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04-04 11:38:51 ]
<사진설명> 로도 섬에 있는 바울기념교회.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복음의 사명자 사도 바울은 존경받을 만한 위대한 인물입니다. 사도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섬에 들렀습니다. 이번 호에는 그 여정 중에 있던 ‘밀레도’와 ‘로도 섬’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모스 섬에서 배를 탄 바울 일행은 아시아 서부 해안에 있는 밀레도로 향한다. 바울이 이 코스를 택한 이유는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밀레도(Miletus)는 동전을 주조할 정도로 상업과 교역이 활발했다. 이 활기 띤 항구도시에 배가 며칠간 정박하자 바울은 에베소에 사람을 보내 장로들을 청했다. 바로 이곳에서 ‘예루살렘에서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해도 복음 전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는 내용의 고별 설교를 했다. 그때 바울과 에베소 장로들은 울음을 삼키며 무릎 꿇고 기도했고, 다시 못 보게 된다는 슬픔에 끝내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석별의 정을 뒤로하고 밀레도를 떠난 바울 일행은 고스 섬을 거쳐 로도 섬에 도착했다. 로도(Rhodes)는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중간 기착지인데 고대부터 무역과 상업 중심지로 오늘날에도 지중해 섬들을 연결하는 교통 요지다. 바울이 도착한 린도스 항에는 그의 정박을 기념하는 ‘바울기념교회’가 있다. 또 로도 섬에는 주후 1309년 마지막 십자군단인 요한기사단이 건설한 성벽과 해자(성 주위에 판 못)로 둘러싸인 요새가 있다. 그 성채는 과거 이 도시의 방어력과 위세를 여실히 전해 준다.
윤석전 목사: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때 거친 밀레도는 사도행전 20장에 나옵니다. 당시 밀레도는 어떤 도시였습니까?
홍순화 원장(한국성서지리원): 성경에 기록된 밀레도는 에베소 남쪽에 있는 항구도시로, 지금 그곳에 가 보면 ‘잘못 찾아왔나?’ 할 정도로 전혀 다른 곳으로 변했습니다. 지금은 항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밀레도는 그곳을 흐르는 메안더 강의 퇴적작용 때문에 해안에서 10km 들어간 내륙도시가 되었습니다. 바울 당시에는 유명한 항구였기에 지금도 그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 도시들은 극장을 건설할 때, 도시 인구 10분의 1을 수용하는 규모로 지었습니다. 밀레도에 1만 5000명 관객을 수용하는 극장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15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곳 유적을 모두 돌아보려면 부지런히 다녀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립니다. 유적마다 사도 바울의 흔적을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밀레도 남쪽 68km 지점에는 사도 바울이 들렀다는 고스 섬이 있습니다. 육지에서 5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교통의 중심지였기에 경유했습니다. 고스 섬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로도 섬으로 향했습니다(행21:1). 이 섬이 유명한 이유는 ‘의사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히포크라테스의 고향으로, 그가 세운 의학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밀레도, 고스를 지나서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바울이 밀레도에서 고별 설교를 할 때 많은 사람이 애석해했고,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틀림없이 바울이 죽음의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언 같은 바울의 설교가 무엇을 뜻하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심상법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학): 지금까지 바울의 고별 강론은 목회적 의미에서만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의 고별 강론과 바울의 전도여행 중 특히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여정은, 주님의 고별 설교와 유사성을 많이 지니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쓴 누가는 그 점을 병행하며 보여줍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기 전에 마음을 굳히시면서 제자들을 모아 놓고 고별 설교를 하셨습니다(요한복음 13~17장). 마찬가지로 바울도 3년간 사역했던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 장로들과 자기가 세운 목회자들을 불러서 강론했습니다. 마치 십자가를 지기 전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행하셨던 설교와 비슷합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에베소에서 수고하고 인내하며 사역했던 자신을 회상하고, 곧 닥칠 불행한 미래 속에서도 일사각오(一死覺悟)로 복음을 전할 것을 말한 후, 에베소의 장로들과 목회자들에게도 참된 목양을 하라고 권면합니다. 특히 그 권면은 많은 세대가 지났어도 목회자들에게 참으로 귀감이 됩니다. 주님의 사역을 본받고자 한 사도 바울의 모습을 배우는 중요한 기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주님과 바울의 심정이 가슴에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밀레도를 떠나 로도로 향합니다. 로도 섬은 어떤 곳인가요?
홍순화 원장: 사도 바울은 밀레도에서 배를 타고 당시 항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니도’ 아래쪽이 로도 섬입니다. 로도 섬은 당시 지중해에서 3대 도시라고 말할 정도로 중요한 항구였습니다. 로도 섬에 가 보면 사도 바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사도 바울은 린도스 항구에 들렀는데, 그곳에 사도 바울 도착기념교회가 있습니다. 이 밖에 로도 섬에는 고대 7대 불가사의인 태양신 헬리오스 거상(巨象)이 있었다고 합니다. 기독교인에게 의미 있는 장소가 또 있는데요, 마지막 십자군인 ‘요한 기사단의 성채’입니다. 요한 기사단은 주후 1309년 로도 섬을 통치한 이후, 성을 쌓고 바로 앞 오스만 터키와 대치하다가 멜리데 섬으로 밀린 후, 나폴레옹 때 멸망했습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이 지나간 장소는 하나님의 역사가 지나간 곳이기에 유명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의 삶에서 우리가 특히 배우고 좇아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심상법 교수: 그동안 바울의 선교사적인 면과 신학자적인 면모가 부각됐지만 3차 전도여행 때는 사역자와 목회자 상을 많이 보여 주었습니다. 특히 에베소 사역 모습과 밀레도 고별 강론에서 잘 나타납니다. 바울은 주님께서 보여 주셨던 공생애 사역을 고스란히 재현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마치 목자 잃은 양처럼 방황하는 무리를 보고 ‘민망히 여겼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9:36). 이는 바울 사역의 핵심 정신이라고 생각됩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리라”(행20:28)는 밀레도 고별 설교를 보면 ‘피로 값 주고 산 교회를 너희가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바울의 사역 속에 피처럼, 흔적처럼 그 기치가 어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로도 섬에서 두로에 도착해 다시 출항한 바울은 3차 전도여행 항해를 모두 마친 후 이스라엘의 돌레마이에 이르렀다. 갈멜 산 북쪽 해안 평야 돌레마이(Ptolemais)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구약 시대에는 ‘악고’라고 불리다가 주전 4세기 이집트 프톨레미 2세의 이름을 따 현재 이름으로 명명됐다. 또 십자군 시대(1104~1291)의 주요 항구답게 지금도 잘 보존된 십자군 성채가 당시 화려했던 역사를 보여 주고 있다. 이곳을 200년간 점령했던 십자군은 성채를 건설하여 유럽을 잇는 항구로 돌레마이를 사용했다.
<사진설명> 갈멜 산 북쪽 해안 평야 돌레마이.
나폴레옹은 돌레마이를 60일간 점령해 통치했는데 세월의 무게 탓에 허물어진 성벽과 옛길과 녹슨 대포만이 이곳에서 벌어진 전쟁의 비극을 침묵 속에 대변하고 있다. 또 십자군과 경쟁하며 돌레마이를 점령했던 모슬렘의 흔적도 역력하다. 돌레마이는 여러 세력의 지배를 받았던 땅이다. 바울은 이곳에 머물면서 앞으로 다가올 위험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했다.
윤석전 목사: 사도행전 21장에 보면 돌레마이는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갈 때 잠깐 들른 곳입니다. 이곳을 소개해 주세요.
심상법 교수: 선지자 아가보는 상당히 불길한 예언을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바울의 전도여행을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과 대비해서 봅니다. 그 같은 관점으로 바라보면, 아가보의 예언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불길한 죽음을 당하는 사건과 유사점을 가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가보는 예루살렘에서 바울에게 일어날 고난을 예언했습니다. 유대에서 온 아가보는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행21:11). 아가보의 구체적인 예언을 들은 사람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권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행21:13).
바울은 아가보 예언 전부터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불길한 일들을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아가보의 예언은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겪을 수난과 어려움의 한 모습을 미리 보여 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아가보의 불길한 예언에 대한 여러 사람의 해석과, 그 예언을 듣고도 예루살렘에 가기로 한 바울의 결정은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심상법 교수: 예언 사건은 지금도 우리에게 중요한 몇 가지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미래적 예언이 과연 오늘에도 일어나느냐에 관한 것과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행동해야 하느냐에 관한 것입니다. 아가보 예언 사건은 아주 중요한 점을 시사해 줍니다. 첫째, 예언의 해석 문제입니다. 누가를 포함해 그 예언을 들은 사람들은 불길한 예언이니 예루살렘에 가서는 안 된다고 바울에게 말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결국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어느 학자의 의견을 따르면, 바울에게는 아가보의 예언과 바울 자신에게 주어진 계시의 예언이 있다고 합니다. 계시의 예언은 다메섹에서 아나니아가 본 환상에서 사울에 관해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행9:15~16).
그 예언에 입각하면, 바울은 심정에 큰 부담을 느꼈지만 그 수난을 감당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예언을 해석할 때 은사적 예언인지 그 여부도 중요하지만, 성경 속 계시적 예언에 부합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아가보의 예언과 사도행전 9장 15~16절 예언이 충돌할 때, 우리는 성경적 계시를 우선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둘째, 예언의 현존 문제입니다. 신학자들은 두 가지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은사중지론자들은 계시가 종결하면서 ‘예언은 끝났다’고 여기고, 은사론자들은 지금도 ‘계속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 제3의 의견으로, 예언은 계속되지만 은사론자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임의로 해석하지 말고 성경의 계시에 맞춰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신 공생애와 같은 목회 여행이었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목회는 자신이 맡은 지역과 영혼을 책임지고 그들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의 닮은꼴처럼 우리도 그와 닮아야 합니다. 바울을 사용하신 성령님께서 우리도 그렇게 사용하시면 그처럼 살 수 있습니다. 바울처럼 육신의 정욕을 버리고 자기 목숨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께 내어 드릴 때, 하나님께서 보시고 자유하게 사용하실 수 있다고 믿어질 때, 우리도 바울처럼 쓰임받으리라 생각합니다. 세계 열방에 바울이 남긴 복음과 전도의 흔적으로 많은 열매를 맺었듯이 우리도 예수 복음을 증거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7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