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11-03 10:21:01 ]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예수님은 죄로 지옥 가는 인류를 구원하고자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통당한 골고다의 현장과 주님이 묻혔다가 부활하신 무덤은 어디에 있을까요? 또 그 무덤에서 주님이 부활하셨을 때 얼마나 찬란한 영광이 있었을까요? 예수의 무덤이 있는 골고다 현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진설명> 성묘교회.
주님이 인류의 죗값을 갚으시려고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신 슬픔의 길, 비아돌로로사의 마지막 코스 성묘교회는 예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해골 언덕 골고다에 세워졌다. 사람들은 몰랐다. 보잘것없는 나사렛 사람의 십자가 고난이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는 부활로 이어지리라는 것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자(제11처소) 골고다는 피로 붉게 물들었다. 바로 그 곁에서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이 겪는 참혹한 고통을 그저 지켜보아야만 했다. 완전한 사랑! 그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예수께서는 목숨까지도 인간을 위해서 내놓으셨다. 인류의 모든 죄악을 자신의 몸에 쏟아부으셨다. 그것은 하나님에게 버림받는 완벽한 고독의 시간이었다. 그 순간에도 사람들은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구원하나 보자” 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짓밟았다(마27:49).
하나님도 기꺼이 예수를 그 슬픔 속에 내버려두셨다. 그렇게 인류 구원의 대역사는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것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윤석전 목사: 예루살렘 북서쪽에 있는 비아돌로로사 마지막 코스는 골고다 언덕인데, 아랍인 시장(市場)이 즐비하고 복잡하게 형성돼 있을 뿐 주변 어디에도 언덕으로 보이는 곳이 없습니다. 골고다 언덕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홍순화 원장(한국성서지리원): 골고다가 그 당시에는 언덕이었지만 지금은 예루살렘 시내 안에 있습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당시 골고다는 해발 760m 언덕이었는데 40m를 깎아서 지금 모습으로 조성한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골고다 언덕 복원의 배경을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주후 306~337년에 재위한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믿음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주후 324년, 헬레나는 당시 로마 주교에게 골고다 언덕을 찾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결과, 골고다 언덕을 찾아냈고 그곳에서 십자가를 비롯해 고고학적으로 가치 있는 유물을 발굴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132년 하드리안 황제 때 세운 비너스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헬레나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에게 신전 대신 예배당을 세워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황제는 어머니의 요청대로 신전을 허물고 처음으로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길이 150m, 폭 75m에 이르는 대단한 규모였습니다.
그 후 614년에 페르시아의 침입으로 파괴되다가 재건됐고, 1009년에 이집트의 통치자가 또다시 무너뜨려 파괴되었습니다. 11세기 중반, 십자군이 교회를 다시 지었고, 이는 오늘날 볼 수 있는 성묘교회의 기초 모습이 되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그때 왜 죄 없는 예수님이 모진 고초를 당하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 당시 십자가 형벌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조경철 교수: 십자가 처형은 페르시아에서 유래했습니다. 로마 시대에도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노예, 큰 도둑질을 한 자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적 반역자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했습니다. 하지만 로마 시민권이 있는 자나 일반 시민에게는 십자가 처형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 처형 방식을 보면 세로 기둥은 처음부터 바닥에 박혀 있고, 십자가 처형을 당하는 사람이 가로로 된 막대기를 묶어서 지고 올라갔습니다. 처형 장소로 올라가는 동안 죄수는 목에 죄목이 적힌 팻말을 걸고, 채찍질당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리면, 죄인은 주로 심한 갈증과 순환기 장애 같은 증상으로 죽습니다. 단시간 내에 죽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며칠씩 사투를 벌이다가 결국 비참하게 죽어 갑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동안, 독수리 같은 짐승들이 살을 파먹기도 합니다. 이처럼 십자가 형벌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사형 방법 중 가장 잔인한 형벌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하필이면 예수께서 그런 중죄인에게 가하는 십자가형을 당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조경철 교수: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신명기 구절에 나와 있듯이 예수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죽어야 했습니다(신21:23). 그렇기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까?
다시 말하면, 죄인인 인간이 매달려야 될 십자가에 예수님이 대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달렸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이 엄청난 진리를 깨달았을 때 전율했습니다. 얼마나 전율했는지 눈이 어두워졌다고 합니다(행9:1~18). ‘죄인인 내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매달려야 되는 저 십자가에 나를 대신해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매달렸구나.’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바울의 인생이 180도 변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려던 바울이 진리를 깨닫는 순간 예수님을 위해서 순교의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자로 변했습니다. 이 점이 바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야 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주후 335년경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모친 헬레나가 세운 성묘교회에는 매년 순례자 수백만 명이 방문하고 있다.
예수께서 운명하시는 순간 일어난 지진 때문에 갈라졌다는 바위 위에는, 두 강도와 함께 예수님이 달렸다고 추정되는 십자가 자리가 있다. 십자가 주변에서 있던 유대인들은 기대했으리라. 엘리야가 와서 예수를 구원하는 장면을 목격하기를. 그러나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는 말씀만 남기고 숨을 거두셨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신을 거두게 해 달라고 청해 허락을 받아 시신을 내렸다(제13처소). 예수님의 몸이 잠시 머물렀던 무덤(제14처소)은 요셉이 바위를 뚫어서 만든 것이다.
안식 후 첫날,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은 빈 무덤 안에서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천사의 말을 듣는다. 전 인류에게 영원한 소망이 열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부활한 예수를 믿는 사람들, 그들은 이미 영생을 얻은 자들이다. 그런 사람만이 타인에게 생명을 줄 힘이 있다. 사람들은 그들을 예수의 참제자라고 부른다. 순례자들의 이어지는 행렬 속에는 참제자가 되고 싶은, 신앙인의 소망이 서려 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벧전1:3~4).
<사진설명> 성묘교회 내부. 예수님이 잠시 머물렀던 빈 무덤 지점.
윤석전 목사: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절정으로 받으셨던 제10처소~제14처소를 설명해 주십시오.
홍순화 원장: 제10처소와 제11처소는 거의 같은 장소입니다. 제10처소는 예수님의 옷을 벗긴 곳이고, 제11처소는 예수님이 못 박히신 지점입니다. 성묘교회 안으로 들어가 오른쪽 언덕 위로 올라가면, 첫째로 대면하는 곳이 제11처소입니다. 바로 옆에 제12처소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린 형상의 동상이 있는데, 실제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곳입니다. 동상 양쪽에 있는 검은 돌판은 두 강도가 매달린 지점입니다. 그곳 전시관 유리창 안을 자세히 살펴보면 반으로 갈라진 바위가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후 지진이 일어날 때 갈라졌다는 바위입니다(마27:51).
바위가 갈라진 흔적이 바로 밑에 있는 아담교회당까지 이어집니다. 더 아래로 내려가면 넓은 대리석 돌 판이 있습니다. 그곳은 제13처소로,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님의 시신을 눕혔다는 장소입니다. 그곳에서 왼편으로 가면 제14처소인 예수님의 빈 무덤이 보입니다. 제10처소부터 제14처소까지 모두 반경 30m 안에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영혼이 떠나가셨을 때,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 쫙 찢어졌다고 했습니다. 그 의미를 말씀해 주십시오.
조경철 교수: 구약성서에 보면, 성소(聖所) 혹은 성전(聖殿)에는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두꺼운 휘장이 쳐져 있었습니다(출26:32~33). 모세가 광야에서 성막을 지을 때부터 내려온 것입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고 믿었기에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신 곳에 죄인인 인간이 감히 접근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지성소에 들어가는 순간, 인간은 즉사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두꺼운 휘장이 완전히 찢어졌습니다(마27:50~54). 그것은 바로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구분이 없어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성소와 성소를 가로막고 있는 휘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는 장벽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이어질 수 없는 단절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휘장이 찢어지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단절됐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소통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과 인간이 다시 이어지는 교량 역할을 하신 겁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장막이 허물어진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구원의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많은 성지 순례자가 성묘교회가 중요하다는 점을 알지만, 성묘교회는 어떤 곳인지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그곳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홍순화 원장: 먼저 ‘성묘교회’ 단어를 살펴보면 ‘예수님의 무덤을 기념하는 교회’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예수님 부활 기념 교회’라고 부르기도 했지요. 예루살렘 올드시티는 유대인, 이슬람, 아르메니아인, 기독교인이 네 구역에 나뉘어 살고 있습니다. 성묘교회는 기독교인 지역에 있습니다. 대략 주후 500년경부터 아랍계 기독교인들이 터를 만들어 살고 있는 곳입니다. 성묘교회 안에는 제9초소부터 제14초소까지, 골고다 언덕부터 예수님 무덤까지 모두 있습니다.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헬레나 기념 예배당, 십자가 발굴 예배당과 같은 성지들이 있어 관심 있게 다녀보면 좋을 듯합니다.
윤석전 목사: 빌라도가 예수님 무덤을 로마 군인에게 사흘 동안 지키게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조경철 교수: 유대인에게 ‘삼 일’이란 상당히 의미가 있는 기간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삼 일을 지내 봐야 확실히 죽었는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도 삼 일이 지난 후 부활하셨고, 나사로도 삼 일이 지난 후 예수께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삼 일’은 유대인에게 사람이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간입니다. 예수님을 죽인 빌라도와 유대인 지도자들은 혹시 예수님이 가사(假死) 상태로, 아직 죽지 않았는데 죽은 것처럼 있다가 다시 살아나 일어나서 어디론가 갈 염려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삼 일 안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몰래 훔쳐다가 다른 곳에 안치해 놓고 예수님이 살아났다고 선전할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덤을 삼 일 동안 굳건히 지키도록 부하에게 명령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사람이 어떻게 막겠습니까? 군인들을 동원해서 철통같이 경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삼 일 만에 부활하게 했습니다. ‘삼 일’이라는 기간은 예수가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여기서 우리는 완전히 죽으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완전히 살리신 것을 막을 인간적인 방법은 없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이 땅에서 살다 죽는 것으로 끝나는 존재가 아닙니다.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는 어떤 어려움과 고통이 올지라도 그 문제 때문에 좌절하지 말고, 부활의 영광을 믿고 최후에 승리하기까지 신앙에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5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