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11-10 16:07:06 ]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은 우리 기독교인의 믿음과 소망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예수께서 부활하고 승천하신 장소를 탐방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을 만나 식사하신 곳에 세워진 ‘베드로수위권교회’와 베드로가 고기를 잡던 ‘갈릴리 호수’를 살펴보겠습니다.
갈릴리 호수 북서쪽 타브가(Tabgha) 지역에 있는 베드로수위권교회는 4세기에 처음 세워졌다가 페르시아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 후 재건과 파괴를 거듭하다 1934년에 이르러 현재 교회가 만들어졌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후, 베드로와 제자들은 본업인 갈릴리 어부 생활로 돌아갔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만나러 오셨다.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 부근에서 제자들과 식사하시면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을 세 번이나 반복하셨다(요21:15~17). 그때 베드로는 세 번 같은 대답을 한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그때마다 예수께서 명하신다. “내 양을 먹이라.” 이것은 베드로가 예수께 받은 새로운 비전인 한편, 죽음을 전제로 하는 명령이었다.
훗날 베드로는 예수의 명령대로 주님의 양떼를 돌보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음에 이른다. 비로소 베드로는 예수님과 같은 길 위에 서게 된 것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하고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던 축복이 드디어 성취되는 순간이었다.
갈릴리 호수에 있는 베드로수위권교회.
윤석전 목사: 유대 땅 이스라엘에 가면 ‘베드로고기’가 관광객에게 아주 인기가 높습니다. ‘베드로고기’라는 이름의 유래가 궁금합니다.
홍순화 원장(한국성서지리연구원): ‘베드로고기’ 유래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세(15세부터 65세 유대인 남자라면 매년 바쳐야 하는 세금)를 내실 때 물고기를 잡아서 그 입에서 나온 세겔을 바치라고 하셨습니다(마17:27). 거기서부터 ‘베드로고기’가 유래했습니다. 베드로가 잡은 고기라고 해서 ‘베드로고기’라고 합니다. 당시 그 고기는 낚시로만 잡을 수 있는 ‘돌잉어’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가 보는 베드로고기는 대량으로 잡을 수 있는 ‘무시트’라는 고기입니다.
윤석전 목사: ‘베드로수위권교회’는 어떤 곳인가요?
홍순화 원장: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예수께서는 특히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거든 네 양을 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베드로 수위권교회’는 그 말씀을 하신 장소로 봅니다. 그곳에서 본업으로 돌아간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또다시 만선(滿船)의 기쁨을 주시고,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베드로수위권교회 내부에 들어가면 강단 쪽에 큰 바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식탁’이라고 부르는데 예수께서 그 바위에서 제자들과 함께 빵과 구운 물고기를 드셨다고 전해집니다. 그 장소를 눈여겨보시면 좋습니다.
윤석전 목사: 베드로를 으뜸 제자라고 합니다. 신학적으로 볼 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조경철 교수(감리교 신학대학교 신약학): 베드로는 제자 중에 가장 먼저 부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도 맨 먼저 만나 “양을 치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디를 가실 때는 늘 제자들과 함께하셨습니다. 그중에 항상 베드로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변화산에 오를 때 데리고 간 세 제자(베드로, 요한, 야고보) 중에도(마17:1~3), 또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실 때도 항상 베드로가 있었습니다(막14:32~33). 신약성서에서 열두 제자의 이름이 쭉 나열되면 항상 베드로가 맨 앞에 언급됩니다. 이런 여러 이유로 베드로는 제자들을 대표해서 신앙고백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이런 면면을 볼 때 베드로가 사도 중에서 으뜸 제자, 으뜸 사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를 ‘으뜸 제자’ ‘첫 사도’라고 말하는 점은 베드로라는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사도들이 증언한 신앙고백을 대표로 한 자라는 데에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예수님을 좇은 사람은 수없이 많았는데 왜 사도는 열두 명인지, 또 왜 바울은 제자도 아닌데 사도라고 하는지 ‘사도’라는 명칭의 의미를 말씀해 주십시오.
조경철 교수: ‘사도’는 두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첫째,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신 동안 직접 불러 제자 삼아, 공생애 내내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예수님의 모든 것을 직접 목격한 증인이어야 합니다. 둘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복음을 증언하고 나아가서 선교 사명을 감당하도록 예수님께 직접 위임받은 사람입니다. 이 조건을 갖춘 사람은 모두 열두 명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바울이 사도인지에 대한 논란이 심합니다. 바울 서신을 읽어 보면 바울이 사도냐 아니냐를 두고 엄청난 논쟁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바울 자신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그 예수님께 사도로 부름받았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에 담긴 신학적 의미는 ‘복음은 반드시 사도적 증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말씀이나 사건이 진리와 복음인지 아닌지는, 그것이 사도적 증언인지 아닌지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사도적 증언만이 복음입니다. 이 사도적 증언 위에 교회가 세워지고, 사도는 교회의 토대 역할을 합니다. 에베소서 4장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고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를 세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세상을 떠난 후 사도는 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사도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며 역사적 인물입니다.
감람산 정상에는 예수님이 부활 후 승천하신 곳이라 전해지는 장소에 승천교회가 세워졌다. 로마에서 온 귀부인이 사도행전의 기록에 따라 주후 380년경에 세웠다. 아랍인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십자군이 재건하는 전쟁의 역사가 거듭된 현장이다.
교회 안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남긴 발자국으로 여겨지는 자리다. 부활하여 40일간 제자들과 함께하셨던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할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더는 낮은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돌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지셨다. 제자들과도 가끔만 함께하셨다. 결국, 예수께서 부활하신 지 40일째 되던 날, 그 영광에 합당한 자리로 돌아가셨다. 그 후, 약속대로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셨고 사도들은 예수의 삶과 사역에 대한 소식을 기쁨으로 온 세상에 전할 새 힘을 얻었다. 승천하실 때 천사가 나타나 제자들에게 말한다.
“갈릴리 사람들아 …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
감람산 정상에 있는 예수 승천교회.
윤석전 목사: 예수께서 승천하신 장소에 ‘승천교회’가 있습니다. 승천교회의 유래를 말씀해 주십시오.
홍순화 원장: 승천교회는 감람산 꼭대기에 있어 기드온 골짜기, 겟세마네 동산, 예루살렘 주변 성들까지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그 장소를 예수님이 승천하신 곳으로 여기는 까닭이 있습니다. 기독교가 박해받을 때,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곳으로 믿었던 부근 동굴에서 자주 모였습니다. 그러다가 383년 포이메니아라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작은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그 예배당은 614년에 페르시아 군들이 파괴했습니다. 재건했지만, 1009년에 또 파괴되었습니다. 그 후 1152년, 십자군들이 팔각형으로 교회를 지었고, 1198년에는 이슬람의 살라딘이 이슬람 사원으로 만들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기독교인이라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저 ‘하늘로 올라가셨다’라고만 알 뿐, 그에 담긴 복음적.신학적 의미는 잘 모릅니다. ‘승천’의 의미를 설명해 주십시오.
조경철 교수: ‘승천’에 담긴 신학적 의미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승천’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려는 사역을 드디어 완성했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해방해 인류구원 사역을 완성하시고, 본래 당신이 계셨던 곳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승천’은 예수께서 본래 있었던 곳으로 되돌아가 지금 하나님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셨지만 이 세상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그럼 어디에 계실까요? 바로 하나님 곁에 계시지요. 다시 말하자면, 죽으셨던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 계신다는, 주님에 대한 신앙고백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과 함께 계셔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사역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승천’에는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중요한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 많은 사람이 현장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을 바라본 목격자들은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까요?
조경철 교수: 예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한 가지 부탁과 두 가지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한 가지 부탁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수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선교의 부탁입니다(행1:8). 두 가지 약속 중 첫째는 “내가 성령으로,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희와 함께하겠다”는 것입니다(마28:20). 둘째는 “다시 오겠다”는 약속입니다(요14:3). 그렇기에 제자들은 늘 함께 계시는 예수와 대화하면서, 예수에게서 힘을 받으면서, “다시 오겠다” 하신 희망의 약속을 간직하면서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증언의 삶을 감당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승천을 바라보았던 제자들은 땅끝까지 예수를 증언하는 ‘선교 사명’을 불태웠습니다. 또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하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예수님의 약속에 관한 ‘소망’을 지녔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 세 가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당연히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를 증언하지 않으면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예수님을 증언할 때, 내 힘이 아닌 성령으로 나와 함께하신 예수님과 대화하고 예수님께 힘을 받아서 나아가 증언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증언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겠다고 하신 그 약속을 굳게 붙잡습니다.
윤석전 목사: 이스라엘의 지역적 특성상 어려움이 따르고 큰 비용이 드는데 굳이 성지를 순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홍순화 원장: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살던 고향, 친구, 학교를 비롯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합니다. 마찬가지로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이 태어나시고 복음을 전하신 곳에 가 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지금은 관광이나 여행 수준이라고 할 수 있지만, 초대교회의 신앙 선배들은 성지를 순례하다가 숱하게 죽임을 당하고, 엄청난 대가를 치렀습니다. 성지를 순례하는 둘째 이유는 성경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지리 속에서 실현된 역사입니다. 지리를 모르면 오해가 생깁니다. 성경을 이해하려면 역사와 지리를 잘 알아야 합니다. 셋째 이유는, 성지순례는 몸으로 성경을 읽는 현장입니다. 그곳에 직접 가 봐야 많은 것을 느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다음 시간부터는 사도 바울과 관련한 내용을 다루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1, 2, 3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어떻게든 예수의 복음을 알지 못해서 멸망하는 수많은 사람을 살리고자 몸부림치는 현장은 말이나 그림, 해설로는 부족합니다. 하지만 그 현장을 조금이라도 알고 느낄 수 있게 바울의 사역 현장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를 함께 경험하고자 합니다. 다음 호를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5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