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전 목사와 함께하는 ‘성서의 땅을 가다’(53)] 야고보 순교 추정지 콤포스텔라교회를 찾아
등록날짜 [ 2016-09-27 15:19:14 ]
-진행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담임)
-박성민 목사(한국대학생선교회 CCC 대표)
-홍순화 원장(한국성서지리원)
윤석전 목사: 사도 야고보는 열두 제자 중 제일 먼저 순교했습니다. 야고보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주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순교했는데, 무덤은 스페인에 있다고 합니다. 현재 야고보의 무덤이라 여겨지는 장소에는 ‘콤포스텔라교회’가 웅장히 서 있습니다. 야고보 유적을 찾아서 스페인으로 가 보겠습니다.
<사진설명>마드리드 마요르 광장과 스페인 궁전
이베리아 반도에 있는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Madrid). 로마 제국이 세운 이 도시는 한때 이슬람에 지배받았다. 그러던 중 11세기에 스페인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심으로 국토를 회복했다. 스페인 전성기인 16세기 이후 마드리드는 400년간 스페인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다. 현재는 고색창연한 옛 건축물로 가득한 스페인 관광 중심지다.
마드리드 마요르 광장에는 명소(名所) 스페인 궁전이 있다. 입구는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로 늘 붐빈다. 1617년부터 4년간 텔리페이 3세가 건축한 이 궁전에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스페인의 영광이 가득하다. 궁전 내부에는 역대 스페인 왕가에서 사용한 식기들을 진열해 놓았다. 화려했던 스페인의 역사가 스며들어 하나하나 가히 ‘작품’이라 할 만하다. 궁 안에는 대규모 방이 1800여 개있고, 50여 개를 개방해 관광객을 맞는다. 그 수입으로 왕실 경비를 충당한다. 한 방에는 역대 왕과 왕비의 초상화를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서 예수의 제자 열둘 중 한 명을 찾아냈다. 현재 스페인 수호성인으로 여겨지는 야고보 사도다.
윤석전 목사: 로마서 15장에서 바울은 “서바나에 가고자 한다”고 말합니다(롬15:23). 서바나는 현재 스페인입니다. 야고보와 관련 깊다고 하는 당시 서바나 지역에 관해 말씀해 주세요.
홍순화 원장: 서바나 지역을 이베리아 반도라고 합니다. 예전에 이베리아인이 살았습니다. 성경과 연관해 중요한 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주전 3세기경 카르타고인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했습니다. 그 후, 로마가 카르타고인을 몰아내고 주전 2세기부터 주후 6세기까지 이베리아 반도를 통치했습니다. 로마는 이베리아 지역을 다른 점령지와 달리 특별히 대우했습니다. 원로원이 그 지역을 본토처럼 직접 통치했습니다. 따라서 세계 어떤 지역보다 ‘로마화’했습니다. ‘스페인의 로마’라고 부르는 루시타니아 지방 수도 ‘메리다’에는 6000여 명이 들어가는 원형극장, 1만 5000여 명을 수용하는 원형경기장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성경에서 서바나를 중요시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말씀을 근거로 한다고 보겠습니다(행1:8). 당시 사도와 성도들은 지중해와 대서양을 땅 끝으로 여겼으리라 추측합니다. 따라서 대서양과 닿아 있는 마지막 지점인 서바나 지역을 ‘땅 끝’이라고 여기고 중요하게 다룬 듯합니다.
윤석전 목사: 스페인의 수호성인(守護聖人)이 야고보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홍순화 원장: 스페인에 가면 야고보와 관련한 여러 전승을 접할 수 있습니다. 먼저, 야고보가 스페인에 최초로 복음을 전했고 그곳에서 순교했다고 믿는 전승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야고보가 예루살렘에서 순교했지만 시신은 스페인에 옮겨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둘은 어디까지나 전승일 뿐, 정확한 사실은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야고보를 스페인의 수호성인으로 섬기는 내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8세기 초 이슬람이 이베리아 반도 3분 2를 점령했습니다. 그러자 스페인 기독교인이 중심이 돼 이슬람에 대항해 ‘레콩키스타(conquista)’라는 국토회복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들은 나라를 되찾으려고 전쟁을 일으켰고, 그 과정에서 구심점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던 중 9세기 경, 야고보 무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강력한 신앙심으로 뭉쳤습니다. 야고보를 정신적 지주로 삼고 이슬람을 몰아내고 국토 대부분을 되찾았습니다. 이처럼 정치적 의도도 있지만, 어쨌든 ‘레콩키스타’ 이후 스페인 사람들이 야고보를 수호성인으로 삼았습니다.
윤석전 목사: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제자입니다. 야고보가 예수의 제자가 되는 과정을 소개해 주세요.
박성민 목사: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예수께서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제자로 삼은 과정을 상세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성경에는 ‘야고보’가 동명이인(同名異人)입니다. ‘세베데의 아들’과 ‘알패오의 아들’ 두 사람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야고보는 ‘세베데의 아들’입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예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를 제자로 부르신 후, 다른 두 형제 야고보와 요한이 고기 잡는 모습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그들은 배를 버려두고 부친을 떠나 예수를 좇았습니다. 사람들은 ‘요한과 야고보는 왜 저렇게 쉽게 하던 일을 멈추고 예수를 좇았을까’라고 의아해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0장을 보면, ‘세베데의 아들의 어미’인 살로메가 와서 예수께 부탁하는 장면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마20:21). 요한복음 19장 27절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직전 마리아를 세베데의 아들 요한에게 부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와 관련해 생각해 볼 때, 많은 학자가 ‘세베데의 부인’ 살로메를 마리아의 친동생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야보고와 요한은 예수님과 이종사촌 간인 셈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야고보와 요한이 제자가 되어 가는 과정은 친척이었기에 쉽게 진행되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윤석전 목사: 야고보 무덤이 발견된 자리에 현재 ‘콤포스텔라교회’가 서 있습니다. 매우 웅장한 교회입니다. 이번에는 콤포스텔라교회를 살펴보겠습니다.
<사진설명>콤포스텔라교회
야고보 사도의 이름을 뜻하는 ‘산티아고(Santiago)’. 9세기에 사도 야고보 유해를 발견했다는 소문을 타고 산티아고는 세계 3대 성지(聖地)가 됐다. 한때 유럽 순례자들의 최종 목적지로 사랑받았다. 그 덕분에 구(舊) 시가지 ‘산티아고’는 1985년 인류 유산(遺産)으로 지정됐다. 콤포스텔라교회는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양식을 혼합한 건축물의 보고(寶庫)다. 또 이슬람과 치른 전쟁에서 스페인 그리스도인의 항쟁 상징이다. 그 중심에 사도 야고보가 있다.
교회 내부에 야고보 상(象)이 있다. 그 야고보상 양쪽 어깨에는 커다란 못이 박혀 있다. 순교를 상징하는 모습이리라. 야고보는 열두 제자 중 제일 먼저 순교했다. 누구보다 세상 야망이 컸던 야고보. 그러나 그는 성령 강림 후 제자 군단에서 중심인물이 되었고 헤롯 아그립바 1세에 의해 처형당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려고 유대인에게 붙잡히시자 두려워서 도망쳤던 야고보. 하지만 성령을 충만히 받자 스스로 예수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갔다.
전승을 따르면, 제자들이 야고보의 유해를 스페인 땅으로 옮겼고, 9세기에 그의 무덤을 발견해 이 콤포스텔라교회를 건립했다. 돔으로 꾸민 방에 야고보의 유해를 안치한 무덤이 자리했다. 예수님께 부름받은 후에도, 예수의 능력을 등에 업고 세상 야망을 이루려 했던 야고보. 하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길은 예수님의 뜻을 이루는 순종의 길이었다.
윤석전 목사: 콤포스텔라교회에 들어가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야고보 상 양쪽 어깨에 커다란 못이 박혀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잔인하게 순교당했구나’ 싶어서 오랜 시간 마음 뭉클했습니다. 이처럼 야고보 무덤 위에 세운 콤포스텔라교회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 주세요.
홍순화 원장: 콤포스텔라 지역을 ‘산티아고’라고 부릅니다. ‘산티아고(Santiago)’는 ‘야고보’의 스페인 발음입니다. 지역명을 ‘야고보’ 이름으로 지은 셈이지요. 산티아고는 스페인 서북 해발 200m에 있습니다. 스페인 전승에 의하면, 야고보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몰랐는데 9세기 당시 하늘에서 별이 나타나서 빛으로 길을 인도해 무덤 자리를 찾게 했다고 합니다. ‘콤포스텔라’는 ‘별자리’라는 뜻입니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교회’는 스페인어로 ‘야고보 별자리 예배당’이라는 뜻입니다.
윤석전 목사: 성경에는 야고보를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짤막하게 등장하는 내용을 근거로 야고보의 성품을 말씀해 주세요.
박성민 목사: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실 때, 야고보가 답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예수께서 부르셨을 때 아버지와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막4:22).
요한복음 18장에 보면 요한 가문이 대제사장 집안과 아는 사이일 정도로 부유하고 평판 좋은 집안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요18:15). 야고보는 요한의 형이자 집안의 장남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배를 여러 척 소유했습니다. 야고보는 아버지의 유업을 물려받아 부자로 잘살 수 있었지만 모두 버리고 예수를 좇았습니다. 그 점을 볼 때 야고보는 가치 있는 일에 전념하려고 소유를 모두 버리는, 결단력 있는 성품을 지녔다고 하겠습니다. 또 겸손한 성품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제자 이름 목록을 보면 야고보가 먼저 나오지만, 교회사를 보면 ‘요한의 형제 야고보’로 소개합니다. 장남이고 요한의 형이고, 예수를 열심히 좇았지만, 항상 요한의 뒤 서열이었습니다. 심지어 순교할 때도 ‘요한의 형제 야고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행12:1~2). 그런 점을 볼 때 겸손한 성품이 야고보 속에 배어 있지 않았나 싶어 본받고 싶어집니다.
윤석전 목사: 열두 제자 중 야고보가 가장 먼저 순교한 이유는 무엇인지 당시 역사적 상황과 관련해서 말씀해 주세요.
박성민 목사: 사도행전을 보면, 야고보는 스데반 집사 다음 순서로 순교했습니다. 사실상 두 번째 순교자입니다. 사도 중에서는 제일 먼저 순교했습니다. 사람들은 야고보가 어떤 이유로 순교했는지 궁금해 합니다. 당시 정치 상황과 사도행전 12장에 등장하는 헤롯 왕을 눈여겨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기록한 헤롯 왕은 ‘헤롯 아그립바 1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 당시 헤롯 대왕의 손자입니다. 헤롯 대왕은 아들, 손자와 갈등을 겪었습니다. 헤롯 대왕 자신은 유대인 혼혈 ‘이두미안’ 출신이었습니다. 혼혈인으로서 유대인을 통치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또 팔레스타인은 로마에서 아주 다루기 힘든 지역이었고, 분봉왕들은 로마의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분봉왕이 통치하는 곳에서 혁명이나 반란이 일어나면, 로마군이 와서 반란을 진압했습니다. 만약 진압하지 못하면 분봉왕이 상당히 손해를 봤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다스리는 곳에서 반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대인 비위를 맞춰야 했습니다. 유대인들 사이에 기독교가 서서히 성장하는 상황에서 유대인을 자기 편에 끌어들이려면,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교회를 잠재워야 했습니다. 그때 교회 핵심 세력으로 선택한 인물이 바로 ‘야고보’였습니다. 겸손했지만 기독교 내에서 영향력이 컸던 야고보를 제일 먼저 죽여서 유대인의 비위를 맞췄다고 하겠습니다.
윤석전 목사: 헤롯 안티파스 1세가 유대인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야고보를 제물로 삼았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다면 야고보는 순교했고 베드로는 옥에서 구출된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박성민 목사: 야고보는 순교했으나, 옥에 갇혔던 베드로는 교회가 열심히 기도했더니 옥에서 풀려 나옵니다. 이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왜 야고보는 순교를 당하도록 내버려두시고, 베드로는 살려 주셨는지 궁금해집니다. 베드로가 옥에서 풀려난 일이 그의 기도 응답이었다고 생각할 때, 그러면 야고보는 살려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는지 궁금해집니다. 사도행전에서 그 두 사건을 어떤 각도로 봐야하느냐, 시각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사실상 교회사를 볼 때 ‘순교 역사’가 곧 ‘교회 역사’였습니다. 순교의 피는 교회 성장에 가장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삶과 죽음을 누구 시각에서 봐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 시각으로 볼 때 순교 자체가 복입니다. 그 각도에서 보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 뜻에 온전히 의존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콤포스텔라교회도 성지(聖地)인가요?
홍순화 원장: ‘성지(聖地)’의 뜻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께서 역사하신 거룩한 땅’, 둘째 ‘성경 속 지명’입니다. 그렇게 보면 콤포스텔라교회는 성지(聖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서바나에 가고 싶다’라는 바울의 말 외에는 기록된 바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성지라는 말을 붙이기 어렵습니다. 야고보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성경에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윤석전 목사: 웅장한 교회 건물보다, 야고보가 주를 위해 복음을 전하다가 잔인하게 순교당한 사실 자체가 더욱 웅장하고 그 모습이 부럽습니다. 야고보의 모습이 우리의 마음을 더욱 웅장하게 채웁니다. 무엇보다 성지 속에 역사한 믿음의 선배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갖고 살았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야고보처럼 복음 앞에 담대하고 겸손하여 웅장한 발자취를 남기고 최후에 순교라는 작품을 남기는 성도가 되기를 바라며,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9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