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31)] 성령의 역사로 세운 에베소교회

등록날짜 [ 2016-03-07 00:24:07 ]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사도 바울은 복음을 증거할 때 성령의 인도하심을 전적으로 따랐다고 성경 여러 군데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받고 고통당하고 어려움을 겪었지만 단 한 번도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는 자기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수고했던 바울. 이번 호에는 바울의 전도 현장 에베소를 살펴보겠습니다.


<사진설명>에베소 중앙도로.

바울은 에베소에서 열정
적으로 전도했다. 당시 로마 제국의 주요 상업도시였던 에베소(Ephesus)에는 생산과 풍요의 여신 아데미를 숭배하는 신전이 있었다. 아데미 신전은 길이 115m, 폭 55m로 파르테논 신전 4배 크기였는데, 당시로는 세계적 규모였다.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로마 황제들이 이 신전에 와서 참배했다.

바울은 이 우상의 도시 에베소를 그리스도의 도시로 바꿔 놓았다. 지금도 바울 이후 에베소에 세워진 교회들에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멈추지 않고 세계 곳곳에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자 태양 아래 뜨겁게 달아오른 길을 밟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갔으리라.

윤석전 목사: 바울 당시 에베소는 어떤 도시였는지 궁금합니다.

홍순화 원장(한국성서지리원): 에베소는 터키 서부 에게 해 연안에 있는 이즈미르에서 남쪽으로 72km, 밀레도에서 북쪽으로 50km 지점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로 가서 3년간 사역했습니다. 에베소라는 도시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제국 시대에 번성을 누린 곳입니다. 에베소는 주전 133년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들어가면서 황금기를 맞았는데, 각지 물산이 모여드는 무역항구로서 동서양을 연결하는 교통 요충지이자 국제회의가 열리는 정치.경제.문화.예술의 중심지였습니다. 최전성기를 누리던 주후 1~2세기경 에베소 인구는 30만 명에 달했습니다.

이렇게 번영하던 천연 항구 도시 에베소는 카이스터(Cayster) 강의 토사로 서서히 메워지면서 쇠퇴했습니다. 에베소는 현재 그 토사물로 해안에서 10km 들어간 내륙 지역이 되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에베소에서 진행된 사도 바울의 사역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심상법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학): 사도 바울은 처음 석 달 동안 유대인 회당에서 사역하다가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회당 밖 ‘두란노 서원’에서 2년간 제자 사역을 했습니다. 그 후 얼마 동안 아시아에 머물다 떠날 즈음에 각 교회 장로들을 모아 놓고 고별 설교를 했습니다.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20:31). 이 고별 설교로 볼 때 바울은 선교사로서 사역했다기보다 목회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 사역을 보면 바울의 선교 전략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반대에 부딪히면 회당 밖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에 관해 중점적으로 가르쳤습니다. 두란노 서원에서 행한 제자 사역이 소문 나서 아시아 전체로 퍼져 나가기도 했습니다. 바울의 에베소 사역은 ‘교회 성장’과 ‘갱신(更新)’에 아주 중요한 모범이 되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아볼로’가 등장합니다. 아볼로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홍순화 원장: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인인데, 당시 세계 학문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에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많이 살았습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에베소에 와 있었는데, 특히 구약성경에 능통했다고 합니다. 그 점을 보고 바울의 동역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아볼로에게 하나님의 도를 자세히 풀어 알려 주었고(행18:26), 아볼로는 능력 있는 복음 전도자가 되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잘 가르친다는 소문이 나서 아볼로는 아가야 지방 고린도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사도 바울을 만납니다. 성경과 웅변에 능통한 아볼로는 당시 보기 드문 인물이었고, 구약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증거하던 특별한 학자였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도행전 19장 1~7절을 보면 바울은 에베소에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성령을 받게 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성령받게 한 의미는 무엇인가요?

심상법 교수: 에베소에 일어난 성령 강림 사건은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지만 크게 ‘은사주의적’ 해석과 ‘전통적’ 해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오순절교회를 중심으로 한 은사주의자들은 성령 강림 사건을 기독교 입문의 두 단계로 봅니다. 회개와 믿음을 통한 첫 단계에서 성령을 부어 주고 성령 침례를 받는 다음 단계를 거쳐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물 침례와 성령 침례를 구분하여 물 침례는 구원과 거듭남에 관한 것이고, 성령 침례는 능력을 부어 주는 일이라고 합니다.

전통적 견해는 사도행전 19장 1절에서 7절을 토대로 설명합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살펴보다가 성도들 가운데 성령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행19:2). 바울은 성령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침례와 성령을 받게 해서 믿음과 성령을 관계시키고 거듭남과 침례를 연관시켜서 성령 강림을 두 단계가 아닌 하나로 인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사도행전을 읽을 때는 에베소에서 성령을 부어 주는 사건(행19:1~7)과 오순절 예루살렘에서 성령을 부어 주는 사건(행2:1~4), 또 가이사랴 고넬료의 집에서 성령을 부어 주는 사건(행10:44~48)을 성령의 교회론적, 선교론적 차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이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는 성령님이 오시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는 지리적 경계와 인종적 편견.차별을 넘어서 백성이 하나됨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거듭남의 논쟁보다는 하나의 우주적인 백성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은 복음을 증거할 때 회당에서 유대인을 중심으로 전했습니다. 에베소에서는 주로 두란노 서원에서 제자를 가르쳤습니다. 두란노 서원은 어떤 곳이고, 바울이 그곳에서 한 사역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심상법 교수: 두란노 서원에서 제자들을 가르친 일은 이미 앞서 본 대로 바울의 규례, 즉 바울의 전도 방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다가 극심한 반대에 부딪히면 장소를 옮겨 전도했습니다. 에베소에서도 3개월 정도 회당을 사용했으나 유대인들이 계속 반대하자 두란노 서원을 빌려 복음을 전합니다(행19:9).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매일 오후에 4~5시간씩 2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행19:10)라고 했듯이, 두란노 서원에서 행한 바울의 교육은 큰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그곳에서 한 사역은 제자 훈련에 본보기가 될 만한 모범적인 전략을 보여 줍니다.


<사진설명> 마리아의 집.

에베소에는 그리스도인에게 의미 깊은 장소가 많다. 그중에는 코레수스 산에 지은 마리아의 집이 있다. 이곳은 6~7세기 비잔틴 시대의 집 주춧돌 위에 1950년 현재의 건물을 지었는데, 이후 성지로 지정되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최후를 맞이하기 바로 직전에 어머니 마리아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19:26)라고 말씀하시고 바로 옆에 있는 제자 요한에게 “네 어머니라”(요19:27)고 말씀하셨다. 그 후 요한은 마리아를 평생 어머니로 모시고 살았다.

윤석전 목사:  에베소에서 바울이 복음을 증거할 때 많은 사건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어떤 사건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심상법 교수: 에베소는 당시 소아시아 중심도시로서 아데미 신전이 있었고, 그와 관련한 마술 산업이 매우 발전했습니다. 따라서 마술 산업에 종사한 이들과 은으로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 파는 은장색들은 경제적 번창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수한 복음이 이들 산업에 큰 영향을 줬습니다.

바울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은 결코 신이 될 수 없다고 가르치자(행19:26) 은장색 데메드리오는 자기 사업에 손해를 당할까 염려해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사람들은 극장에 들어가 바울 일행을 몰아세우고 공격하며 난리를 피웁니다. 걷잡을 수 없는 소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수많은 사람이 우르르 몰려왔는데도 태반이나 무슨 일로 왔는지 몰랐다는 것입니다(행19:32).

복음 전파를 거부하는 민중의 우둔함과 집단이기주의를 여실히 보여 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시대에도 ‘집단이기주의’가 있었고 복음 전파에는 언제나 이처럼 무지한 사람들을 선동하는 악한 영들의 세력이 있다는 것을 이 사건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에베소에서는 아데미 여신을 숭배했다고 합니다. 아데미 숭배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습니까?

심상법 교수: 에베소는 아데미 숭배의 본산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지중해 연안에 널리 퍼져 있던 종교들의 관심은 다산과 번영이었고, 다산과 풍요의 신인 아데미를 섬기는 것을 당연시했습니다. 에베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에베소는 아시아의 길목에 있어 지정학적으로나 마술 산업 면이나 경제적으로도 아데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에베소에서 새로운 신앙,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당연히 반대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진설명> 사도 요한 기념교회.

윤석전 목사: 바울이 에베소에서 3년간 머물며 복음을 전한 만큼 기독교 유적지도 많을 듯합니다. 이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홍순화 원장: 에베소에는 사도 바울보다 제자 요한과 관련 있는 유적지가 많습니다. 요한의 무덤, 요한 기념교회, 마리아가 요한과 함께 살았던 마리아의 집, 에베소 공회가 열렸던 마리아교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관련한 유적으로는 대표적으로 극장이 있습니다. 은장색 데메드리오가 사람들을 선동해 바울 일행을 공격했던 장소입니다(행19:29). 2만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극장은 현존해 공연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예수님을 오해하여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는 우리의 구세주’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멸망하는 영혼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고 고난당하시고 최후에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생각하며 바울처럼 죽을 때까지 복음을 전하는 구령의 열정이 불타기를 소망합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7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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