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11-24 11:32:01 ]
제일 먼저 ‘디아스포라 유대인’에게 복음 전해
<사진설명> 예루살렘 성 전경.
사도 바울이 성장기에 교육받은 곳 예루살렘. 당시 예루살렘은 정치.문화.종교 중심지였고, 유대인에게는 하나님이 머무시는 성스러운 땅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농산물 대부분이 과일이며 중공업은 거의 없고 경공업이 축을 이룬다. 또 신도시(New City)와 구도시(Old City)로 나뉘는데, 구도시는 예루살렘 핵심 지역으로 성경 속 다양한 성지가 있어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다.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바울이 교육받고 활동하던 당시 예루살렘은 어떤 곳이었습니까?
홍순화 원장(한국성서지리원): 이스라엘 예루살렘은 바울 당시부터 지금까지 신앙의 중심지입니다. 바울 당시 유대인은 예루살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첫째 이유는 성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 성전(제1성전)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파괴된 후, 스룹바벨 성전(제2성전)을 거쳐 헤롯 성전(제3성전)이 주후 64년에 세워졌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향해서 기도하고, 성전에 가서 예배드렸습니다. 유대인에게 예루살렘이 중요한 둘째 이유는, 그곳이 이스라엘 민족의 구심점이고, 민족정신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고향인 다소에서 하나님 말씀을 공부할 수도 있었겠지만, 직접 예루살렘까지 가서 교육받음으로써 민족혼을 느끼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도 바울은 학문의 도시 다소에서 자랐고, 로마 시민권자로서 헬레니즘 문화를 익힌 지식의 첨단에 있었기에 누가 봐도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런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조광호 교수(서울 장신대 신약학): 사도행전 22장 3절을 보면 바울은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바리새인 교육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서 자신이 바리새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3:5~6).
바울의 스승은 가말리엘이었습니다. 가말리엘은 힐렐의 손자로서, 힐렐은 율법을 매우 관대하게 해석하던 율법학자였습니다. 바울 당시 예루살렘에는 정식으로 토라(Torah, 율법)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2세기에 설립됩니다. 따라서 바울은 토라 교육기관의 전신 우리나라로 치면 서당과 같은 학당에서 율법을 배웠으리라고 추측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율법 해석의 엄정성을 배웠습니다. 또 구전 율법까지도 포함하는 철저한 율법의 보수 정신을 배웠습니다. 바리새인은 관대하고 개방적인 태도를 지녔는데 바울도 이 점을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구약을 그리스도의 빛을 통해 해석하는 기본기를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원전 1000년경, 다윗은 예루살렘을 통일왕국의 수도로 삼았고, 솔로몬 시대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실 성전을 성전산에 지었다. 현재 그곳에는 이슬람 모스크인 황금돔이 있다. ‘평화’라는 뜻의 이름 살렘(Salem, 예루살렘)과 달리 이 땅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쟁의 역사를 지닌다. 길가 성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총탄 흔적은 여전히 전쟁 중인 예루살렘의 오늘을 여실히 보여 준다.
윤석전 목사: 예루살렘은 현재 어떤 도시인지요?
홍순화 원장: 현재 예루살렘의 모습에서 사도 바울 당시 예루살렘을 상상하기는 어렵습니다. 예루살렘은 50번 넘게 침략받았고, 36번 점령당했으며, 10번 정도 완전히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구도 현재 80만 명 정도로 그 당시보다 200배가량 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현재 정치.행정 중심지입니다. 예루살렘에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있습니다. 구시가지인 예루살렘 성은 슐레이만 대제가 16세기에 건립했는데 바울 당시 모습과 다르지만 어느 정도 옛 모습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 서편에 있는 신시가지에는 호텔, 국회의사당, 박물관이 모여 있어 바울 당시 예루살렘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윤석전 목사: 성지순례의 중요 코스인 구시가지를 잘 관람할 수 있게 소개해 주세요.
홍순화 원장: 구시가지, 즉 올드시티는 엄격히 말하면 유대.아랍.기독교.아르메니아인이 사는 거주 구역 네 개와 성전산 지역까지 모두 다섯 구역으로 나뉩니다. 유대인 지역은 성전산 지역 통곡의 벽 부근에 있습니다. ‘카르도’라는 헤롯 당시의 상가 지역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회당도 여럿 있습니다. 아랍인 지역에는 베데스다 연못, 안네교회, 스데반 문이 있습니다. 기독교인 지역에는 예수님의 무덤인 성묘교회가 있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 교회와 수도원이 있습니다. 아르메니아인 지역에는 야고보교회와 세계 최초의 교회라고 주장하는 마가교회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올드시티는 모든 지역을 찬찬히 살펴봐야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예수님은 유대인으로 태어나셨고 바울도 유대인입니다. 요즘 유대인의 모습은 어떤지 살펴보겠습니다.
<사진설명> 성전산에 있는 황금돔.
유대인은 헤브라이인과 가나안인의 혼혈민족이다. 그 어원은 유다왕국 백성을 가리키는 호칭에서 유래했다. 이스라엘을 비롯해 세계 각처에 약 1400만 명이 흩어져 살고 있으며, 그중 900만 명은 타국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다.
유대인 중에는 학자.예술가가 상대적으로 많지만, 대부분은 노동자와 중산계층이고 전 세계를 유랑해야 했던 역사 탓에 민족적 특성이 많이 사라졌다. 그래도 아직 상당수 유대인이 유대교를 믿고, 유대교 율법에 따른 여러 행위를 고수한다.
1948년 독립 후 유대인의 중심 과제는 국방력이었다. 지금도 폭탄테러가 수시로 일어나는 예루살렘. 그런 이유로 남자는 성인이 되면 55세까지 예비군 복무를 해야 하므로 예루살렘 거리에서 총을 소지한 시민을 흔히 볼 수 있다.
신앙의 중심지, 성스러운 땅 예루살렘. 그 구도시 중심가에도 21세기를 누리는 젊은이들의 문화는 화려하기만 하다. 이들 젊은 유대인에게는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전통적인 자부심은 이미 박제된 과거사일 뿐, 자본주의의 풍족함을 추구하는 열망이 현실 속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윤석전 목사: 옛날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인과 혼인하지 않고 단일 민족으로서 혈통을 잘 지켰습니다. 지금은 유대인 내에도 인종이 다양하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홍순화 원장: 유대인은 역사적으로 굴곡을 겪으면서 인종적으로 대부분 혼혈이 되었습니다. 동양계, 아프리카계, 유럽계가 섞여 있습니다.
유대인은 모계 혈통을 중요시합니다. 즉, 어머니나 할머니가 유대인이면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100% 유대인입니다. 복잡한 계통 탓에 이스라엘에서는 전문적으로 유대인 민족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유대인 수는 약 1300만 명이라고 합니다.
윤석전 목사: ‘디아스포라’ 유대인은 어떤 이유로 형성됐는지 알려 주세요.
조광호 교수: ‘디아스포라(Diaspora)’는 그리스어에서 온 말로 ‘분산(分散)’을 뜻합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 본토에서 살지 않고 외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을 말합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외국에 나가 사는 까닭은 장사나 무역 같은 경제적 이유가 큽니다.
또 정치적인 이유로 본토를 떠나 외국에서 살았습니다. 앗수르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이 본국에 돌아오지 못한 채 그곳에서 정착한 경우입니다.
또 알렉산더 대왕 사후에 팔레스타인을 지배한 프톨레미 왕조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주시켜 타국에서 살게 했습니다. 이런 연유로 많은 유대인이 외국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주전 3~2세기에 프톨레미 왕조와 셀루커스 왕조의 전쟁이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났는데 그때도 많은 유대인이 전란을 피해 이집트나 다른 나라로 이주해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형성했습니다. 로마의 지리학자 스트라보는 “로마 제국 전역에 유대인이 살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할 정도로 많은 유대인이 외국에 나가 살고 있었습니다.
<사진설명> 총을 차고 다니는 이스라엘 청년들.
윤석전 목사: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어떻게 대했는지 궁금합니다.
조광호 교수: 바울 당시 유대인 인구는 500~600만 명으로 추정합니다. 그중 2/3, 많게는 3/4가량이 외국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였다고 합니다. 유대인은 대략 이집트에 100만 명, 시리아에 120만 명, 그리스 본토와 섬, 소아시아, 이탈리아를 비롯한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타국에서 회당을 지어 그곳을 중심으로 모여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회당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하나로 묶어 주는 신앙적.사회적 구심점 역할을 했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어 보면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기회 닿는 대로 회당을 방문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즉 회당에 드나드는 유대인을 상대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외국에 사는 유대인은 본토에 사는 유대인과 달리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킬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율법에서 자유로운 복음’이라는 바울의 복음 정신을 다른 유대인보다 잘 이해했습니다. 바울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1차 선교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바울의 복음을 받아들인 후에는 그들도 함께 투신해 복음 전도자 역할을 합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실라와 디모데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1차로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전도함으로써 자신의 선교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또 이들을 선교의 동역자로 삼아 세계 선교를 더욱 가속화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이스라엘에는 유대인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다는데 소개해 주세요.
홍순화 원장: 예루살렘 올드시티 옆에는 메아쉐아림(Mea Shearim)이라는 특별한 동네가 있습니다. 1875년에 하시딤이라는 신앙운동이 생기면서 소련, 유럽 쪽에서 온 유대인이 만든 종교인 마을입니다. 이 지역 유대인은 철저하게 율법대로 살려고 합니다. 안식일에는 외부인이 출입하지 못하게 바리게이트를 칩니다. 또 그곳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여름철에도 중절모를 쓰고 검정 옷을 입습니다. 여성들은 짧은 옷을 절대 입지 않습니다. ‘직업이 신앙생활’이라고 할 정도로 일 년 내내 율법 학교와 회당을 중심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합니다.
윤석전 목사: 하나님께서는 바울처럼 준비된 자를 쓰십니다. 우리도 무언가 부지런히 배우고 알고 준비해 하나님께서 필요로 할 때 언제든 사용하실 수 있는 ‘준비된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이 시대 속에서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는 일꾼이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6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