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01-05 10:23:52 ]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바울은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한 후, 유럽으로 전진하면서 세계를 향해 예수를 증거했습니다. 바울 일행이 유럽에 맨 처음 도착했던 ‘드로아(Troas)’ 지역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진설명> 당시 그리스 지역 성읍.
1차 전도여행 후에 바나바와 결별한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와 더불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지나 소아시아 북부 흑해 연안 ‘비두니아’로 가려 했다. 하지만 성령께서 가로막아 당시 에게해 해안의 항구 도시 ‘드로아’로 향한다.
당시 트로이 항구가 퇴적 작용으로 항구 기능을 상실하자 대체하려고 건설된 소아시아 북서쪽에 있는 중요한 항구인 드로아는 트로이의 남쪽에 있었다.
소아시아에서 육로로 로마에 가려면 마게도냐를 지나 ‘네압볼리’로 가야 했다. 드로아는 이 경로의 교차점이었다. 따라서 셀리오커스 왕들이 주로 머물렀으며 자유 도시로 발전했다. 이곳에서 선교지 방향을 정하지 못해 고민하던 바울은 어느 날 환상을 본다. 마게도냐인이 나타나 “마게도냐로 와서 우리를 도와 달라”고 간청하는 모습이었다. 이 환상을 본 후 바울은 선교지를 마게도냐로 정했다. 유럽 선교를 향한 첫 신호탄을 쏜 것이다.
윤석전 목사: 바울이 드로아에 도착하기까지 어떤 여정을 거쳤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홍순화 원장(한국성서지리원): 1차 전도여행과 구분해 설명하겠습니다. 바울 일행의 1차 전도여행 범위는 그리 넓지 않았습니다. 수리아 안디옥→구브로→비시디아 안디옥→더베→수리아 안디옥으로 왔습니다. 그 반면 2차 전도여행지는 1차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돌아온 후 마가 요한을 2차 전도여행에 동행하는 문제로 바나바와 다투고 헤어집니다. 마가 요한은 바나바의 조카인데 1차 여행 도중 아무 말 없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바울은 그런 마가를 데려갈 수 없다며 실라와 2차 전도여행을 떠납니다. 바나바는 마가와 함께 구브로로 갔습니다. 사도 바울의 2차 여행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수리아 안디옥→수리아→길리기아→루가오니아의 더베와 루스드라→이고니온→브루기아→갈라디아→무시아→드로아→사모드라게→네압볼리→마게도냐의 빌립보→암비볼리→아볼로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나 할례를 받게 한 후 함께 전도여행을 떠납니다(행16:1~3). 그 후 바울은 무시아 지방을 지나 드로아에서 비두니아(흑해)로 가기를 원했지만, 성령께서 허락지 아니하시고 바울에게 환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이후 바울은 방향을 바꿔 마게도냐(유럽)로 갑니다(행16:6~10).
윤석전 목사: 사도 바울의 전도의 발자국을 보는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을 떠나기 전에 예루살렘에서는 사도들이 모여 중요한 회의를 했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조광호 교수(서울장신대 신약학): 바울은 안디옥에서 ‘율법에서 자유로운 복음’이라는 자신의 복음의 견해를 관철하면서 목회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이 말하기를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라고 주장합니다(행15:1). 그러자 안디옥교회에서 논쟁이 벌어집니다. 바울이 고수해 온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견해와 모순됐기에 교인들이 혼란에 빠진 것입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바나바와 디도를 동행해 예루살렘교회로 갑니다. 이것이 바로 ‘예루살렘 사도회의’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자신의 복음도 예루살렘교회의 복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은혜와 성령의 역사가 함께한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그들을 설득하여 이해시킵니다. 그 결과,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 베드로는 유대인에게, 바울 자신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자며 선교지 분할과 선교 대상에 대해 합의하였습니다.
윤석전 목사: 당시 ‘드로아’는 어떤 도시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홍순화 원장: 소아시아 지방(지금의 터키) 북서쪽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가 바로 드로아였습니다. 네압볼리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습니다. 실제로 로마 콘스탄틴 황제가 소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드로아를 제국의 수도로 삼으려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웠을 정도로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물을 포함해 대도시를 조성할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이었으니까요. 지금도 당시 유적의 흔적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드로아에서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보고 선교지를 결정했습니다. 그 환상에는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조광호 교수: 바울의 생애를 보면, 하나님께서 환상과 계시로 자신의 뜻을 직접 알리시는 예를 종종 보게 됩니다. 2차 전도여행 때,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러 가려 했지만 성령께서 그것을 막으셔서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으로 갔습니다(6절). 또 무시아에 도착했을 때 사실 비두니아, 즉 터키 흑해 연안으로 가려고 했지만 예수의 영이 막으셔서 드로아로 향합니다. 바울은 드로아에 왔을 때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봅니다. 바울은 그 환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해 결국 소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전도의 발걸음을 돌립니다(7~10절).
윤석전 목사: 바울은 그 환상을 본 후 바로 유럽으로 향했습니다. 그 일로 교회사와 세계 선교사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조광호 교수: 바울은 유럽으로 건너가서 그 지역에 복음의 씨를 뿌리고 많은 교회를 세웁니다. 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교회, 아덴교회, 고린도교회, 더 나아가 로마교회까지 세웠습니다. 이처럼 유럽 교회 역사를 생각할 때는 바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교회를 살펴보면, 예루살렘을 기반으로 한 ‘유대 중심 교회’와 바울이 전도했던 ‘이방인 중심 교회’로 양분할 수 있습니다.
주후 70년 로마 디도 장군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후, 유대적 색깔을 띤 예루살렘교회는 급격히 쇠퇴합니다. 그 후 자연스럽게 바울이 복음을 전한 이방인 중심 교회를 주축으로 교회사를 주도합니다. 그 후, 콘스탄틴 황제가 313년 기독교를 공인함으로써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가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로마인이 예수님을 처형한 지 250년 후에 예수님께서 전한 그 복음이 로마의 국교가 된 것입니다.
<사진설명>사모드라게 섬.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 외에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제2차 전도여행에 합류했다. 이들은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마게도냐 지역으로 향했다. 앞날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 그 광활한 사역지로 나가는 바울 일행에게는 무엇보다 강한 믿음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 계획의 연결점 위에 자신들이 서 있다는 확신이었다.
‘트로키아인의 높은 봉우리’라는 뜻의 ‘사모드라게(Samothrace)’는 드로아와 네압볼리 사이에 있는 섬이다. 역사상 터키와 그리스가 각축전을 벌였던 곳으로, 현재는 네압볼리와 더불어 그리스령에 속한다. 또 당시 그리스의 종교 중심지로 여러 신의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사모드라게 섬은 마게도냐 지역 네압볼리를 오가는 항해로에 있었기에 소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넘어갈 때 바울이 밤을 보냈다.
이처럼 바울이 유럽 선교 여행을 할 때 징검다리 역할을 한 곳이 바로 사모드라게 섬이다. 바울 일행이 향하는 유럽의 관문 마게도냐에는 정치, 경제, 문화, 학문이 발달했다. 마게도냐를 지나 언젠가 로마까지 복음을 전하고 싶은 열망에 찼던 바울은 마게도냐 지역으로 향하는 이 바닷길에서 영혼 구원의 강한 소망을 품었을 것이다. 또 그곳은 바울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강하게 함께한 길이었다.
드디어 바울 일행은 유럽 대륙의 첫 기착지 네압볼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에게해 북쪽 도시 네압볼리(Neapolis)는 당시 빌립보 지역 항구 역할을 담당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환상을 본 후, 사모드라게 섬을 지나 이곳 네압볼리 항구에 도착했다. 이곳 네압볼리를 거쳐 마게도냐 지방의 첫째가는 도시, 빌립보로 향했다.
윤석전 목사: 바울 일행이 사모드라게라는 섬을 경유했는데요. 그 섬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홍순화 원장: 사모드라게 섬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유명한 작가 호메로스가 ‘일리아드’에서 ‘포세이돈의 섬’으로 명명할 정도로 고대부터 널리 알려진 섬이었습니다. 사모드라게에는 ‘위대한 신들의 신전’이라는 특별한 장소가 있을 정도로 그 당시 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있어서 당시 사도 바울이 유럽으로 갈 때 징검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또 흑해로 들어갈 때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높은 봉우리’라는 이름답게 사모드라게는 섬 가운데 해발 1600m 봉우리가 있는데 이것이 에게해의 등대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드로아에서 40km, 알렉산드리아의 폴리스에서는 31km 떨어져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모드라게를 징검다리 삼아서 네압볼리로 건너갔습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의 동역자들은 어떤 일을 했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조광호 교수: 2차 전도여행 때 바울은 마가 요한 문제로 바나바와 헤어지고, 대신 실라와 함께 전도여행을 떠납니다. 성경을 보면 실라는 예루살렘 사도회의 때 등장해 바울 팀에 합류했던 듯합니다. 실라는 여행 내내 충실한 동역자로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의 대표적인 동역자로는 디모데도 있습니다. 루스드라 지역에서 만난 제자인데 데살로니가에 파송되고, 고린도에서 함께 사역했다고 성경에 나옵니다(행16:1~3;살전3:1~7).
또 바울의 중요한 동역자로 디도를 들 수 있습니다. 디도는 예루살렘 사도회의 때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데리고 갔습니다. 디도는 헬라인인데 일부러 할례를 받게 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갈2:1~3). 디도는 특별히 바울의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헌금과 모금 활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또 그는 바울의 요청으로 그레데 섬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말했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3:6).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바울은 기본적으로 ‘함께하는 사역’을 추구했습니다. 홀로 복음을 전하지 않고 항상 동역자와 함께 복음을 전하는, 요즘으로 말하면 ‘팀 사역’을 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네압볼리는 당시에 어떤 곳이었습니까?
홍순화 교수: 사도 바울이 처음으로 도착한 네압볼리는 현재 ‘카발라’라고 부르는 인구 6만 정도 사는 작은 항구도시입니다. 큰 도시 빌립보에서 13km, 데살로니가에서 163km 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 시대에도 항구의 기능만 하던 곳이었습니다. 로마의 고속도로 ‘에그나티아’가 그 지역을 관통해 빌립보까지 연결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 일행은 네압볼리에 도착해서 다음 도착지인 마게도냐로 향했습니다. 마게도냐는 어떤 지역입니까?
조광호 교수: 마게도냐는 그리스 북쪽에 있는 변방 지역으로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매우 더운 지역입니다. 그리스는 보통 도시 국가 형태로 다스려졌고, ‘민회(民會)’라는 민주주의 형태로 통치되었습니다. 그런데 마게도냐는 도시국가가 아닌 왕정국가였는데, 이 때문에 그리스인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바울의 유럽 첫 기착지는 화려한 중심지가 아닌 변두리의 척박한 지역이었습니다. 바울은 적의 심장부를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돌진해 가는 군사처럼 비장한 마음으로 변방에서부터 그리스 본토 중심지를 향해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렇게 마게도냐는 유럽을 복음화하는 교두보 역할을 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이 전도여행을 한 성서의 땅을 둘러보며 여러분은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바울을 공부할 것이 아니라 바울과 같은 열정을 품고 복음을 전해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구원의 소식을 만민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성서의 땅을 가다’를 통해 많은 감동이 있을 줄 믿습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6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