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27)] 유럽 교회의 모태 빌립보교회

등록날짜 [ 2016-01-12 23:27:48 ]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이번 호부터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을 상세히 다루겠습니다. 빌립보를 시작으로 데살로니가, 아덴, 겐그레아 쪽으로 이동하면서 바울의 전도 사역 의미를 찾아보겠습니다. ‘빌립보’ 하면 바울이 전도한 여제자 루디아가 떠오릅니다. 바울이 루디아를 만났던 빌립보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당시 빌립보 지역 위치.

바울 일행은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를 거쳐 네압볼리로 갔고, 당시 로마의 고속도로였던 에그나티아 도로(Via Egnatia)를 따라 50리쯤 걸어 빌립보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바울은 유럽의 소중한 첫 열매를 얻는다. 빌립보(Philippi)에 짐을 푼 바울 일행은 안식일이 되자 유대인의 기도 처소인 지가크티스(Gangites) 강가로 갔다. 그곳에서 기도하는 여성들을 만났다. 그 여인들 중에 자색 옷감 장수 루디아가 있었다. 빌립보는 로마 본토 밖에서 첫째가는 도시며, 로마 군사 기지가 있었다. 하지만 강가 기도처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 도시에서 가장 보잘것없던 여인들이었다.

물설고 낯선 유럽 땅, 아시아에서 온 바울 선교팀에게 번화한 도시 빌립보는 냉정한 곳이었다. 유대인은 적고 이방인이 많은 이 땅에서 바울 일행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바울은 두렵고 답답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만난 루디아는 풍랑 속에서 만난 등대처럼 바울 일행에게 큰 희망이 되었다.
루디아는 두아디라 출신 여인으로 중국산 비단을 자주색으로 염색하여 유럽에 파는 사업가였다. 총명한 그녀는 바울에게 복음을 듣고 새 삶을 결단했고, 그녀의 식구들도 바울에게 나와 침례를 받았다. 지금도 루디아의 침례 터가 남아있다. 루디아는 바울에게 간청했다.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행16:15). 유럽의 변덕스럽고 궂은 날씨를 피할 안온한 은신처를 제공받은 것이다. 그곳은 빌립보 선교에서 든든한 거점 역할을 해 주었다. 바울은 그 은신처를 기반으로 비록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기도처에 모이는 신도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것은 빌립보교회의 모태가 되었다. 실로 하나님께서 바울 일행에게 거두게 허락하신 풍성한 열매였다.


윤석전 목사: 바울 당시 빌립보는 어떤 도시였는지 소개해 주십시오.

홍순화 원장(한국성서지리원): 지금의 그리스는 바울 당시에는 북쪽 지방 마게도냐, 남쪽 지방 아가야로 구성되었습니다. 빌립보는 마게도냐 지역의 수도였습니다. 네압볼리에서 10km, 에게 해에서 16km 떨어진 내륙지방입니다. 빌립보가 중요한 이유는 첫째, 에그나티아 도로가 빌립보 중앙을 관통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빌립보는 유명한 금광 도시로 부유했다는 점입니다.

옛날 도시들은 방어 목적으로 산을 등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빌립보 지역은 해발 311m 정도 되는 레카니스(Lekanis) 산을 배후로 건설됐습니다. 빌립보는 원래 ‘크레니데스(샘들)’라고 불렀는데 말 그대로 물이 풍부한 곳입니다. 주전 4세기경 알렉산더 대왕 아버지인 빌립 왕이 이곳에 도시를 형성하고 자기의 이름을 따서 ‘빌립보’라고 불렀습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서 안식일이 되자 강가로 향했습니다. 강가는 어떤 곳인가요?

홍순화 원장: 성서 지리를 공부하다 보면 성경 말씀이 얼마나 정확한지 알게 돼 더욱 믿음이 생깁니다. 빌립보 성에서 서북쪽으로 가면, 성경에 ‘문밖 강가’(행16:13)라고 언급된 ‘지가크티스 강’이 나옵니다. 지금은 개울 정도 규모인 작은 강입니다. 그 당시에는 모습이 달랐겠지요. 또 외곽 지역이라서 묘지로 사용했던 비석이 여러 개 있습니다. 루디아와 관련한 유적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가크티스 강가에 가면 루디아가 침례를 받았다는 기념 터가 있습니다. 지금도 그곳에서 침례를 받고, ‘주의 만찬식’을 할 수 있게 준비돼 있습니다. 침례 터에서 20m 떨어진 곳에는 루디아기념교회가 있습니다. 1973년에 그 지역 주민이 헌금해 지었다고 합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이 안식일에 강가로 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심상법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학): 통상적으로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빌립보 지역에서는 회당에 관해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곳에 회당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회당이 없는 지역에서는 유대인, 이방 개종자, 하나님을 공경하는 무리가 옥외에서 집회를 했습니다. 강가는 가장 적절한 집회 장소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이 ‘기도처’를 찾았다고 했는데 팔레스타인에서는 ‘회당’으로 언급된 곳입니다. 강가는 구약 유대교에서 정결의식을 할 때 이용했습니다. 손이나 몸을 씻는 데 매우 적합한 장소였으니까요.

윤석전 목사: 그곳에서 바울 일행이 루디아를 만났는데요, 루디아는 어떤 여인이었나요?

심상법 교수: 사도행전 16장 14절에 ‘두아디라 성 자주 장사’라고 나와 있는  루디아는 이방인이면서도 하나님을 공경하던 무리 중 한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8~19절을 보면 ‘두아디라 성’이 나오는데 그 성의 주요 업(業)이 염색과 섬유입니다. 당시 자주 염색은 수익성이 높은 장사였는데 루디아를 지금으로 말하자면 마게도냐 대리점 경영주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빌립보교회 옛 터.

빌립보는 기원전 358년에서 354년 사이에 알렉산더 대왕의 부친 빌립 2세가 건립한 도시로 로마 시민권이 주어지는 로마 본토 밖의 첫 도시였다. 빌립 2세가 건립한 극장의 유적 규모를 보면 당시 이 도시가 얼마나 화려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곳에서 빌립보 시민은 시 낭송과 연극 공연을 즐기며 자신들의 부와 여유를 즐겼으리라.

로마 군사기지가 있었던 빌립보는 퇴역한 로마 군인이 많이 사는 곳으로 인구 절반이 로마인이었다. 경제적으로 윤택한 반면 우상숭배가 심했다. 바로 이 쾌락의 도시에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와 누가가 유럽의 첫 교회를 세웠다.

바울 당시 번성했던 도시 빌립보의 유적은 그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사도 바울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바울의 숨결을 느낄 수 있고, 그의 고난과 승리가 스며 있는 이 땅을 밟으면 특별한 감회가 밀려온다.

2000년 전, 빌립보에서 이 길을 지나 기도처로 가던 바울 일행 앞에 예상치 못한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신 들린 여종을 만난 것이다. 점을 쳐서 주인에게 돈을 벌어 주던 한 비참한 계집종이 “바울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외치며 따라다녔고, 이에 바울은 그녀 안에서 역사하는 귀신을 내쫓는다. 그러자 바울의 축귀로 돈벌이를 못하게 된 여종의 주인은 바울 일행을 자신들의 세계 질서를 해치는 파괴분자로 고소했다. 또 빌립보 치안관들은 바울과 실라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를 많이 친 후에 그들을 깊은 감옥에 가두었다. 하지만 깊은 감옥도 두 사람의 영혼 구원의 열정을 막지 못했다. 감옥에서 이들이 올린 기도와 찬송이 큰 지진을 일으켜 옥문을 열었고, 그곳에서 간수와 그 가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하는 결실을 얻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이 빌립보로 갈 때 사모드라게에서 네압볼리까지는 해로를 이용했는데, 네압볼리에서 빌립보로 이동할 때는 어떤 행로를 거쳤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홍순화 원장: 사도 바울은 당시 상당히 발달한 고속도로인 ‘에그나티아’를 이용했습니다. 에그나티아 가도(街道)는 기원전 146년에 건설된 도로로 콘스탄티노플에서 로마까지 연결됩니다. 로마는 도로를 설치할 때, 우회도로를 건설하지 않고 마을 중앙을 관통하게 했습니다. 주민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면서 로마의 힘도 과시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을 하며 지나간 빌립보나 다른 도시들은 에그나티아 도로를 관통하거나 바로 근처에 있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빌립보에서 바울 일행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바울이 옥살이를 하게 된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심상법 교수: 바울이 빌립보에서 옥에 갇힌 근본적인 이유는 귀신 들린 여자 종을 치료했다는 것입니다. 여종의 주인은 그동안 그 점치는 여종을 내세워 이익을 많이 얻었습니다. 그런데 여종에게서 귀신이 떠나자 점치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미풍양식을 해치고 사이비 종교를 전파해 주민들을 소동하게 한다는 이유로 붙잡힙니다. 그 여종의 주인은 장사꾼이라 그런지 머리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주인은 그 당시 만연해 있던 인종적 편견을 잘 이용해, 반유대적 정서와 인종적 자만이 어우러지게 만들어 바울을 투옥시킵니다. 인권과 사실적 관계보다는 경제적 이익, 인종적 편견, 선동적 여론몰이로 바울을 투옥하게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갇혔던 빌립보 감옥.


윤석전 목사: 투옥 사건은 바울의 전도여행 속에서 많이 나타납니다. 옥중 사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심상법 교수: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바울이 아나니아를 통해 환상 중에 어떤 사명을 받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행9:16). 복음과 고난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바울의 투옥 사건은 복음 전파의 한 모습입니다.

또 바울은 ‘고난의 사도’입니다. 고린도전·후서를 보면 아시겠지만 “내가 옥중에도 매이고 매질을 당했다” 하는 내용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옥중 사건은 매임의 사건이었지만 빌립보서 1장 12절에 따르면 복음 진보의 사건이었기에,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영적 교훈을 줍니다. ‘앞뒤가 꽉 막힌 상황에서 과연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할 때, 바울은 위를 바라보며 기도하고 참회했습니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진이 일어나 옥토가 흔들리고, 묶였던 착고가 풀리고, 또 복음의 문이 열려 간수가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이로써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라는 말씀이 태동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당시 로마 시민권의 권한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심상법 교수: 로마법에 따르면, 로마 시민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매질을 당하거나 투옥되거나 추방당하는 명령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특히 재판 없이 투옥되면, 그 가해자에게 중벌을 내립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선교 사역에 잘 이용했고, 나중에는 로마 시민권이 바울이 왕 앞에 서는 아주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윤석전 목사: 복음은 쉽게 증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복음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만방에 알려 수많은 영혼을 살리고자 하는,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구령의 열정을 품은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국경을 넘어 먼 나라에 가서 멸망하는 영혼을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되, 먼저 가까운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구령의 열정에 불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6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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