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21)] 사도 바울이 회심한 장소, 다메섹

등록날짜 [ 2015-11-30 11:22:08 ]


<사진설명> 예루살렘 다메섹문 주변 거리.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이번 호부터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의 발자취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바울이 회심한 장소, 다메섹 도상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예루살렘의 다메섹문 주변 거리는 토착민이 가장 많이 출입하는 번화한 시장이다. 이곳은 세겜을 거쳐 다메섹으로 가는 약 200km가 넘는 길이 시작되는 길목으로, 토착 아랍인과 유대인, 관광객이 어울려 늘 북적거린다. 바울 당시 수많은 상인과 군인이 이 거리에서 출발해 일주일을 족히 걸어 다메섹에 도착했다. 당시 다메섹은 상업과 군사의 중심지였다.

2000년 전 어느 날, 바울이 되기 전인 청년 사울은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성전 호위병들과 함께 다메섹 도상(途上)에 올랐다. 대제사장은 사울에게 다메섹에 가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유대 남녀를 닥치는 대로 잡아서 예루살렘으로 압송해 오라며 권한을 위임했다. 당시 사울은 피에 굶주린 사자처럼 사나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울은 신성모독죄로 죽임당한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스데반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을 처단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바른 길이며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당시 사울은 몰랐다. 율법의 첨병장이 되어 가는 줄 알았던 그 길에서 하나님께서 계획해 놓으신 엄청난 인류 구원의 사건과 마주치리라는 것을.

다메섹문에서 뻗어 나간 길 위에는 복음으로 세계를 정복할 한 영웅 탄생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멀지 않은 다메섹 길가에서 눈부신 광채가 사울을 덮쳤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행26:14). 그리스도의 음성에 사로잡힌 사울의 삶은 일시에 뒤바뀌고 만다. 세계 복음화의 영웅으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윤석전 목사: 당시 다메섹은 어떤 곳이었나요?

홍순화 원장(한국성서지리원): 당시 중동 지방에는 ‘해변길’과 ‘왕의 대로’라는 중요한 도로가 있었습니다. 이 두 대로(大路)는 다메섹을 통과해서 중동 다른 지방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그만큼 다메섹은 지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고 상업.경제.교통의 요지였습니다. 사실 요지라 해도 물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다메섹에는 레바논과 안티레바논이라는 산맥이 있습니다. 두 산맥의 평균 고도는 대략 1800m이고, 안티레바논 산맥 최남단에는 해발 2769m인 헬몬 산이 있습니다. 높은 헬몬 산에서 눈 녹은 물이 흘러 강을 이루었고, 사막에 녹지대를 만들었습니다. 주민 대부분이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한편,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늘 아람 왕국과 다퉜습니다. 다메섹은 옛 아람 왕국의 수도입니다. 또 신약성서에는,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식민지로 만든 10개 도시 연맹 ‘데가볼리(Decapolis)’가 나옵니다(마4:25;막5:20;막7:31). 이론(異論)은 있지만 데가볼리 중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가 다메섹이라고 추정합니다.


윤석전 목사: 당시 다메섹을 ‘수리아’라고도 했습니다. 실제로 수리아는 어떤 곳인가요?

홍순화 원장: 구약성경에서는 다메섹을 아람 왕국으로, 신약에서는 나라가 아니었기에 수리아 지역으로 불렀습니다. 현재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시리아 지역을 그 당시 수리아로 봅니다. 수리아가 중요한 이유는 아람 왕국의 수도였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 당시 수리아는 로마가 지배했습니다. 아라비아권과 부딪히는 군사 요충지여서 로마는 총독을 파견해 그 지역을 관장하게 하고, 많은 군대를 주둔해 보호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다메섹은 인류 구원의 역사 속에 예수님이 바울을 직접 불러 회심하게 한 장소입니다. 바울에게 다메섹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조광호 교수(서울 장신대 신약학): 바울은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을 잡으려고 유대인의 최고 의결 기관인 산헤드린(Sanhedrin)에 가서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바울은 기독교인을 예루살렘으로 압송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다메섹에 거의 다 왔을 때, 그곳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바울의 생애는 완전히 뒤바뀝니다. 지금까지 복음을 핍박하던 박해자 사울이 이제는 복음을 선포하고 증거하는 증거자 바울이 됩니다.

윤석전 목사: 요즘은 다메섹이 어떤 도시로 변해 있나요?

홍순화 원장: 지금 다메섹은 시리아의 수도로 ‘다마스쿠스’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바울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도시로 발전했습니다. 중동의 파라다이스라고 말할 정도로 번화한 도시입니다.

윤석전 목사: 아주 많이 변했군요. 인구도 많이 증가했겠네요. 시리아에는 성경과 관련한 성지가 많이 있다고 합니다.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홍순화 원장: 먼저, 다드몰(Tadmor)입니다. 당시 시리아까지 모두 솔로몬의 영토였는데, 다드몰은 솔로몬이 광야에 세운 성읍으로(대하8:4) 고대의 중요한 통상 도시였습니다. 지금은 다드몰을 팔미라(Palmyra)라고 부릅니다. 다드몰, 즉 팔미라는 고대의 가장 중요한 문화 중심지 중 하나로 ‘사막의 여왕’이라고 불리며, 대도시였던 기념비적인 유적이 남아 있어 많은 사람이 찾습니다.

또 데라에 있는 에드레이(Edrei)라는 곳입니다. 바산의 수도였고, 옥(Og)이 통치한 곳(신1:4;수12:4)으로,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옥의 군대와 싸워 물리치고 에드레이를 포함한 여러 성읍을 차지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민21:33;신3:1,10). 이곳에는 요한교회가 있습니다.

그 밖에도 성경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두 곳이 있습니다. 첫째, 우가릿(Ugarit)입니다. 기원 전 2000년대에 가나안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1928년에 발굴되었습니다. 이곳에는 가나안 문화 자료가 풍부합니다. 둘째, 에볼라(Ebola)입니다. 이곳은 1975년에 고대 서판 수천 개가 발견된 장소입니다. 성경에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두 곳은 구약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장소입니다.


<사진설명> 시리아 다메섹에 위치한 직가.

예루살렘에서 출발할 당시, 청년 사울은 기독교인을 잡아들이는 데 혈안이 된 분노의 화신이었다. 그 목적을 이루려고 다메섹에 왔던 사울이 그리스도인으로 변화하는 역설적 사건이 일어났다. 훗날 바울은 이 회심 사건을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딤전1:16).

사울이 바울로 변한 것. 이것은 값없이 받은 은혜였으며 오로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이적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 역사였다. 바울의 진정한 회심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진행되었고, 그 회심은 바울 개인의 것이 아니라 세계 모든 이웃을 위한 거룩한 행위로 확대되었다. 직가(straight street)에서 하나님은 바울을 위해 아나니아를 준비해 놓으셨다. 아나니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그리스도인의 적(敵)이던 사울에게 침례를 주고 세계 복음화의 소명을 전한다. 사울은 이제 바울이 되었다.


윤석전 목사: 사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눈이 먼 상태로 사람들에게 인도되어 직가로 갔습니다. 직가는 어떤 곳인가요?

홍순화 원장: ‘직가(Straight street)’는 ‘직선대로’라는 뜻입니다. 2천 년 전 지명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직가는 옛날 다메섹 동쪽에서 서쪽까지 곧게 나 있던 거리입니다. 다메섹은 성벽 안에 옛날 도로가 있습니다. 로마 시대 성벽으로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직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아나니아의 집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가정집 규모로 지금은 교회로 사용합니다.

윤석전 목사: 아나니아는 바울이 기독교인이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아나니아를 통해 사도 바울은 어떤 체험을 하게 됩니까?

조광호 교수: 사도행전 9장을 보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찬란한 광채를 접한 바울은 그 자리에 엎어지고 눈이 멀게 됩니다. 바울은 동행하던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직가에 있는 유다 집에 머물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11절). 그러자 아나니아가 항의합니다.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나이다”(13절). 그랬더니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15절).

이 말씀을 듣고 나서야 아나니아는 바울을 찾아가서 안수하고 침례를 줍니다. 아마 이런 과정에서 아나니아는 주님이 바울에게 왜 나타났는지, 주님이 바울을 어디에 쓰시려고 하는지를 설명했으리라고 봅니다. 즉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세계 선교 사명을 아나니아를 통해서 알았고,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으리라 추측합니다.

윤석전 목사: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어부, 세리, 석수쟁이, 의사를 비롯해 다양한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경우는 특별합니다. 사도 바울을 부르신 의미를 말씀해 주십시오.


조광호 교수: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사역 초기에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늘 그들을 데리고 다니시면서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말씀, 비유, 이적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가르치시고 심지어는 파송을 보내 실습까지 시켰습니다. 물론 제자들은 어리석게도 예수님의 비유를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바다 위를 걷다가 두려움에 휩싸여 물에 빠졌던 베드로처럼 연약한 신앙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도 자기의 스승은 지금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려고 가는데 제자들은 누가 더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될까 티격태격 싸우면서 아주 부끄럽고 어리석은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3년 동안 서서히 교육하시고 부활하신 이후에는 확실한 소명 의식을 전달하셨습니다. 이처럼 열두 제자가 점진적으로 교육과 훈련을 받고 소명 의식을 갖춘 데 비해,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다메섹 도상에서 극적으로 바울에게 나타나셨고, 아나니아를 통해 소명 의식을 깨닫게 했습니다. 마치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애굽 사람들에게서 탈출하게 할 지도자의 임무를 깨달은 것처럼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자신의 임무와 소명을 깨달았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도 바울이 급진적으로 부르심을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조광호 교수: 하나님께서 극적으로 일꾼을 부르신 대표적인 예로 구약 예언자를 들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을 뵙고 자신이 예언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소명 의식을 체험합니다. 또 아모스도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한갓 농부에 불과했는데,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어 정의의 예언을 외치는 예언자로서 삶을 삽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5절에서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셨다”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고백은 예언자들이 자기의 소명 의식과 관련해 늘 하는 대표적인 표현 방식입니다. 이런 점을 볼 때 하나님께서 바울을 극적으로 불러서 사용하신 까닭은 예언자를 통해 당신의 말씀을 선포했듯이 바울도 종말론적인 세계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울은 자신을 부르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바울’이 되어 이방인의 사도로 수많은 사람을 구원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을 통해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변화한 나로 말미암아 가정.교회.사회.나라가 변할 것입니다.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진실한 변화는 바울과 같은 참된 변화가 있을 때 나타납니다. 바울을 통해서 인류의 복음 전도에 큰 획을 그었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그런 역사를 이루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변하기를 원하십니까? 사울처럼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바울이 되어서 세계 열방에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뜻을 아름답게 수중 드는 복된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6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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