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08-01 14:51:29 ]
<사진설명> 아겔다마.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예수께서는 그토록 사랑했던 제자 유다가 자기를 대제사장에게 팔 음모를 꾸민 줄 아시고 “차라리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고 말씀하시면서 유다의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셨습니다. 유다는 예수를 유대인의 손에 넘겨준 후, 양심의 가책을 받자 견딜 수 없어 결국 나무에 목을 매었고, 그 몸이 떨어져서 창자가 터지는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유다가 목숨을 끊었던 장소, ‘아겔다마’를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예루살렘 남쪽 ‘힌놈 골짜기’에 있는 ‘아겔다마(Akeldama)’는 예수를 팔아넘긴 가룟 유다와 관련 깊은 장소다. 그런 이유로, 또 아랍인 거주 지역에 있는 까닭에 이곳은 기독교인이 거의 찾지 않는다.
‘아겔다마’는 ‘불의의 삯으로 산 밭’‘피 밭’이라는 뜻을 지닌다. 피 밭으로 가는 길은 험했다. 가룟 유다의 무덤 터는 예상대로 황폐했다. 현재는 쓰레기 처리장을 방불케 한다. ‘아겔다마’는 주후 400년 이후부터 나그네와 불행을 당한 자들의 매장지로 사용했다. 2000년 전, 가룟 유다는 이곳에 와서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마27:5). 사단의 도구가 된 자의 비참한 말로였다. 그의 마지막은 돌무더기처럼 정지된 역사가 되어 아겔다마 무덤 터 속에 고여 있었다.
열두 제자 중 한 명이라는 영광을 안았던 가룟 유다. 하지만 믿음과 회개를 저버렸던 그는 영원한 반역자의 표상으로 남았다.
윤석전 목사: ‘아겔다마’는 ‘피 밭’이라는 뜻뿐만 아니라 ‘토기장이의 밭’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뜻을 가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홍순화 원장(한국성서지리원): 성경에는 유다가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판 후,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 돈을 제사장들에게 주었는데 제사장들이 그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 아겔다마를 사서 나그네들을 위한 묘지로 삼았다고 기록돼 있습니다(마27:4~7). ‘아겔다마’에는 ‘토기장이의 밭’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또 피 흘린 돈으로 산 곳이고, 유다가 처참하게 죽은 장소여서 ‘피 밭’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마27:6,8).
윤석전 목사: 가룟 유다의 이름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과 그에 얽힌 사연이 있다고 합니다.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박성민 목사(한국대학생선교회 CCC대표): 성경에 나오는 ‘유다’는 믿음의 조상 야곱의 넷째 아들이고, 그와 후손이 지파를 구성해 열두 지파의 하나가 됩니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유다 지파에서 나왔기에 ‘유다’라는 명칭은 매우 중요합니다.
또 ‘유다’라는 이름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칭송받았습니다. 주전 2세기 초반, 셀레우코스 왕국 군주 안티오코스 4세가 예루살렘에 와서 성전을 빼앗습니다. 그때 마타디아스라는 제사장과 그의 아들들이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아들 중 ‘유다 마카비’가 주전 165년에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성전을 되찾았습니다. ‘유다 마카비’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칭송받는 인물입니다. 그를 본떠 자녀의 이름을 ‘유다’로 많이 지었습니다.
성경에는 유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여럿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동생 중에 유다가 있었습니다. 유다의 뜻은 ‘찬송받는 자’입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 이후 ‘유다’라는 이름을 잘 쓰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영어 스펠링도 바꾸어 사용했습니다. 유다는 ‘Judah’‘Judas(헬라형)’라고 쓰는데 가룟 유다가 그 이름이었기에 예수님의 동생 ‘유다’는 ‘Jude’로 바꾸었습니다. 가룟 유다 때문에 ‘유다’는 존경받던 이름에서 배신자의 대명사로 바뀌었습니다.
윤석전 목사: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유대인에게 팔아넘긴 이유를 여러 가지로 추측한다고 합니다.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박성민 목사: 성경에는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판 이유를 전혀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추측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아’였다는 점에서 여러 추측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유다가 혁명당원 중 한 명이어서 예수를 팔았다는 설이 있습니다. ‘가룟’이라는 이름에 담긴 ‘식칼’ ‘자객’ ‘사람을 찌르고 도망가는 이’라는 뜻이 이 설을 뒷받침합니다. 둘째, 유다 자신의 기대와 예수님의 마지막 행적이 너무 달라서 예수를 팔았다는 설이 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이 로마를 전복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해 줄 줄 믿고 예수를 좇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말씀을 꺼내시고 자신의 죽음을 말씀하시자 기대가 무너졌던 것입니다.
한편,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가룟 유다는 ‘도둑’이고, 돈을 밝히는 자’라고 나옵니다. “저(가룟 유다)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요12:6). 인간이 어떤 죄를 범할 때는 단순히 한 가지 동기 때문은 아닙니다. 유다가 예수를 판 데는 예수님에 대한 실망과 물욕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더불어 제자가 대부분 갈릴리 출신인 데 반해 출신지가 다른 데서 오는 외톨이 의식도 포함됐으리라고 추측합니다.
윤석전 목사: 가룟 유다의 최후는 성경에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어떠했는지 말씀해 주세요.
박성민 목사: 마태복음에는 유다가 던져 놓고 간 돈으로 밭을 구입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사도행전에는 유다 본인이 샀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마27:5~7).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행1:18).
표현은 다르지만 어차피 유다의 수중에 있던 돈이기에 결국 유다가 산 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마태복음에는 목매 자살했다고 나타나 있고, 사도행전에서는 목을 맨 나무에서 떨어져 창자가 터져나오는 처참한 모습을 기록했습니다.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마27:5).
“…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행1:18).
종합적으로 이해해 보면, 가룟 유다가 나무에 목매어 달려 있었는데, 그때는 바로 안식일에 접어드는 시점이었습니다. 누구도 주검에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어서 부패했고, 줄이 끊어져 몸체가 떨어져서 창자가 터지는 처참한 상황을 맞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성경은 원래 유다가 선택한 길로 갔다고 유다의 최후를 말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행1:25).
윤석전 목사: 예수를 배신했던 유다가 묻힌 자리에 현재 수도원이 서 있습니다. 수도원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진설명> 사도들의 동굴.
가룟 유다의 매장지로 전해지는 아겔다마.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1874년 이곳에 오니프루이스 수녀원을 세웠다. 그곳에 있다는 또 다른 배반의 장소를 찾아가 보았다.
수녀원 안뜰 큰 지하실에는 예수님이 유대인에게 잡히시던 날, 제자들이 몸을 피했다고 전해지는 ‘사도들의 동굴’이 있다. 예수님이 체포되어 가야바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가시던 날 밤,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호언하던 제자들은 모두 도망쳤다. 그 일부는 이 으슥한 골짜기 깊은 동굴 속으로 몸을 숨겼다. 기도로 무장하지 못했던 자들의 참담한 패배였다. 그래서일까. 동굴 벽화에 그려진 제자들의 모습에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섬뜩하게 하는 공포 분위기가 맴돈다.
같은 배신자들이었지만 이들은 예수께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유다는 달랐다. 유다는 마귀에게 속아 예수를 팔아넘겼다. 그리고 바로 후회하고 스스로 목을 맸다. 그 몸은 땅에 떨어져서 창자가 터져 피가 철철 흘러 죽었다. 유다가 ‘아겔다마’, 즉 피 밭의 주인공이 된 것은 회개의 상실 때문이었다.
윤석전 목사: ‘오니프루이스 수녀원’은 어떤 곳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홍순화 원장: ‘아겔다마’는 기드론 골짜기가 끝나는 부분과 힌놈 골짜기가 시작되는 부근에 있습니다. 기드론 골짜기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아겔다마’라고 추정하는 곳에 세워진 ‘오니프루이스 수녀원’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 특별한 전승이 내려옵니다. 예수님이 심문받으실 때 제자들이 도망쳤는데 이 장소에 있는 동굴로 숨어들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심문받았던 ‘가야바의 집’이라고 추측하는 곳이 두 군데 있습니다. 시온 문 앞에 있는 장소와 베드로 통곡교회 자리입니다. 대개 도망치면 아래쪽을 향했을 텐데 제자들은 위쪽 동굴로 갔던 모양입니다. 그 자리에 수녀원이 세워졌습니다. 이곳은 기도하는 수녀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속죄’의 의미를 강조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윤석전 목사: 가룟 유다는 열한 제자와 섞여 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과 관계는 어떠했나요?
박성민 목사: 열두 제자 중 열한 명은 갈릴리 출신이고 가룟 유다는 타 지방인 예루살렘 출신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갈릴리인은 매우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데 비해 예루살렘 근방 사람들은 분석적이고 냉철해 대조적인 면모를 보였습니다. 그 때문에 가룟 유다는 스스로 자신을 권외 인물로 여기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성경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유다는 제자 중 회계를 맡았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 중 회계 일을 가장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는 자는 세리 마태입니다. 그런데 왜 유다가 맡았을까 생각해 보면, 유다가 제자 사이에서 상당한 신뢰를 받고 있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유다는 회계라는 중요하고 신뢰받는 위치를 맡아서 제자들과 자연스럽게 섞였다고 봅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출신지 차이 탓에 갈등을 빚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여겨 좇았는데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갈등을 겪는 면면을 보면서 ‘내가 있을 곳이 여기 맞나?’ 하는 의문을 품었을 것입니다. 또 예수께서 자신의 기대와 점점 어긋나는 모습을 보면서 표면적으로 상당한 신뢰를 쌓았음에도, 심적으로는 그런 갈등들이 예수를 배반하게 됐다고 추측합니다. 만약 유다의 내면적 갈등이 겉으로 자명하게 드러났다면 제자들이 가만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당시 유대인들과 예수님 사이의 갈등도 유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생각해 봅니다.가룟 유다에서 ‘가룟’은 무슨 뜻인가요?
홍순화 원장: 가룟은 ‘암살자’라는 뜻도 있지만 ‘그리옷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옷은 암만 지역 밑에 있는 모압 지역과 헤브론 남쪽 지역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성경에는 간단하게 설명해서 확실하게 어느 곳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가룟 유다가 갈릴리 사람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윤석전 목사: 요한복음 13장 2절에는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건이 마귀역사로 움직이는 상황을 보면서 우리 성도들도 생각을 잘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고 받은 ‘은 30’의 가치는 어느 정도인가요?
박성민 목사: 은전의 종류를 살펴봐야 합니다. 로마 은전 ‘데나리온’, 헬라 은전 ‘드라크마’, 유대인 은전 ‘세겔’이 있습니다. ‘데나리온’과 ‘드라크마’는 동일한 가치입니다. 1데나리온과 1드라크마는 육체노동자가 하루 일해서 받는 돈입니다. 1세겔은 4드라크마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은 30’이 어떤 은전을 가리키는지 살펴봐야 하는데, 그 점이 참 어렵습니다. 마태복음 26~27장에 나오는 ‘은 30’은 구약과 관련 지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구약 당시 ‘세겔’을 사용했는데 ‘은 30’은 육체노동자의 네 달 치 월급에 해당합니다.
그러면 왜 ‘은 30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출애굽기 21장에 보면 뿔난 소가 사람을 받아서 남의 남종이나 여종이 죽었을 때 소 임자는 은 30을 물었습니다. 당시 매우 적은 액수에 해당합니다. 결국 유다는 메시아 예수를 너무나 헐값에 넘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유다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좇았지만, 결국 예수님을 판 후 목을 맸고, 나무에서 떨어져 창자가 터졌습니다. 육체적으로도 비참하지만, 영적으로는 그가 지금 어디에 가 있을까요? 그는 지옥에서 자기가 상상하지 못할 죄를 지은 것을 끝없이 후회하고 가슴 치면서 고통당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모든 것이 내 뜻과 내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대로 성령의 인도 따라 예수 안에서 믿음을 잘 지켜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추종자가 될지언정 배신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끝까지 주님을 좇아 영육 간에 복 받고 천국의 기쁨을 맛보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9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