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6)] 요단강 침례터, 나는 죽고 예수만 살리라

등록날짜 [ 2015-08-12 00:34:06 ]

동쪽 사막과 서쪽 가나안(약속의 땅)을 가르는 요단강. ‘단이 내려온다’는 이름의 뜻처럼 실제로 강의 시작부터 끝 지점 사해까지 흘러 내려오는 강이다. 성경에 기록된 침례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이곳은 현재도 수많은 사람이 찾아와 침례받는다.

 

야르덴(요르단의 히브리어)은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신 터는 아니다. 하지만 본래 터가 국경 너머 요르단에 있어 이스라엘로 간 순례객들이 들어갈 수가 없게 되자 부근인 야르덴에 침례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물속에 잠겼다가 나오는 침례. 그것은 새 생명을 가지고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스라엘 아르덴 침례터.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요단강에는 구약시대부터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홍순화 원장(한국성서지리원): 요단강 없는 이스라엘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강입니다. 그런데 실제 순례 가서 강을 보면 우리나라의 개울이나 시냇물 같아 실망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제일 큰 강입니다. 길이가 251km나 됩니다. 성경 역사를 보더라도 이스라엘 민족은 요단강을 건너감으로 해서 가나안 입성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에게 가나안 땅은 요단강 너머에 있는 곳입니다. 엘리야가 이적을 일으켜서 요단강이 갈라지는 역사도 있었고(왕하2:8), 나아만 장군이 병이 나은 사건도 있었습니다(?朗?:14). 특히 제일 중요한 사건은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침례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스라엘이 기술이 발달해서 지하수를 개발하지만 아직도 주요 급수원인 요단강을 통해 물을 가장 많이 공급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단강은 동쪽 이스라엘과 서쪽 요르단의 국경이 되어 일반인은 감히 들어갈 수 없는 비무장지대입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임진강이 되어 버린 셈입니다. 많은 분이 요단강이 매우 좁다고 하시는데요. 상류는 좁지만 하류의 갈릴리 호수 지점은 꽤 넓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으로 들어?》졀?요단강을 건널 때 강물이 멈춘 이적이 일어났습니다(수3:15~16).

 

많은 분이 사르단에서 가까운 ‘아담’ 지역에서 물이 멈췄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지역이 비무장지대여서 일반인은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윤석전 목사: 최근에 예수님의 침례터가 요르단에 있는 장소로 밝혀졌습니다. 지금까지 성지순례객이 다른 장소로 오해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홍순화 원장: 성지 추정에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무엇보다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들의 견해를 따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대개 갈릴리 호수 남쪽 요단강이 시작되는 그 지역(야르덴)을 침례터로 알고 있는데 학자들 중에는 그곳을 침례터로 보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다만 거주지에서 가깝고 교통이 좋은 지역이기 때문에 관광용, 교육용으로 활용하여 많은 이가 그곳을 침례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예수님의 침례터로 여기는 장소는 두 곳인데 이스라엘은 ‘예후다(Yahud)’, 요르단은 ‘베다니(Bethany)’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둘 다 근거는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두 장소가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거의 비슷한 지역에 위치해 마주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요르단은 베다니 지역을 관광 상품화하여 아무나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곳이 1967년에 일어난 ‘6일 전쟁’ 이후 비무장지대가 됐기 때문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게 통제하고 있어, 1년에 한 번 매년 10월 셋째 주 목요일에 허가받은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침례는 구약부터 그 유래가 성경에 기록돼 있습니다. 침례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역사적 의미를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병우 교수(한영신학대학교 신약학): 기독교는 성례식으로 주의만찬예식과 침례예식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 기원을 찾기는 대단히 어렵지만, 직접적인 기원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실 때 정하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침례예식은 선지자 요한의 침례가 기독교의 그것과 가장 유사하다고 들 수 있습니다.

 

그전 유대인들의 정결의식은 주체가 자신으로서 스스로 씻었고 반복성이 있었으나, 선지자 요한의 침례는 침례를 베푸는 침례자가 있었다는 점, 또 회개의 침례는 단 한 번, 일회성으로 끝났습니다. 침례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예수님의 침례와 침례 요한의 침례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성경에 침례에 대한 기록이 여러 군데 나옵니다. 베드로전서 3장 20~21절을 보면 구약시대에도 홍수가 났을 때 노아의 여덟 식구가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침례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고, 고린도전서 10장 1~4절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 바다를 건널 때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았다고 쓰여 있습니다.

 

누가복음 3장 3~9절을 보면 요한이 유대인에게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했다고 했고, 마태복음 3장 13~17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의를 이루는 침례, 곧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는 침례를 받았습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 보면 우리가 받은 침례는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사는 연합을 고백하는 침례라고 했습니다.

 

또 마태복음 3장 11절을 보면 성령과 불로 침례를 준다고 기록되어 있고, 마가복음 10장 35~40절을 보면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은 침례를 받으려니와…”라며 고난의 침례를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침례 역사를 보면 구약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흘러오는 복음적인 의미가 엄청나다고 생각합니다.

 

 

사해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요단강 동쪽 요르단 땅. 그곳에 최근 예수님이 직접 침례를 받으신 곳으로 밝혀진 베다니 침례터가 있다. 베다니에서 엘리야가 승천했으며(왕하2:11), 침례 요한이 그의 주요 사역을 하던 곳이다. 2000년 전, 침례 요한은 예루살렘과 요단강 사방에서 침례를 받고자 몰려온 군중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때 군중 속에서 요한의 눈에 띄는 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예수였다.

 

지금은 물이 없어 바닥이 훤히 들어나 있는 물터 앞에는 4, 5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침례 요한 기념교회 터가 있다. 교회 바닥을 장식하던 모자이크는 2000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이곳이 침례 요한의 활동지였음을 입증하는 뚜렷한 증거물이 되어 준다. 침례 요한은 군중에게 외쳤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마다 불에 던지우리라고”(눅3:9). 그때를 함께했던 잔재들은 말이 없고 과거 역사 또한 줄어든 강물처럼 흔적이 없다.


베다니 침례터.

윤석전 목사: 최근 요르단 땅 베다니 지역이 예수님의 침례터라고 밝혀졌는데요.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해 주세요.

 

홍순화 원장: 베다니가 예수님이 침례받은 터라는 사실은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알려져 있었습니다. 다만 특별한 지역이라 공개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요르단 정부가 관광객에게 문을 열었습니다. 그야말로 관광지를 잘 조성해 놓았고 다시 침례요한 기념 예배당을 지으며 대대적으로 잘 만들어 놓았습니다. 엄격한 통제 아래 그곳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학자가 베다니를 예수님의 침례터로 여기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강력하게 자국 땅 예후다를 예수님의 침례터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예수님이 행하신 침례와 선지자 요한이 행한 침례가 같을 것으로 많은 사람이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선지자가 한 침례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텐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유병우 교수: 예수님의 침례와 선지자 요한의 침례가 다른 점은 사도행전에 잘 나옵니다. 예수님의 침례에서는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예수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느냐 베푸셨느냐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많습니다. 예수님과 침례 요한의 관계가 애매모호하지만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신 사실에 대해서는 성경에 이견이 없습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유대인이 자기 죄 때문에 침례를 받은 것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의인으로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침례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고(마3:15), 요한복음에는 예수께서 자신의 죄가 아니라 세상의 죄를 지고 간다고 나와 있습니다(요1:29). 누가복음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이 침례를 받기는 받았는데 누구에게 침례를 받았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기 전에 요한이 체포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눅3:20~21).

 

또 예수께서 과연 침례를 베푸셨는가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26절에 예수님이 침례를 베푸신 것으로 나와 있는데 4장 2절에서는 제자들이 준 것으로 수정해 놓았습니다. 당시 침례 요한은 유대인에게 정의와 금욕을 강조하였으나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자비를 더 강조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침례 요한을 넘어선 분이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윤석전 목사: 유대인이 받는 침례는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자기 죄를 자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물속에 들어가셨다가 나오신 것은 “너희가 내놓은 죄를 내가 짊어지고 죽었다가 다시 부활할 것이다” 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침례를 마치고 올라오실 때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다’ 하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마3:17). 또 그 이튿날 선지자 요한은 “온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외쳤습니다.

 

유대인이 내놓은 죄를 짊어지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인류를 구원하실 것을 침례를 통??예언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침례를 통해 하신 그 모든 예언의 역사를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침례를 통해 요단강에서 죄인인 유대인과 예수님이 만난 것은 구속받을 자와 구원자가 만난 역사가 성경에 기록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홍 교수님, 베다니로 성지순례를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요?

 

홍순화 원장: 베다니에 들어가려면 한나절이 걸립니다. 요르단에 머무르는 시간을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만약 시간이 제한돼 있다면 다른 곳 보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또는 여행사와 함께 쉽게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판문점처럼 통제된 장소이기 때문에 통제를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입장료를 내고 통제만 잘 따르면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겸손했던 선지자 요한, 그는 유대인들을 회개케 하기 위해서 물로 침례를 베풀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이루기 위해 예수께도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우리들이 회개하는 죄를 짊어지고 물에 들어가시듯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듯이 다시 사셨습니다. 요한이 침례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을 만인에게 드러내는 하나님의 일에 아름답게 사용되었듯이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이 쓰시기에 적합한 인물로 만들어져서 성령 안에서 가장 복된 삶을 살며 하나님께서 값지게 쓰시는 위대한 일꾼이 되기를 바랍니다.<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4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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