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14)] 십자가 사건 전날 밤에 예수께 일어난 일

등록날짜 [ 2015-10-05 14:38:38 ]


<사진설명> 마가다락방 내부.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예수께서는 저주의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실 역사적 사건을 하루 앞두고 제자들과 모여 떡과 잔을 나누셨습니다.

떡은 곧 몸이요, 잔은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26:26~28).

인류를 죄와 저주와 지옥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이 찢으실 살과 흘리실 피를 기념하라 말씀하신 최후 만찬이 벌어진 장소, 마가다락방!

주님은 제자 유다의 배신을 받으면서도 그곳을 인류구원을 위해 고난당하실 것을 예고하는 사랑의 현장으로 만드셨습니다. 만찬을 마치신 후, 주님께서는 바로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셔서 공생애 최후의 십자가 사건을 앞두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 절규하며 기도하셨습니다. 바로 그 인류를 향한 절정의 사랑의 현장, 마가다락방과 겟세마네 동산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마가다락방 내부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설계되었다. 이곳에는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드신 것으로 추정되는 자리가 있다. 예수께서는, 만찬자리에서 누가 더 높으냐를 놓고 경쟁하던 제자들에게 손수 그들의 발을 씻기셨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그 역사의 현장에서 순례자들은 겸손과 사랑의 실체를 다시 한 번 새기게 된다.

윤석전 목사: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신 후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후 제자들이 마가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씀으로 성령을 받았고, 그들을 통해 복음의 뇌관이 전 세계를 향해서 걷잡을 수 없이 장렬하게 터져 나갔습니다. 감격스러운 그 장소에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성지순례를 떠나는데요, 마가다락방이 당시 주님이 실제로 계셨던 그 현장인지 궁금합니다. 

홍순화 원장(한국성서지리원): 마가다락방은 예루살렘성 남쪽 시온 문에서 바깥쪽으로 약 100m 거리에 있는 2층 석조건물에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주후 70년경에 파괴되었는데 예수님 시대에 있던 마가다락방이 어떻게 그대로 있을까, 궁금증이 생길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난 후 75년경에 사람들이 전승을 따라 마가다락방으로 추측되는 지점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을 나눈 곳이기도 하지만, 성령 강림이 일어난 아주 중요한 장소니까요.

그 후, 이곳은 여러 이유로 파괴되었다가 14세기경에 프란체스코수도회가 다시 지었습니다. 그런데 15세기경에 유대인들이 마가다락방 1층 지점을 다윗왕의 무덤이라고 믿고 가묘(假墓)(행2:29)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프란체스코수도회와 유대인이 충돌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회교도가 둘 다 내쫓고 자기들의 사원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지금도 마가다락방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쪽 옆 강단에 회교 모스크로 쓰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어쨌든 지금 있는 마가다락방은 14세기경에 지은 건물입니다.


윤석전 목사: 마가다락방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모아 놓고 만찬을 베푸셨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 유명한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주님이 제자들과 나누신 최후의 만찬은 우리에게 정말 잊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주의 만찬’의 의미를 신학적인 면에서 더 깊이 알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조경철 교수(감리교 신학대학교 신약학): 주의 만찬이 갖는 신학적인 의미를 두 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구원론적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식사를 제자들과 하신 후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으셨습니다. 유월절은 구약성경에 나와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탈출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자기 집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라서 죽음의 재앙을 면했습니다(출12:13). 그것이 유월절 의미입니다. 유월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의 피를 통해 생명을 구원받았습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제자들과 만찬을 할 때 떡과 잔을 나누면서 자신의 살을 찢고 피를 흘려 영원한 양식이요 영원한 음료를 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를 믿는 자라면 누구라도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님의 피, 찢으신 살을 통해 죽음의 벽을 넘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둘째, 교회론적이고 사회학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주의 만찬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가 예수님이 주신 살과 피를 받음으로써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한 형제자매라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깊은 뜻을 모르고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윤석전 목사: 만찬을 마친 후, 제자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아픔을 안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를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셨습니다.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될 만큼,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내일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최후를 앞두고 절규하며 기도하던 그 현장, 겟세마네 동산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진설명> 감람산 서쪽 기슭 겟세마네 동산에 위치한 만국교회.

겟세마네 동산은 감람산 서쪽 기슭에 있는 나지막한 언덕이다. 겟세마네는 ‘기름 짜는 틀’을 뜻하는 히브리어다. 인근 지역에 올리브 기름을 짜는 농장이 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겟세마네 동산에 있는 ‘만국교회’는 예수께서 최후의 전날 밤을 기도하며 보냈던 자리에 세워졌다. 현재 건물은 1920년에 재건했다. 이 부근에서 십자가 고난을 눈앞에 둔 예수께서 번민 속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셨다. 교회 내부에는 철제 가시관으로 둘러친 바위가 있다. 당시 예수님의 기도 자리로 추정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 하시고 홀로 이곳에서 기도하셨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당시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닥쳐올 고난을 미리 아시고 고통을 절감하셨다. 메시아로서 자신의 사명은 분명히 인식했지만, 육신을 입은 인성(人性)은 커다란 고뇌에 둘러싸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믿음은 마침내 인성을 극복해 내셨다. 그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능력이었으며 그 능력은 바로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었다. 이 숨 가쁜 시간에 제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들은 졸지 말라 하셨던 예수님의 부탁을 잊은 채, 감람나무 아래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26:41).

이 사건은 기도로 준비된 자만이 환란을 이길 수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윤석전 목사: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사역하시다가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가신 것을 보면, 두 곳이 가까운 듯한데요, 겟세마네 동산의 위치를 알려 주십시오.

홍순화 원장: 겟세마네 동산에 가 보면 예루살렘 성과 가까워서 순례객이 다들 놀랍니다. 예루살렘 성 동쪽에 난 유일한 문인 스데반 문 밖으로 나가면 바로 기드론 계곡인데, 350m쯤 걸어가면 겟세마네 동산이 있습니다. 기드론 계곡과 맞부딪히는 곳이 바로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예루살렘 성에서 5분 거리에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겟세마네 동산 주위에는 성지가 많은데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홍순화 원장: 겟세마네 동산 안으로 들어가면 감람나무들이 있습니다. 감람나무는 바로 올리브나무를 말합니다. 동산 끝에 있는 만국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강단 맨 앞에 바위가 있습니다. 그 바위 앞에서 많은 분이 기도하는데,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바위로 전해집니다. 만국교회를 나오면 옆으로 150m 지점에 마리아무덤교회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30m 옆에 겟세마네 동굴교회가 자리하고, 뒤에는 러시아풍 황금색 지붕인 막달라 마리아 기념교회가 있습니다. 눈물교회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성지의 보고(寶庫)입니다.

윤석전 목사: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몸부림치고 기도하셨습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울컥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라는 중대사를 앞두고 그렇게 몸부림을 쳤는데, 많은 사람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아들이 왜 그랬는가?’라고 의아해합니다. 주님께서 절규하며 기도하신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십시오.

조경철 교수: 첫째, 예수님도 인간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더구나 십자가형은 당시 인간이 당하는 가장 처절한 사형 방법이었습니다. 그 처절한 고난과 죽음 앞에서 인간이었던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대교회 중에 영지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는 신이기에 십자가의 고통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겟세마네 동산의 사건은 예수님이 절대적으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 참하나님이면서 참인간이었다는 점이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가 주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둘째, 인간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가 그리 쉽고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인류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땀이 핏방울처럼 될 정도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참인간이신 예수님의 처절한 기도, 그리고 죄 없으신 그분의 죽음이 있어야 할 만큼, 죄와 죽음의 심각성을 얘기해 줍니다.

셋째, 예수님은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을 절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분이라는 점을 말해 줍니다.

겟세마네 기도의 의미는 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겟세마네 동산에 있는 만국교회에 가 보면 많은 순례객이 와서 기도합니다. 그 동산에서 내려다보면 겟세마네 동굴이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굴을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홍순화 원장: 겟세마네 동산에서 150m 정도 내려오면 마리아무덤교회가 있고,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30m 들어가면 겟세마네 동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제자들이 기다렸다고 추정하는 곳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이 기도하신 후 제자들에게 왔다가 유대인에게 붙잡히셨으니까, 그곳이 바로 체포되신 곳으로 봅니다. 여기에 가면, 1681년에 프란체스코수도회가 꾸민 예배당이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자이크는 비잔틴 시대, 벽화는 십자군 시대 작품입니다. 겟세마네 동산뿐만 아니라 동굴까지 둘러보면 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부탁하셨는데도 제자들이 졸았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조경철 교수: 첫째, 제자들은 인간의 연약성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래 제자들은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기도하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깊은 잠에 빠진 모습을 보면, 인간은 말할 수 없이 연약한 존재다, 제자들이라 할지라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깨어서 기도하지 않으면 제자라 할지라도 인생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예수님을 제대로 따라가는 제자의 길을 걸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이 잠들었기에 예수님이 체포될 때는 모두 도망갔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만약 겟세마네 동산에서 깨어 예수님과 함께 기도했더라면 주를 부인하거나 도망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배울 교훈은,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깨어서 간절히 기도하지 않으면, 죄와 죽음의 문제 앞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에는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이 깨어서 기도해야 예수의 증인이 되고, 인생의 죄와 사망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 담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겟세마네 동산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 절규하던 주님의 모습은 우리가 취했어야 할 자세가 아닌가 싶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십자가라는 중대사를 앞두고 “나를 위해 깨어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 번이나 애가 타도록 부탁하시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육신의 연약함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내일 닥칠 문제가 있습니까? 아니면 과거에 고통스러운 문제가 있었습니까? 깨어서 기도한다면 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믿습니다. 제자들은 깊이 잠들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깊이 잠들어서 주님의 부탁을 잊지는 않았습니까? 우리 모두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승리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5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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