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39)] 로마에서 바울이 투옥된 장소를 가다

등록날짜 [ 2016-05-24 12:26:51 ]


<사진설명> 마메르틴 감옥. 이탈리아 로마에서 사형수를 가두었던 곳이다.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로마에 온 사도 바울이 투옥되었을 때, 감옥에서 무엇을 했을까요? 주님이 함께하셨던 빌립보 감옥에서처럼 찬양하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어려움과 고통을 겪을 때 결박당한 그곳에서 찬양하고 기도하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사도 바울이 갇혔던 마메르틴 감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탈리아 로마의 고대 유적지, ‘포로 로마노(Foro Romano, 로마 공회당)’ 부근에는 사형수를 가뒀던 지하 감옥인, 마메르틴(Mamertine) 감옥이 있다. 로마로 압송된 바울이 이곳에 갇혔다고 전해진다. 마메르틴 감옥 입구에는 바울과 베드로가 이곳에 수감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바울은 로마에서 잠시 자유의 몸이 되지만, 네로 황제가 기독교를 박해할 때 다시 체포돼 이곳 깊은 감옥에 갇혔다. 간수들은 감시창을 통해 죽음의 지하 감옥에 갇힌 자들을 감시했다. 당시 지하는 칠흑 같은 어두움과 지독한 악취로 생긴 독 때문에 수많은 수감자가 죽어 갔던, 야만의 장소였다. 이 지독한 바위 감옥에는 사도 바울 외에 또 다른 제자의 흔적이 있다. 대리석 판에 거꾸로 박혀 있는 십자가의 주인공 베드로다. 이 야만의 감옥에서 바울에 이어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위해 죽어 갔다. 벽의 낙서들에는 죽음과 맞섰던 그들의 처절한 시간이 배어 있다.

사도 바울은 세상의 죽음에 절대 굴복하지 않았다. 이 무시무시한 감옥에서도 수많은 사람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고귀한 열매를 맺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이 갇혔던 마메르틴 감옥은 어떤 곳인가요?

홍순화 원장(한국성서지리원): 마메르틴 감옥은 현재 로마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대 감옥입니다. 당시 로마 사람들은 ‘마메르틴’이라는 말만 들어도 소름 끼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 감옥은 로마 시민권이 없는 외부 적장, 전쟁 포로를 가두던 곳이었습니다. 로마는 정복지에서 적장을 체포해 오면 마메르틴 감옥에 가두었다가 그곳에서 사형했습니다. 마메르틴 감옥은 로마 시대 유일하게 사형을 집행하는 감옥이었습니다. 죄수를 1층에 가두었다가 2층에서 처형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시신을 매장하지 않고 지하로 흐르는 테레베 강에 던져 버렸다고 합니다. 이곳 마메르틴 감옥에 베드로와 바울이 투옥됐다고 전해 내려옵니다. 마메르틴 감옥 입구에는 이탈리아어로 ‘베드로와 바울의 감옥’이라고 표지판에 쓰여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로마 시민인 바울이 왜 중죄인을 가두는 마메르틴 감옥에 갇혔나요?

홍순화 원장: 사도행전 28장까지 기록된 사도 바울의 여정을 살펴보면, 처음 로마로 압송된 시기에는 마메르틴 감옥에 갇혔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 후 다시 잡혀 와 마메르틴 감옥에 갇혔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죄인을 다시 잡아 왔다는 것은 그만큼 중대한 죄목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사상적으로 로마 제국을 뒤흔든 사람이었기에 중죄인이 갇히는 마메르틴 감옥에 수감된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추측으로 사도 바울이 네로 황제 시절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때는 모든 법과 질서가 무너지고 정치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을 때여서 로마 시민인 바울이 법과 상관없이 마메르틴 감옥에 갇혔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윤석전 목사: 마메르틴 감옥은 로마 공회장(Foro Romano)에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 공회장은 어떤 곳이었나요?

홍순화 원장: 로마 공회장은 고대 로마의 유적지가 가장 많이 있는 곳입니다. 팔라티노 언덕 옆에 있는 이곳은 초기 로마 시대 중심지였습니다. 신전, 공회당, 중심도로가 이곳에 모두 모여 있었습니다. ‘포로 로마노’가 세워진 지역은 처음에는 비가 오면 물이 괴는 습지였는데, 하수시설을 확충한 후에는 도시 생활의 구심점을 이루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곳이 중요한 이유는 마메르틴 감옥이 바로 옆에 있어서입니다. 이곳에는 로마 시대 유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멸망시켰던 티투스 황제 개선문이 있습니다. 또 파우스티나 신전, 베스타 신전도 있습니다. 언덕 하나를 넘어가면 유명한 원형 투기장인 콜로세움이 나옵니다. 콜로세움을 지나면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이 보입니다. 이처럼 ‘포로 로마노’에는 로마 시대 유적이 잘 보존돼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온갖 어려움을 당하고 우여곡절 끝에 로마로 압송됐습니다. 압송 후 바울이 처형당한 때는 언제인가요?

김판임 교수(이화여자대학교 신약학): 네로 황제 때 바울과 베드로가 순교했다고 합니다. 네로의 기독교 박해 기간은 주후 64년부터 68년으로 추정하므로 바울은 64년 이후 순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붙잡혀 로마로 압송된 때는 늦어도 60년경입니다. 그런데 이때 죽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많은 학자가 이때 선교 활동을 하고, 그가 원했던 스페인에서 복음을 전한 후 순교했다고 추정합니다. 사도행전 마지막에도 “순교 당했다”가 아니라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라며 계속 복음을 전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진설명> 바울이 순교 직전 시간을 보냈던 천국계단교회.


마메르틴 감옥에 갇힌 바울은 복음 전도자로서 순교를 향한 행진을 계속했다. ‘세 분수 수도원(Three Fountains Abbey)’에서 복음의 사도로서 바울의 뜨거운 삶이 막을 내렸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바울의 인생을 이곳까지 이끌었다. 바울은 드디어 최종 목적지의 마지막 땅에 섰다.

‘세 분수 수도원’ 한 곳에는 바울이 사형 직전 시간을 보냈던 천국계단교회가 있다. 바울은 이 계단 밑 지하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렸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생을 보낸 적이 많았다. 성경 중 옥중서신은 전부 갇혀 있을 때, 자기가 전도했던 교회들에 권면과 믿음의 당부를 기록해서 보낸 편지들이다. 이곳에서도 로마에 복음이 전파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사형을 기다렸을 것이다.

살벌한 감옥도 바울에게는 생애 종지부를 찍는, 사명 완성의 장소였다. 삶 속의 십자가를 순교로 완수한 바울, 그의 눈은 저 멀리 천국에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천국의 면류관을 바라보았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6~8).


윤석전 목사: 천국계단교회(하늘계단교회)는 어떤 곳인가요?

홍순화 원장: 천국계단교회는 사도 바울이 참수당한 ‘세 분수 교회’ 옆에 있습니다. 처형 직전, 사도 바울은 천국계단교회 지하에 갇혀 있었습니다. 천국계단교회 앞에 돌길이 있는데 그 길로 끌려가 처형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곳에 관한 자료나 증빙 자료는 부족하지만,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다가 순교한 것은 확실합니다. 그 감옥 자리를 보며 사도 바울의 감옥 생활을 떠올려 보고 은혜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윤석전 목사: 당시 로마에는 죄인을 다루는 여러 형벌이 있었습니다. 감옥에 감금되는 형벌은 어느 정도에 해당했나요?

김판임 교수: 로마법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법과 좀 다릅니다. ‘반역죄는 몇 년 형에 처한다’는 형식으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당시 문화, 사회를 기반으로 재구성해 봐야 합니다. 로마법의 근원으로는 황제의 말, 황제의 칙령, 사법 판결, 백성에게 전하는 지침서, 원로원의 결정이 있습니다. 이 밖에도 각 통치자의 판결권, 지방자치권이 있었습니다. 당시 바울이 법 집행으로 감금된 것인지 재판을 기다리는 처지에서 감금된 상황인지 확실히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사도행전을 살펴본다면 재판을 기다리는 상태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 당시 기독교인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로마 사회에 얼마큼 영향을 미쳤습니까?

김판임 교수: 바울 당시 기독교는 개척 단계라고 볼 수 있어서 그 영향력은 아주 미미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로마 사회에서 기독교인의 삶은 특이하다고 여겨졌는데요. 그중 한 가지를 언급하자면 ‘유일신 사상’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 제국은 각 지역의 종교를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은 오직 유일신 하나님만 섬겼습니다. 이 점이 로마인에게 특이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로 로마 당시 수많은 신은 사라지고 작은 종파였던 기독교가 세계의 거대한 신앙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윤석전 목사: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이기에 아무도 그 생명을 짓밟지 못하고 사라지게 할 수 없었습니다. 생명이신 하나님의 절대적 힘으로 부흥했습니다. 바울의 행적을 보면서 주님을 향한 복음 사역을 좇아 보았습니다. 때로는 안타깝고, 때로는 하나님께서 바울을 쓰시는 역사를 보며 감동합니다. 선교하려고 온갖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자기를 내놓은 바울을 볼 때, 그의 중심을 관통하는 신앙관이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김판임 교수: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고백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바울은 선교에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여한 사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명의 근원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하나님이 죄인인 우리를 위해 그의 아들을 내어 주셨다는 점에 핵심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바울은 고난받고 어려움을 당했지만, “지금이 바로 구원의 때”라고 강력히 외쳤습니다. 오직 예수를 알고 전하는 과정에서 더 큰 하나님의 사랑, 능력, 이적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윤석전 목사: 바울의 구령 열정을 보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것을요. 지옥은 한 번 가면 영원히 나오지 못하는 곳입니다. 과연 그 고통을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예수 몰라 지옥 갈 영혼을 바라보면서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원했습니다. 그 간절한 몸부림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더욱 값지게 쓰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 주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이 사랑을 몰라서 멸망하는 영혼들을 찾아 감옥에 가서 매를 맞고 고통을 당해 가면서 끝없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제한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서 매를 맞고 고통을 당하면서도 양심은 자유를 얻었습니다. 양심의 자유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영혼을 살리기 위해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자유했다는 뜻입니다. 성령도 그 자유를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도 바로 이 땅에 사는 동안, 어디를 가든지 힘들고 어렵고 때로는 고단할지라도, 우리 곁에 불신자가 있다면, 바울과 같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합시다. 그리하여 한 사람이라도 멸망하지 않도록, 예수 십자가의 보혈이 헛되지 않도록 만방에 전합시다. 위대한 복음 전도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이 세상을 뒤덮기를 원합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8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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