사라진 것을 보면 하나님 앞에 바로 살아야겠다는 교훈을 줍니다. 


<사진설명> 마캐루스 요새. 
 
요르단 수도 암만 남쪽에서 왕의 대로를 따라  남쪽으로 12㎞ 달려가면 나오는 역사적 장소가 있다. 바로 산 정상에 우뚝 서 있는 헤롯 대왕의 여름 궁전 마캐루스 요새다. 사해 수면보다 110m나 높은 마캐루스 요새는 침례 요한의 참수터로 더욱 의미가 깊다. 곳곳에서 발견된 헤롯 궁전 터와 성채 흔적은 당시 이곳의 규모와 그 화려함이 어떠했는지를 가늠케 한다. 2000년 전, 헤롯 안티파스는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라고 외치는 침례 요한을 정치적 위험인물로 간주하고 잡아다가 이 요새 깊은 감옥에 가두었다. 침례 요한은 1년 가까이 갇혔다는 마캐루스 요새 동굴감옥에서 자신의 모든 생이 담긴 광야를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마침내 헤롯의 생일 날,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의 춤에 빠진 헤롯이 무엇이든 해 주겠다고 약속했고, 헤로디아의 사주로 침례 요한은 어둡고 깊은 감옥에서 참수로 생을 마감했다.
 
윤석전 목사: 마캐루스 요새에 가 보니까 광야 한가운데 있는 아주 척박하고 삭막한 곳이었습니다. 사람을 그곳에 데려다 놓으면 누구든지 죽을 수밖에 없겠다고 느꼈습니다. 광야 한가운데 있던 그 요새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홍순화 원장: 이스라엘 지역은 험악한 곳이 많습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겠다 싶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의 주거지는 보통 그런 지형에 있습니다. 아무리 험준해 보여도 물만 끌어 댈 수 있으면 사람이 살았습니다. 특별히 이곳은 요새로 세워졌는데요. 앞쪽으로 사해가 보이고, 뒤쪽으로는 유대 광야, 요르단 지역의 산악 지대가 계속 펼쳐져 있습니다. 대개 마캐루스를 감옥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헤롯 대왕이 그곳에 궁전과 성읍들을 지었습니다. 한마디로 마캐루스 지역은 정상적으로 사람들이 살던 곳입니다. 
윤석전 목사: 그 시대에 일반 감옥도 많았을 텐데, 요한을 왜 그런 동굴에 가두었을까요? 
 
홍순화 원장: 침례 요한이 그 지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요새의 감옥에 가두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 감옥에서 밖이 보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만약 바깥이 보였다면 자신이 활동하던 광야 지역을 내려다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으리라고 짐작합니다. 어쨌든 마캐루스 요새에 가면 믿음으로 살다 순교한 요한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성지순례객이 얻는 큰 유익이겠지요. 


<사진설명> 마캐루스 요새 산 중턱 곳곳에는 수많은 동굴이 파여 있다. 때때로 감옥으로,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였으리라 추정한다. 침례 요한도 이 같은 동굴에 갇혀 1년 동안 있었다.

 
윤석전 목사: 유 교수님, 많은 사람이 신학적으로 요한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합니다. 
 
유병우 교수: 요한에 대한 신학적인 평가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스승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특히 마가복음에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을 침례 요한이 체포되는 시점으로 잡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냐면, 스승이 투옥되자 그의 제자가 그 사역을 잇기 위해서 세상에 나왔다고 하는 신학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침례 요한은 신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고 얘기합니다. 대개 침례 요한을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의 증언자,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예비자라고 평가합니다. 이런 종교적인 이유 말고도 침례 요한의 활동은 유대교 갱신운동 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침례 요한은 헤롯 가문을 두 가지 점에서 철저하게 비난했습니다. 그 하나는 헤롯 가문이 티베리아 도시를 묘지 위에 건설하여 유대교 정결법을 위배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헤롯 안티파스가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해서 유대교의 혼인법을 위배했습니다. 당시 지나치게 헬라화해 가는 지도층들에게 각성과 회개를 촉구하는 유대교의 갱신운동이라는 차원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윤석전 목사: 지금까지 선지자 요한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요한 선지자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해서 타협 없이 자기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러면서도 메시아 예수님 앞에는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요1:27)고 하며 몹시도 겸손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깊으신 뜻 가운데 요한과 같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데에 세상과 타협 없이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이 값지게 쓰셨다고 인정받아 영광의 면류관을 얻기를 바랍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4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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