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10-15 11:44:45 ]
예루살렘성 남쪽, 힌놈 골짜기 언덕 부근에 있는 아겔다마(Akeldama). 점토 지대인 이곳은 토기장들이 사용하려고 흙을 파내서 농사를 지을 수 없었기에 예부터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였다. 스승 예수가 예기치 않게 체포되자 제자들은 모두 도망쳤다. 그들은 아직 예수를 위해 자신을 내줄 마음이 없었다. 이것은 믿음의 대실패였다. 이 사태의 주모자 가룟 유다가 죽은 장소로 전해지는 곳이 바로 아겔다마다.
은 삼십에 스승을 팔아넘긴 유다는 예수님이 체포되신 것을 보자 그 은을 성소(聖所)에 던지고 이곳에서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그때 제사장들이 유다가 던진 은으로 아겔다마 땅을 사서 묘지로 사용했다. 지금도 그곳에 남아 있는 돌무덤들은 죄를 지었으되 회개치 않은 자들의 불행한 종말을 우리에게 전해 주는 듯하다.
아겔다마.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담임목사): 아겔다마 지역은 예루살렘에 있으면서도 상당히 외진 곳에 도시 같지 않은, 전혀 개발되지 않은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겔다마가 어디에 있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홍순화 원장(한국성서지리원): 예루살렘 ‘통곡의 벽’으로 들어가는 남동쪽 문을 덩게이트[Dung Gate, 분문(糞門)]라고 합니다. 옛날에 이 문으로 쓰레기를 내다 버렸기에 붙은 이름입니다. 그 문으로 나오면 유명한 ‘베드로 통곡교회’가 있고, 베드로 통곡교회 아래 언덕에 아겔다마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오른쪽, 즉 성전산 오른쪽에는 기드론 계곡이 있고, 예루살렘 왼쪽에는 힌놈 골짜기가 있습니다. 아겔다마는 힌놈 골짜기가 끝나는 부분에서 기드론 골짜기로 연결되는 모서리, 후미진 곳에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유다는 예수님께서 사랑한 제자였습니다. 그런 유다가 예수를 배신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과연 유다는 어떤 인물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조경철 교수(감리교 신학대학교 신약학): ‘유다’라는 이름 앞에 ‘가룟’이라는 말을 붙입니다. ‘가룟’의 뜻이 무엇인지 두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첫째, 가룟(Iscariot)을 유다의 출신지 지명으로 보면 ‘가룟 지역 출신의 유다’라는 의미입니다. 둘째, ‘가룟’을 히브리어 ‘칼’에서 유래한 단어로 보면 ‘칼잡이 유다’라는 뜻이 됩니다. ‘칼잡이 유다’로 보면, 유다는 그 당시 지배세력인 로마에 무력 항쟁을 시도한 젤롯당(Zealot, 열심당) 출신이라고 여겨집니다.
왜 유다가 스승인 예수님을 배신했을까요? 성경을 종합해서 살펴보면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유다를 젤롯당(열심당) 출신이라고 가정한다면, 유다는 예수께서 엄청난 힘으로 천군 천사를 동원해 유대민족을 지배하는 로마제국을 군사력으로 물리치고, 이스라엘에 위대한 다윗 왕국을 재건해 줄 민족적 정치적 메시야가 되리라고 기대했으나 그 소망이 무너지자 예수를 팔아넘긴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께서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눅9:22)라는 말씀을 여러 차례 하시자, 유다는 초반에 수많은 이적을 일으킨 것과 다른 예수의 모습에 놀랐고, 스승의 행동들을 가만히 바라보니 예수님이 정치적.민족적 해방자가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유다는 그런 예수의 모습에 실망해서 스승 예수를 배신하고 팔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둘째, 성경에는 유다가 돈에 욕심이 나서 예수님을 팔았다고 나와 있습니다(마26:14~16). 여러 가지 설이 있겠지만 유다가 스승인 예수님을 판 결정적인 이유는 결국 유다가 예수님을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 분인지를 유다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봅니다.
윤석전 목사: 유다가 예수님을 판 후 자기 목숨을 끊자 열한 제자만 남았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죽은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사도 열둘을 채우고자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선출한 이야기가 나옵니다(행1:15~26). 이처럼 사도 열둘을 꼭 채우려고 맛디아를 선출한 의미를 설명해 주십시오.
조경철 교수: 이는 사도행전이 말하려고 하는 바인 ‘그리스도인’, ‘교회의 이해’와 직결되는 부분입니다. 사도행전 저자는, ‘교회’란 ‘새로운 이스라엘’,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새것’을 이해하려면 ‘옛것’을 알아야 합니다. 옛 이스라엘과 옛 하나님의 백성은 열두 지파 공동체로 구성됐습니다.
즉, ‘옛 이스라엘’과 ‘옛 하나님의 백성’을 대체하는 새 이스라엘과 새 하나님의 백성 역시 ‘열둘’이라는 숫자와 직결돼야 한다는 뜻입니다. 옛 이스라엘이 ‘열두 지파’ 공동체였다면, 새 하나님의 백성 역시 ‘열두 사도’ 공동체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런 이유로 맛디아를 선출해 가룟 유다의 빈자리를 채웠다는 사실은 교회가 옛 이스라엘(열두 지파)의 구원의 역사를 이어 가면서도 갱신(更新)하는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열두 사도)이라는 중요한 교회론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베드로 통곡교회는 예루살렘 남동쪽, 시온문 근처에 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부인한 후, 닭 우는 소리를 듣고 회개한 장소에 세워졌다. 시온산에서 최후의 만찬을 마치신 후, 예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기까지 기도하셨다. 이때 대제사장 가야바가 보낸 병사들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와 예수님을 체포했다. 예수께서는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왔고 이곳에서 신문을 받았다. 이때 뒤따라온 베드로의 배신이 일어났다.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예언대로 스승을 부인했다. 예수께서는 그런 베드로를 슬프게 바라보셨고, 닭이 울자 베드로는 통곡한다. 이 사건을 기념해서 세워진 교회가 베드로 통곡교회다. 이 교회는 ‘닭이 운다’는 뜻의 ‘갈리칸투(Gallicantu)’라고 불린다. 예수님과 동행한다는 것. 그것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것을 몰랐다.
어쩌면 예수님과 동상이몽(同床異夢)을 했을지도 모른다. 십자가의 의미를 몰랐던 베드로는 그렇게 약한 사람이었다. 수제자 베드로에게마저 버림받은 예수께서는 체포된 날 밤 대제사장 관저 지하에 만들어진 깊은 웅덩이에 갇혔다.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베드로 통곡교회).
윤석전 목사: 예수께서 고난당하실 때 베드로가 몇 시간 전에 “다 주를 버릴찌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마26:33)라고 했지만, 순간에 변질해서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조경철 교수: 베드로는 성격이 다혈질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한 제자 중에서도 ‘수제자’라는 별호까지 붙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 역시 예외 없이 ‘죄인’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잡혀 가신 현장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제외한다면, 가장 위대한 인간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모습을 보면, 수제자 베드로 역시 여느 사람과 똑같이 죽음과 고통을 두려워하는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그렇기에 이 사건은, 인간은 절대 인간의 숭배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 줍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했습니다. ‘3’은 성서적으로 ‘완전한 수’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의 손에 팔려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에 제자들과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가셨을 때도 제자들은 ‘세 번’이나 잠들었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했다는 것은 그만큼 베드로가 주님을 완벽하게 부인했다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철저하게 완전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했을 때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 성령 충만을 경험하고 180도 변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했다는 전승이 있을 정도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인간이라면, 수제자든 누구든 인간은 완전한 죄인이고,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으로 거듭난 후에야 비로소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한 이야기는 예수님 앞에서 인간의 본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라고 보면 됩니다.
윤석전 목사: 예수님이 갇히신 감옥과 베드로가 통곡한 장소가 가깝다고 하는데요. 위치를 자세히 알려 주십시오.
홍순화 원장: 예루살렘의 구시가지(올드시티)를 감싼 성벽 8개 문 중, 남쪽에 시온문이 있습니다. 그 문 아래쪽으로 300m 정도 가면 베드로 통곡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지붕 꼭대기에 있는 닭 한 마리의 조각입니다. 베드로를 회개케 한 닭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통곡교회에 들어가면 계단이 보이는데 예수님 당시에 실제 있던 계단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직접 걸어가신 계단을 보니, 저 길이 바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제자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밑으로 내려가 보면 유적들이 있고, 안에는 베드로통곡교회 예배당이 잘 꾸며져 있습니다. 현재 건물은 1931년에 지어진 것입니다. 지하로 내려가면 예수님이 갇힌 감옥과 예수 시대 것으로 추정하는 물 저장소가 있습니다.
베드로 통곡교회 지하에는 감옥이 있다. 이 감옥은 예수님 당시에는 계단도 없는 깊은 돌 웅덩이었다. 죄수들을 쇠사슬로 묶고 고문한 흔적이 역력하다. 어둠 속에 짐승처럼 내던져진 하나님의 아들 예수. 비록 어둠의 세력이 예수님을 에워싼 듯 보였지만 그것은 죄와 죽음을 파괴할 하나님 시간표의 종반부였다. 십자가 고난으로 인류 구원의 문은 그렇게 열리고 있었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2:15).
베드로 통곡교회 지하 감옥.
윤석전 목사: 예수님이 갇히신 지하 감옥을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홍순화 원장: 베드로 통곡교회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추정하는 곳에 세웠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신 예수님이 기드론 계곡을 지나, 이곳 계단을 거쳐 지하 감옥에 갇혔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통곡교회에는 예수님 시대 것으로 추정하는 물 저장소와 지하 감옥 터가 있습니다. 지금은 그곳에 계단을 만들어 놓았지만, 그 당시에는 계단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도망갈까 봐 두려워한 이들이 계단이 없는, 웅덩이와 같은 지하 감옥에 예수님을 가둬 놓았다가 재판을 받으러 갈 때 끌고 갔다고 전해집니다.
윤석전 목사: 예수님께서 체포당하신 후 제자들이 모두 도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조경철 교수: 예수님은 요즘으로 말하자면 ‘국가반역죄’라는 죄명으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국가반역죄로 예수와 함께 처형당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제자들은 도망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믿으면 질병이 낫고,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할 거라는 화려하고 외적인 이유로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난, 핍박, 박해, 아픔 그리고 순교하신 예수님을 위한 충성, 희생, 죽음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깨우치지 못한다면, 오늘날도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배신하고 도망갈 가능성이 인간에게는 다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 했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롬3:23)라며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도 예외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육에 속해 연약한지, 성령 안에 속해 강한지 살펴보아, 최후에 승리하는 그 날까지 성령 충만하여 예수 증인으로서 믿음 안에서 살기를 바랍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5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