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10-26 10:26:18 ]
-진행 윤석전 목사(연세중앙교회 담임)
-박성민 목사(한국대학생선교회 CCC 대표)
-홍순화 원장(한국성서지리원)
윤석전 목사: 이번 호에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사도 빌립에 관해 알아보려 합니다. 빌립은 계산이 빠르고 자기 눈으로 직접 봐야 믿는,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빌립이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을 충만히 받자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터키 땅까지 갔고 최후에 순교했습니다. 빌립의 순교 터 히에라볼리로 가보겠습니다.
<사진설명> 로마 시대부터 유명 온천 휴양지인 파묵칼레(Pamukkale).
사도 빌립의 흔적을 쫓아온 히에라볼리(Hierapolis)에서 목화밭을 만났다. 당시에도 목화 꽃이 만발했으리라. 빌립은 로마 시대 유명 온천 휴양지인 파묵칼레(Pamukkale)까지 걸음을 옮겼다. 산 위에서 수천 년 동안 흘러내린 온천수 속 칼슘 성분은 바위를 순백 덩어리로 바꾸어놓았고, 거대한 계단식 천연 욕조를 만들어냈다. 온천수가 낳은 자연산 시멘트는 밟으면 폭신한 듯 보이지만 바위만큼이나 단단하다. 그 속에서도 풀꽃이 자라나듯 복음은 화려한 휴양지에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번져갔으리라. 멀리 산 중턱에 보이는 돌무더기에 빌립 사도의 순교지가 있다.
윤석전 목사: 빌립이 복음 전할 당시 히에라볼리와 파묵칼레는 어떤 곳이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홍순화 원장: 히에라볼리는 도시 이름이고, 파묵칼레는 히에라볼리에 있는 묘하게 생긴 온천 지역 명칭입니다. '거룩한 성'이라는 뜻인 히에라볼리는 골로새서에 단 한 번 언급되었습니다(골4:13). 골로새와는 26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버가모 왕이 건설해 로마에 바친 도시가 히에라볼리입니다. 극장, 운동장을 비롯해 도시 유적이 많이 있습니다. 히에라볼리는 온천으로 유명합니다. 온천물이 흘러내려 가면서 석회암 물이 세상을 온통 흰색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거대한 계단식 천연 욕조는 높이 100m, 폭 2km 규모로 광활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 지역을 파묵칼레라고 합니다. 당시 파묵칼레 지역 온천수를 아래쪽 10km 지점인 라오디게아까지 내려보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식었는데 "더웁지도 차갑지도 않다"(계3:15~16)는 말이 여기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빌립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개방 성향을 띤 사람이라고 합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평가하는지 궁금합니다.
박성민 목사: '빌립'은 알렉산더 대왕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전형적인 헬라식 이름이지요. 이름 자체에 '말을 사랑하는 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빌립 고향은 갈릴리 벳새다인데요, 갈릴리 지역 주변은 개방 성향이 짙었습니다. 요한복음 12장을 보면 헬라인 몇 명이 예수님을 만나러 왔는데 먼저 빌립을 찾아갑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빌립은 안드레에게 갔고, 두 사람이 헬라인들을 예수께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런 행동 때문에 빌립을 개방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윤석전 목사: 베드로 형제 안드레도 상당히 개방 성향을 띤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안드레에 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박성민 목사: 예수 열두 제자 중 헬라식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이 바로 '빌립'과 '안드레'입니다. '안드레'는 이름 자체가 남자답습니다. 안드레가 헬라 성향을 띠었기에 빌립은 헬라인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찾아왔을 때 안드레에게 데려간 것 같습니다. 사실 헬라인이 찾아왔을 때 빌립은 잠시 주저했습니다. 헬라인들을 예수님께 바로 데려 가기보다는 다른 제자들과 의논해야 한다고 생각했겠지요. 베드로는 형제이지만 중도 성향이었기에, 이름에서 보여주듯 개방 성향이 강한 안드레에게 가서 의논했습니다. 그때 안드레가 "헬라인을 예수께 데려 가자" 제안했습니다. 그런 개방적이고 용기 있는 안드레의 행동 때문에 헬라인들이 예수를 만날 수 있었고, 예수께서는 그 자리에서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요12:23),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요12:24)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그것과 연결해서 생명을 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요12:25)라는 뜻의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윤석전 목사: 예수님을 따르면서 안드레가 한 일 중, 우리가 기억할 만한 일은 무엇인지요?
박성민 목사: 형제 베드로를 예수께로 인도한 것이 가장 큰 일입니다. 요한복음 1장을 살펴보면, 안드레는 침례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을 만나자 예수님의 제자가 됐고, "메시야를 만났다"고 베드로에게 말해서 예수께로 데리고 왔습니다. 이처럼 안드레는 사람을 예수께로 인도한 첫 제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오병이어 이적 때도 독특한 역할을 합니다. 요한복음 6장 1~15절을 보면 예수께서 광야에 모인 장정만 헤아려도 5천 명 넘는 군중을 보시고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말씀하시자 빌립은 2백 데나리온도 모자란다며 계산부터 했습니다. 하지만 안드레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지만 가난한 아이의 점심,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와 예수께 드립니다. 그것을 다양한 각도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조그만 것이라도 주님께 드리면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이처럼 안드레는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일에 쓰임받았습니다.
윤석전 목사: 이제 빌립의 순교 터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사진설명> 빌립이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죽임당한 자리에 세워진 빌립 순교 교회.
빌립 순교 터를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빌립 사도는 어쩌다 이방 땅, 이 산꼭대기까지 끌려와 죽임을 당했을까. 전승에 의하면 사도 빌립의 복음 전도를 핍박하던 이 도시 사람들은 그를 성문 밖으로 끌고 와 돌로 쳐 죽였다고 한다.
벳세다 광야에서 군중에게 먹을 것을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즉시 "2백 데나리온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한 빌립. 당시 물질주의 사고방식을 가진 빌립은 인간의 방법밖에는 몰랐으리라. 메시아 곁에 있었으면서도 예수님의 본질을 바로 알지 못했기에 빌립의 영은 어둠을 벗지 못했다. 그러나 성령 체험을 통해 불신의 장막이 벗겨졌고 이방 땅에 예수 십자가 피의 흔적을 남겨 놓았다. 영의 사람으로 거듭난 빌립. 이제 그에겐 믿는 것이 보이는 것이 되었고, 복음을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가는 예수의 군사가 되었다. 그래서 이곳 이방 땅 히에라볼리로 왔던 것이다. 빌립이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죽임당한 자리에 대형 기념 교회를 세웠는데 그곳이 바로 빌립 순교 교회다.
빌립 순교 터 부근에는 대형 원형극장이 있다. 1만 5천여 명을 수용할 규모다. 파묵칼레에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 와서 무대공연을 즐겼으리라. 바로 이들에게 빌립은 구원의 말씀을 선포했다. 히에라볼리는 사도 빌립에겐 예수께서 명하셨던 땅끝, 바로 그곳이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윤석전 목사: 빌립이 히에라볼리를 전도지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홍순화 원장: 지혜로운 빌립이 왜 히에라볼리를 전도지로 선택했냐면, 첫째 파묵칼레라는 휴양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방에서 휴양하러 왔고 황제까지 와서 온천을 즐겼다고 합니다. 지금도 대단한데 당시는 얼마나 유명했겠습니까? 특히 파묵칼레 온천수는 몇 가지 병에 특효가 있다는 정설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과 사도 바울은 히에라볼리 부근에서 복음을 전했고 후에는 그 도시 교회들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에, 사도 요한도 라오디게아에 서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다 왜 유독 히에라볼리에는 서신을 보내지 않았을까요? 빌립이 그 지역에서 전도하고 있었기에 두 사도 모두 히에라볼리에는 편지를 쓰지 않았으리라고 학자들은 추측합니다.
또 한 가지는 빌립이 히에라볼리에서 순교했느냐는 문제입니다. 여러 전승을 살펴볼 때 빌립이 이곳에서 순교한 것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빌립 순교 터는 사도 빌립이 최초로 매장된 곳이라고 여깁니다. 물론 빌립 순교 교회는 한참 후인 5세기에 지어졌습니다.
윤석전 목사: 빌립은 흔히 계산이 빠른 사람, 혹은 생각이 앞선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내용을 토대로 빌립의 성품을 말씀해 주세요.
박성민 목사: 빌립은 계산적이지만 무척 준비성 강한 사람이고, 나아가 그런 성품을 받쳐주는 신중함이 있다고 봅니다. 신중한 면모는 나다나엘을 전도할 때 드러납니다.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할 때 베드로였다면 "그래도 그는 메시야다" 하며 강하게 주장을 폈을 텐데, 빌립은 더 얘기하지 않고 "와 보라"고 말하고 나다나엘을 예수께로 인도한 신중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빌립은 솔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8~9절을 보면 빌립이 주님께 이런 말을 합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면 족하겠나이다." 다른 제자들도 다 품었음직한 의문을 예수께 솔직하게 여쭤보았습니다. 그 솔직함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삼위(三位)의 한 위이신 기독론적인 발언이 나왔던 것입니다.
윤석전 목사: 빌립이 어떻게 순교했는지 알려주는 전승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박성민 목사: 빌립의 순교에 관해서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다양한 전승이 있습니다. 빌립은 리디아, 아시아, 파르티아 지역에서 전도하다가 마지막에 히에라볼리로 와서 순교했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히에라볼리 사람들은 큰 뱀을 섬겼다고 하는데, 빌립의 설교를 듣고 많은 사람이 개종하자 빌립은 그 지역 총독의 눈 밖에 났습니다. 그래서 가혹한 고문을 받고 어려움에 처하게 됐습니다. 빌립이 분노하여 그에 대응하려 했을 때, 다들 말렸다고 합니다. 특히 요한이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언급하면서 말렸는데도 빌립은 땅을 벌려서 사람들을 처벌하라는 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빌립의 명대로 지진이 일어났고, 땅이 입을 열어 7천 명 넘게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빌립아, 네가 잘못했다. 이들을 다시 살려내라"라고 책망하시자 빌립의 말을 통해 그들이 다시 살아났다고 합니다. 전승에 따르면 빌립은 일평생 그 사건 때문에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빌립은 그 일을 회개하면서 살다가 최후에 순교할 때 자신의 시신을 세마포에 싸지 말고 파피루스로 감아달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시신을 세마포에 쌌는데 자기가 어떻게 예수님과 동일하게 취급받겠느냐는 뜻에서 한 말입니다.
윤석전 목사: 사도 빌립과 집사 빌립을 혼동합니다. 성경 속에서 두 사람을 구별해 주세요.
박성민 목사: 요한복음에만 사도 빌립을 자세히 기록하였고 다른 성경에는 집사 빌립에 관한 얘기만 나옵니다. 빌립 집사에 관해서는 사도행전 8장에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한 사건(행8:5~13)과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사건(행8:26~39)이 기록돼 있습니다. 사도행전 21장에는 사도 바울이 가이사랴에 있는 빌립 집사 집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행21:8). 사도 빌립과 집사 빌립은 현대인만 혼동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사(敎會史)에도 구별하지 못한 면이 보입니다. 터툴리안(150~225) 같은 신학자도 사도행전 8장을 말하면서 '사도 빌립'이었다고 말하고, 아르메니안 교회에서는 '집사인 사도 빌립'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둘 다 사실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8장에 기록된 빌립이 사도 빌립이었다면, 사마리아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자 이를 확증하려고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행8:14~25). 그 빌립은 사도가 아닌 집사였기에 사도들이 확증하려고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까지 갔다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도 빌립이 전도한 지역들을 소개해 주세요.
홍순화 원장: 전승을 모아 보면 세 곳 정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먼저 에베소 부근, 둘째 소아시아 터키 지역, 셋째 프랑스 고울 지역입니다. 셋째 지역에 관해서 학자들의 이론이 많습니다. 프랑스에 '고울(Gaul)'이라는 지역이 있었는데 갈라디아가 고울의 식민지였기에 갈라디아를 그렇게 표현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어쨌든 전승으로 보면 프랑스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빌립은 왜 최후까지 자기 생애를 주를 위해 내던졌을까요? 그는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바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알되, 믿음으로 알고 성령 안에서 말씀으로 바로 알면 빌립과 같이 목숨 바쳐 주를 전할 사역자로 바뀔 수 있습니다. 계산적이고 이성적으로 하나님을 알려고 하면 알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성령 안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계속>
<윤석전 목사 탐사기행> '성서의 땅을 가다'는 www.ybstv.com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01호> 기사입니다.